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평점 :
일시품절


작가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책을 읽는 버릇이 있다.  적어도 책에서 작가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라도 얻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라면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고전이 아닌 이상 외국 작가의 작품은 일부러라도 작가 소개를 외면한다.  우연히 알게 된 작가라 할지라도 작가의 성별만큼은 철저히 가린 채 책을 읽어나간다.  십자말풀이를 하는 것처럼 작품 속에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 작가의 성별이나 성격을 짐작하는 일은 의외로 재미있다.  일인칭 소설은 책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단박에 알아맞추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삼인칭 소설은 조금 더 어렵다.  처음 접하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단순히 작품 속에서 찾아 맞추어 보는 재미는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도 그랬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 책을 펼쳤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삼인칭 소설.  재미있겠는 걸.  몸속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웬걸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작가는 분명 여자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과감히 생략해도 될 듯한 장면에서의 지나치게 세밀한 묘사와 일상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주인공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  책을 펼쳤을 때의 긴장감은 금세 사그라들고 말았다.

 

소설은 주인공 토비아스가 교도소를 출소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여자친구 둘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교도소에서 10년을 복역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었던 토비아스는 새로 사귄 여자친구 스테파니(백설공주)와 예전 여자친구 로라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채 단순히 정황증거만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는 그를 외면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대를 진학하겠다던 그의 꿈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어젯밤에는 토비아스 자토리우스와 살해된 여자애들에 대해 생각하는라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로라 바그너와 스테파니 슈네베르거는 살해될 당시 지금의 아멜리와 같은 열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멜리가 살고 있는 집은 살해된 여학생 중 하나가 살던 집이다.  아멜리는 티스가 '백설공주'라고 부른 여학생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알텐하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p.40 ~ p.41) 

 

토비아스가 출소한 후 폐쇄된 군 비행장의 지하 기름탱크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로라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다 끝난 듯했던 사건은 또 다른 의문으로 재점화된다.  마을에서 농장과 식당을 운영하던 토비아스의 아버지는 그가 투옥된 후 어머니와 이혼하고 많은 빚을 진 채 절망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고교시절 토비아스를 짝사랑했던 나디야는 이제 유명 배우가 되어 있다.  고향 마을을 떠나 자신의 집에서 사는 게 어떠냐는 나디야의 제안을 뿌리치고 토비아스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황폐화된 농장을 정리하며 아버지를 돕는 토비아스.

 

마을 사람들은 토비아스의 귀향이 반갑지 않다.  마을 사람들의 협박과 린치에도 불구하고 토비아스는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마을에는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테를린덴 가문이 존재한다.  토비아스의 아버지도 그 집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독일의 작은 마을 알텐하인은 테를린덴의 왕국과 다름없었다.  토비아스에게 우호적인 사람은 오직 외지에서 새로 이사온 아멜리가 유일했다.  당차고 용감한 아멜리는 열여덟이라는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다.  자폐 증세가 있는 테를린덴의 둘째 아들 티스와 어울리면서 토비아스가 진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토비아스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아멜리는 티스가 그린 그림을 손에 넣게 되자 토비아스가 진범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티스는 그 사건의 목격자였다.  그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티스는 그때의 사건을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그려놓았던 것이다.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아멜리는 토비아스에게 알리려 했으나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다.  아멜리의 실종을 수사하던 경찰은 두 여학생을 살해한 진범이 따로 있음을 직감한다.  아멜리의 실종과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 토비아스 어머니에 대한 살인 미수 사건은 소설을 또 다른 국면으로 몰고간다. 

 

이야기는 본론에서 번번이 벗어난다.  수사반장이었던 보덴슈타인의 가정사와 그와 콤비를 이루는 피아 형사의 이야기, 문화교육부 장관인 라우터바흐와 의사인 그의 부인, 그리고 테를린덴의 첫째 아들인 라르스의 이야기, 모든 것을 잃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토비아스와 토비아스를 소유하려는 나디야의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우리네 일상이 늘 그런 것처럼.

