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천재가 된 홍대리
이지성.정회일 지음 / 다산라이프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가 좋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면서도 정작 독서가 왜 좋은지, 독서를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일목요연하게 답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물음에 어물쩡 생각나는 대로 답할 수는 있겠지만 말하고 나면 자신의 대답이 맞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독서의 효과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확신할 수 있는 어떤 근거를 갖고 얘기한 것도 아닌 까닭에 이런저런 이유로 독서를 기피하는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효과(라기보다는 좋은 점)에 대해 말해보련다. 물론 즉흥적인 대답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독서는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다. 이게 뭔 말인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안다. 이해한다. 서로 상반되는 말을 한 문장에 옮겨 놓았으니 이 놈이 일부러 멋을 부려 말하려는가 보다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몇 년 전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가 베스트 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독서에는 약간의 관심이 있었던 나도 책이 출간되자 마자 한달음에 서점으로 달려갔었다. 사실 '독서 천재'라는 책의 제목에 혹하여 내용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덜컥 구매를 서두른 것인데 두어 시간에 걸쳐 다 읽고 난 후 약간의 후회만 남았었다. 말하자면 구매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될 책이었다는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책이라는 생각에 당시에는 리뷰를 쓸 생각도 없이 서재 한 귀퉁이에 쳐박아 두었다. 책도 싫어하고 회사에서도 별볼일 없는 홍대리가 마케팅 팀으로 부서 이동을 한 후 뜻한 바가 있어 독서 천재로 거듭난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다. 자기계발서의 딱딱함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였는지 작가는 홍진수 대리라는 인물을 통하여 독서의 재미와 독서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사고를 빌려서 그 사람을 대신 살아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면 배울 게 많을 수밖에 없죠. 내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큰 사람일수록 고수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통째로 와 박히는 느낌을 갖지요." (p.224)

 

아무튼 나는 그때 쓰지 못했던 리뷰를 뒤늦게 정리할 필요를 느꼈고, 나의 독서 체험도 곁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독서는 내게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다. 그에 대한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도 한때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이상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일수록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과 이어진 다양한 네트워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의 관계, 하나의 네트워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런 상태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철석같이 믿었던 그 하나의 관계마저 이상신호가 감지된다. 과중한 관심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단 하나의 관계만 존재한다고 믿는, 어려움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끝난 듯한 충격을 받게 마련이고 이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것은 마치 길이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 출구를 찾는 것과 같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숲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절실한 데도 말이다. 그때의 독서는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체험을 통해 내가 처한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어려운 현실에 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함으로써 현실을 외면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동정을 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자기 파괴의 욕구는 우리 몸 속에 내재된 비겁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과 결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책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말처럼 독서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함으로써 일차적으로는 사람의 존재 근거를 마련하고, 동시에 지적 유희를 통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읽어야 할 책이 방 안에 가득하다는 것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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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0-02 20:18   좋아요 0 | URL
요즘 정신분석의 주이상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은 선생께서는 책이 자신을 못살게 군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감당할 수 없는 즐거움, 고통을 동반한 즐거움을 뜻하는
jouissance로 독서의 苦樂을 해명해보고 싶은데 생각 뿐입니다... 불가능한
또는 주소를 잘못 설정한 과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꼼쥐 2014-10-03 20:23   좋아요 0 | URL
책이 그렇게 강력한 희열을 주는가? 하는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쁨을 주어야만 주이상스가 성립할 텐데... 글쎄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저도 특정 분야의 책은 약간의 중독성이 있기는 하지만 술이나 담배, 또는 마약과 같은 그런 중독성은 아닌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