 

오백 쪽이 넘는 책의 분량에 비해 사건의 결말은 너무도 쉽게 풀려버린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가 여자라는 데 원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한 집중력과 장시간의 인내를 요구하는 소설 집필은 체력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체력이 약한 작가는 소설이 끝을 향해 나아갈 때 급격히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성격이 급한 작가라면 어서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에 소설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조바심을 내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결말 부분은 항상 허술하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마치 다른 작가가 결말 부분만 대신 쓴 것처럼 여겨진다.

 

사건에 연루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주인공인 토비아스와 아멜리도 여러 어려움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다.  사건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 구조는 평이했다.  다만 작가는 알텐하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욕심과 부와 권력에 눌린 소시민들의 비겁함, 짝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나디야의 집착을 여성 작가만의 섬세한 시선으로 잘 그리고 있다.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 나디야라는 캐릭터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토비아스를 사랑했지만 언제나 그의 관심 밖에 있었던 까닭에 소유와 집착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성공한 여배우가 10년 형을 받고 초라한 모습으로 변한 과거의 연인에게도 과거와 같은 강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열여덟 살의 아멜리가 10년 연상의 살인 전과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도 여러 번 만난 사이도 아닌데...  아주 쉽게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과 소설 전반에 여성 작가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 있었던 점에 만족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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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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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게 언제였던가. 내가 기억하기로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무렵의 나는 셜록 홈즈나 괴도 뤼팽에 깊이 빠져들었고 뤼팽과 홈즈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생각하며 도무지 일어날 법하지 않은 공상에 시도 때도 없이 빠져들곤 했었다. 그 이후 추리소설을 일부러 멀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멀어진 관심은 좀처럼 되돌아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추리소설과는 높은 담을 쌓고 지내는 동안 이따금씩 내게 들렸던 소식은 추리소설의 경향도 많이 변했다는 것과 선정성이나 잔인함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정도였다.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먼저 흠부터 잡는 게 세상사니까.

 

일본 추리소설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식도 간간이 듣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한 출판사로부터 그의 작품 여러 권을 선물로 받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책장에서 뽀얗게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읽게 되다니...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우연은 누군가의 편견을 깨트리기 위해 존재하는가보다. 현대 추리소설에 대한 나의 섣부른 편견을 산산이 부숴버린 것처럼.

 

소설은 한 중학교의 과학 교과를 담당하는 유코가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을 상대로 종업식 연설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봄방학을 맞는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들뜬 자리였으나 유코는 그렇지 않았다. 싱글맘이었던 유코는 자신의 외동딸이 교내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후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그녀에게는 이를테면 학생들과의 마지막 이별을 앞둔 시점이었다. 경찰은 그녀의 외동딸(마나미)이 추락사 했다고 발표했으나 유코는 자신의 반 학생 두 명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성년자인 학생들은 소년법에 의해 처벌을 받지 않으므로 그들 학생의 급식 우유에 HIV 감염 혈액을 주입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자력구제에 의한 보복을 실행한 것이다. 비록 사건의 범인을 소년 A와 소년 B로 이름을 감춘 채 지목하기는 했으나 술렁이던 아이들은 이미 그 대상이 누구인지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경찰에 진싱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A와 B의 처벌을 법에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의는 있었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살의는 없었지만 직접 죽이게 된 B. 경찰에 출두시켜도 둘 다 시설에 들어가기는커녕 보호관찰 처분, 사실상의 무죄방면이 될 게 뻔합니다." (p.54)

 

2장에서는 유코가 교단을 떠난 후 학급의 반장이 된 미즈키의 이야기이다. 살인자로 지목된 소년 A에 대한 반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과 등교를 거부한 채 집안에 틀어박힌 소년 B, 그리고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과 반장 미즈키의 생각과 시선이 교차한다. 담임과 미즈키는 등교를 거부하는 소년 B에게 매주 노트를 복사해 가져다주는가 하면 반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소년 A를 구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미즈키는 소년 A와 가까워진다.

 

"역시 아무리 잔인한 범죄자라도 제재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결코 범죄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재는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착각과 폭주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77)

 

 

사건의 개요와 범인, 그리고 이어지는 피해자의 보복,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을 책의 첫머리에 모두 배치함으로써 작가는 얼핏 위험성을 감수하는 듯하다. 어찌 보면 이게 전부다 싶고, 자칫 진부하게 흐를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를 작가는 교묘히 비껴간다. 3장에서는 소년 B의 어머니가 쓴 일기와 그것을 읽는 소년 B의 누나를 통하여 한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확신하는 소년 B는 에이즈로부터 자신의 가족만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방에서 칩거생활을 계속하지만 결국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함으로써 친족살해라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어머니를 살해한 소년 B는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나이 차가 나는 누나들,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높은 기대와 관심,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외부에 대한 불만. 4장에서는 담임 유코의 딸을 살해하게 된 사건의 전말이 소년 B의 시선을 통하여 재조명된다.

 

5장에서는 소년 A의 회상이 이어진다. 전도 유망했던 과학도였던 어머니와 작은 전파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을 도와준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였던 어머니는 자신의 꿈을 접은 채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살아가지만 결국 소년 A를 버리고 이혼을 한다. 아버지가 재혼을 하고, 이복동생들이 태어나고, 급기야 가족들 중에서 뒷전으로 내몰린 소년 A는 다시 돌아오겠다던 어머니의 말만 믿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친어머니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유난히 머리가 좋았던 소년 A는 담임 유코의 딸을 살해하는 과정에 동참하고 반 아이들로부터 자신을 도와준 반장 미즈키를 살해하고 그도 모자라 더 큰 범행을 계획한다. 한순간에 어머니의 사랑을 잃은 한 소년이 살인 기계로 변해가는 과정이 섬뜩하다.

 

"애초에 내가 쿠키를 먹지 않은 이유는 역겨웠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나 된 아들이 친구집에 놀러 가는데 수제 쿠키를 들려 보내는 어머니도 역겨웠고, 그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들고 오는 시모무라도 역겨웠다. 이 녀석을 죽일까? 살의란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인간이 그 경계선을 넘어왔을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p.227)

 

추리소설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반전에 달려있다. 교사 유코의 보복은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유코의 결혼 전 남자친구는 에이즈 환자였다. 혼전 임신을 한 유코는 그 사실을 알고 서둘러 검사를 받았지만 다행히 자신과 딸은 감염되지 않았었다. 그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었지만 남자의 완강한 거부로 인해 싱글맘으로 지냈다.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딸이 죽고 유코는 그 남자의 혈액을 체취하여 우유팩에 주사하지만 그 남자의 훼방으로 실패했던 것이다. 학교를 사직하고 남자친구와 같이 지내던 중 남자는 죽는다.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유코는 소년 A를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마지막 범행에 쓰일 사제폭탄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다. 그곳은 바로 소년 A의 친어머니 연구실이었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소년 A는 결국 폭파 스위치를 누른다. 그리고 유코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다.

 

"물론 두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어떠한 처벌을 받는다 해도 제 마음이 풀리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복수를 한 후에도 두 사람을 증오하는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아마 칼을 들고 두 사람을 손으로 직접 갈기갈기 찢는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겠지요.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p.258)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절망 뒤에는 언제나 자학이 도사리고 있다. 자학은 무기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 아니라 강렬한 유혹에 이끌리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나는 믿는다. 결국 세상의 모든 범죄는 절망에서 비롯되기는 하지만 범죄에 이르는 과정은 순전히 본인의 선택에 의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윤리관이 확고히 정립되지 않은 소년범죄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관대한 처분이 과연 바람직한가 작가는 묻고 있다. 절망이 자학으로 또는 범죄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치유제가 과연 개인의 윤리관뿐인가. 그 윤리관은 또 범죄로부터 얼마나 유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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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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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사람 도대체 전공이 뭐야?', 궁금해지는 작가가 있다. 철쭉 가득한 화단에 생뚱맞은 노란 수선화 한 그루 서 있는 것처럼. <탈주자>의 저자 리 차일드는 그런 사람이다. 전 세계의 많고 많은 작가군(群) 속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 광대한 스케일의 소설을 쓰면서도 1000m 거리를 날아가는 총알이 중력에 의해 얼마나 끌어당겨지는지 계산하고 있는 사람. 미 국방부와 FBI의 사정을 제 손바닥처럼 훤히 꿰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 생뚱맞기보다는 신선하다.

 

"비행을 시작한 지 0.5초가 흐른 시점에 총알은 400미터를 날아갔고 왼쪽으로 18센티미터 움직였다. 그리고 18센티미터 밑으로 떨어졌다. 중력이 잡아당긴 것이다. 중력이 잡아당길수록 총알은 느려졌다. 총알이 느려질수록 중력은 총알을 더 많이 빗겨나가도록 했다. 총알은 완벽하게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날아갔다. 총열을 떠나고 1초가 지난 총알은 800미터를 날아갔다. 달려가는 맥그레스를 지나친 것은 한참 전의 일이었지만, 아직 나무들 위를 날고 있었다. 목표물에 맞으려면 아직 200미터를 더 날아가야 했다." (p.513)

 

'리 차일드'의 소설은 처음이다. 셰필드의 법과대학에서 공부하고, 그라나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20여 년 동안 송출감독을 했던 그가 소설가로 성공한 것도 의외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경쟁이 치열한 영미권의 추리소설계에서 신예작가와 다름없었던 그가 단번에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힘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영화도 그렇지만 나는 영웅주의 액션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007 시리즈를 열심히 보긴 했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시큰둥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전 세계 영화팬을 상대로 헐리우드 블로버스터가 끝없이 제작되는 걸 보면 책이든 영화든 액션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내가 리 차일드의 소설 <탈주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소감은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미국 전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광대한 스케일도 그렇고, 미국 국방부와 FBI를 다루는 솜씨도 그렇고, 소설 전편에 등장하는 각종 무기에 대한 묘사도 그랬다. 작가는 허무맹랑하게 보이는 한 사람의 영웅을 내세움으로써 그렇고 그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언제나 해피 엔딩의 결말을 보여주는 여타의 소설이나 영화와는 차별점을 보여준다.

 

그러한 차이가 신예 작가와 다름없었던 리 차일드를 베스트 셀러 작가로 성장시켰음은 분명해 보인다. 작가가 전면에 내세운 일당백의 영웅 잭 리처는 다른 스릴러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직 군수사관이자 지금은 조기 제대하여 미국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 중인 잭 리처는 맨손으로 서너 명의 사내들은 가볍게 제압하고, 그의 손에 저격 총이 쥐어져 있다면 십수 명의 군인들과도 일당백으로 대치할 수 있으며, 제압을 당한 상황에서도 적의 심리를 파악하고 주위 사물을 관찰함으로써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리 차일드만의 독특함은 잭 리처를 다루는 세밀함에 있는 듯하다. 대개의 하드보일드 스릴러물에서 작가는 빠른 전개를 염두에 둠으로써 세부적인 묘사를 생략하곤 한다. 이런 치명적인 실수는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그렇다고 무작정 세부 묘사에만 치중할 수도 없다. 추리소설에서 속도감은 거의 생명과 같기 때문이다. 이 둘의 적절한 조화는 생각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 리 차일드는 <탈주자>에서 빠른 전개와 더불어 세밀한 묘사를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품을 읽는 독자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영웅주의 소설이 다 그러하듯 스토리 위주로 쓰였으니 스포일러는 되기 싫고... 딱히 덧붙일 말도 없다. 잭 리처의 영웅담이 가을의 정취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재미는 있다. 다만, 시간은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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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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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바이올렛>은 동사에 주의하며 읽어야 한다. '공허한 시선이 거리 풍경을 헤매'기도 하고, '네온 불빛이 그녀의 침묵 속으로 끼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도 하며, '불안이 와아 와아 와아, 솟아나서 잔 올챙이들처럼 와글거리'기도 한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어제만이 살아 있'는가 하면, '그 남자와 재회하기 이전의 시간과 어제 그남자와 재회한 이후의 시간에 대해 분명히 금을 긋'기도 한다.

 

 

<바이올렛>에서 그녀의 문체는 '백합의 흰 색이 눈을 되찔러오는' 것처럼 몽환적이다. 현실의 다른 층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독자의 의식 속에 두서도 없이 펼쳐 놓은 것처럼. 비현실적이라거나 SF 영화처럼 가능성 없는 미래와는 다른, 뭔가 부족하고 나와는 아주 멀리 동떨어진, 그러면서도 지구상의 보이지 않는 어느 지점에서 생생히 재현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비현실적인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어폐가 있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소설은 그렇게 전개되어 간다. 작가가 그려내는 현실은 마치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내 현실의 지면으로 끝내 내려앉지 않았다.

 

"하늘이 그대로 쏟아져서, 푸른 물을 확, 그녀 얼굴에 덮어씌우는 것 같다. 정말 무지개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박거리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여진다. 가슴이 싸르륵 쓰라려온다. 따라갈 수 없는 서러움. 닮아볼 수 없는 안타까움. 먼, 멀디먼 그리움. 그녀는 방향도 없이 공허하게 앞을 향해 걷는다." (p.175)

 

소설 속의 주인공인 그녀는 '오산이'라고 했다. 그녀의 고독은 미나리 군락지가 드넓었던 시골 소읍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다. 이씨 집성촌이었던 마을에서 이씨가 아닌 학생은 오직 그녀와 단짝이었던 남애가 유일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불안했던 산이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줄곧 아버지와 함께였던 남애는 다른 듯 닮아 있었다. 소식도 없던 산이의 아버지가 돌아오고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는 어머니, 남애를 만나 위로를 구하려던 산이는 작은 오해를 끝내 풀지 못하고 결별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그녀. 그녀는 믿었던 어머니로부터 또 여러 차례 버려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미장원 보조 생활을 그만두고 화원에 취직한다. '꽃을 돌보는 여자'가 된 그녀. 스물세 살의 그녀는 화원 주인남자의 조카, 수애와 함께 산다. 그해 여름, '바이올렛'을 찍기 위해 화원에 들렀던 사진기자인 그 남자가 그녀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남자로 인해 방황하는 그녀.

 

"그에게 전화를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둘이 마주 앉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너 자신이 지금 끌려다니는 것이 무엇이지? 그의 고백이냐? 아니면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냐? 두 질문을 놓고 그녀는 자주 소철에 이마를 대고 서 있다. 권태로운 여름은 그녀에게 공허한 함정을 파놓고 떠날 모양이다." (p.184)

 

그 남자를 마음에 품을 수 있었을 뿐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그녀. 그녀 마음의 가장 밑바닥엔 어린 시절 남애로부터 갑자기 내팽겨쳐졌던 고독이 불타고 있었음을 , 그 고독이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전에 가버리라는 외침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그녀는 인식한다. 그 남자를 잊지 못한 채 방황하는 그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남애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이미 수녀가 되었다는 소식만 전해듣는다. 다시 화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결국 사진기자인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술좌석에서 고백아닌 고백을 했던 그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추억이 되지 못한 욕망은 여름 내내 너무 파릇파릇하거나 격렬하게 불타올라 그녀를 방심 상태로 이끌어가곤 했다. 소통되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슬픔에 사로잡힌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신지? 하고 물었던 그 남자로 하여 지금 그녀는 야릇해져 있다." (p.265)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남자와 헤어진 그녀는 결국 화원의 단골이자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했던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겁탈을 당한다. 광화문 사거리,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의 화원에 취직했던 '꽃을 돌보는 여자'인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녀는 그렇게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스러진다. 그해 여름, 말하자면 스물세 살이 되었던 그해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갔다.

 

오늘처럼 군데군데 우울이 물드는 날엔, 낙엽지듯 쓸쓸함이 번지는 날엔 내가 이만큼 살아냈구나, 안심하게 된다. 장애물 경주를 하듯 세월을 서너 번쯤 건너 뛴 듯한 느낌이 들곤 하지만, 뭐 그래도 괜찮겠다 싶다. 그녀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스러졌던 그해의 여름은 오늘 내게, 젊었던 시절의 여름 더위를 지나쳐온 내게, 장애물 경주를 하듯 정신 없이 세월을 건너뛰었던 내게 안심하라 다독이는 듯하다. 세월이 가뭇없이 흘러 벌써 여기까지 온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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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천재가 된 홍대리
이지성.정회일 지음 / 다산라이프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가 좋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면서도 정작 독서가 왜 좋은지, 독서를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일목요연하게 답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물음에 어물쩡 생각나는 대로 답할 수는 있겠지만 말하고 나면 자신의 대답이 맞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독서의 효과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확신할 수 있는 어떤 근거를 갖고 얘기한 것도 아닌 까닭에 이런저런 이유로 독서를 기피하는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효과(라기보다는 좋은 점)에 대해 말해보련다. 물론 즉흥적인 대답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독서는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다. 이게 뭔 말인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안다. 이해한다. 서로 상반되는 말을 한 문장에 옮겨 놓았으니 이 놈이 일부러 멋을 부려 말하려는가 보다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몇 년 전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가 베스트 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독서에는 약간의 관심이 있었던 나도 책이 출간되자 마자 한달음에 서점으로 달려갔었다. 사실 '독서 천재'라는 책의 제목에 혹하여 내용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덜컥 구매를 서두른 것인데 두어 시간에 걸쳐 다 읽고 난 후 약간의 후회만 남았었다. 말하자면 구매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될 책이었다는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책이라는 생각에 당시에는 리뷰를 쓸 생각도 없이 서재 한 귀퉁이에 쳐박아 두었다. 책도 싫어하고 회사에서도 별볼일 없는 홍대리가 마케팅 팀으로 부서 이동을 한 후 뜻한 바가 있어 독서 천재로 거듭난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다. 자기계발서의 딱딱함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였는지 작가는 홍진수 대리라는 인물을 통하여 독서의 재미와 독서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사고를 빌려서 그 사람을 대신 살아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면 배울 게 많을 수밖에 없죠. 내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큰 사람일수록 고수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통째로 와 박히는 느낌을 갖지요." (p.224)

 

아무튼 나는 그때 쓰지 못했던 리뷰를 뒤늦게 정리할 필요를 느꼈고, 나의 독서 체험도 곁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독서는 내게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다. 그에 대한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도 한때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이상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일수록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과 이어진 다양한 네트워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의 관계, 하나의 네트워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런 상태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철석같이 믿었던 그 하나의 관계마저 이상신호가 감지된다. 과중한 관심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단 하나의 관계만 존재한다고 믿는, 어려움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끝난 듯한 충격을 받게 마련이고 이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것은 마치 길이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 출구를 찾는 것과 같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숲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절실한 데도 말이다. 그때의 독서는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체험을 통해 내가 처한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어려운 현실에 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함으로써 현실을 외면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동정을 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자기 파괴의 욕구는 우리 몸 속에 내재된 비겁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과 결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책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말처럼 독서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함으로써 일차적으로는 사람의 존재 근거를 마련하고, 동시에 지적 유희를 통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읽어야 할 책이 방 안에 가득하다는 것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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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0-02 20:18   좋아요 0 | URL
요즘 정신분석의 주이상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은 선생께서는 책이 자신을 못살게 군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감당할 수 없는 즐거움, 고통을 동반한 즐거움을 뜻하는
jouissance로 독서의 苦樂을 해명해보고 싶은데 생각 뿐입니다... 불가능한
또는 주소를 잘못 설정한 과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꼼쥐 2014-10-03 20:23   좋아요 0 | URL
책이 그렇게 강력한 희열을 주는가? 하는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쁨을 주어야만 주이상스가 성립할 텐데... 글쎄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저도 특정 분야의 책은 약간의 중독성이 있기는 하지만 술이나 담배, 또는 마약과 같은 그런 중독성은 아닌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