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쓰는 용기 - 정여울의 글쓰기 수업
정여울 지음, 이내 그림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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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블로그란 게 사실 개인의 일상이나 특별한 기억, 혹은 기억하고 싶은 어떤 순간들에 대한 기록 혹은 끄적임의 성격이 짙은 까닭에 달리 특별한 목적이 존재할 리 없지만 지난 시절의 글을 이따금 읽다 보면 '어쩜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 실력에 조금도 진전이 없을까. 그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면 어디 한구석이라도 나아진 게 보여야 할 텐데 '일만 시간의 법칙'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이렇게 깡그리 무시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곤 하는 것입니다. 때론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이지요. 물론 다른 누구에겐가 자랑을 하거나 내보이기 위해 쓴 글도 아니니 굳이 실망할 이유도 없겠습니다만 글쓰기에는 영 '재주가 메주'인 자신에 대해 괜한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정여울의 <끝까지 쓰는 용기>를 읽게 된 것도 스스로에 대한 그러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이 컸었는데 오히려 나는 더 큰 실망감을 안은 채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글쓰기 실력이 획기적으로 상승할 것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책의 제목에서처럼 그동안에 쌓인 실망감을 희석시킬 만한 커다란 '용기'는 얻을 수 있겠지 내심 기대하는 바가 컸었는데, 용기는커녕 오히려 나에 대한 실망감만 더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오호, 통재라 비통함만 쌓였지 뭡니까.


"이제 제 글쓰기의 비결을 알려드릴게요. 매일 화초에 물을 주듯이, 마음속에서 습작을 하는 거예요. 잘될 거라는 기대도 없이, 잘 안 될 거라는 비관적 생각도 걷어치우고,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무작정 신이 나서 씁니다. 물론 괴로워하면서 쓰기도 하지요. 독자들에게 칭찬을 들은 날도 여전히 습작을 합니다. 자만심이나 나태함에 빠지기 싫으니까요. 많은 책을 쓰고도 여전히 습작을 한다는 게 쑥스럽지만, 사실입니다."  (p.8 '들어가며' 중에서)


눈치채셨을까요? 나는 그동안 '무작정' 글을 써왔던 것인데 이렇다 할 성과는커녕 전보다 못한 '잡글' 수준에서 뱅뱅 맴을 돌고 있으니 실망의 쓰나미가 몰아칠 수밖에요.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사실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고 열정적이며, 글쓰기에 있어 누구보다도 진심인 정여울 작가의 경험과 생각들이 녹아 있는 글쓰기 교본과도 같은 책입니다.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고 싶은 예비 작가들에게 들려주는 창작과 퇴고 방법, 독자를 사로잡는 스토리텔링 기법, 주제를 고르는 특별한 방법 등 글 쓰는 사람들이 매번 맞닥뜨리는 고충에 대해 답하고 있는 1부 글을 쓸 때 궁금한 모든 것들, 글 쓰는 일의 희로애락을 담은 2부 매일 쓰며 배우고 느낀 것들, 한 권의 책을 만들 때 필요한 이야기를 담은 3부 한 군의 책을 만들기까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정여울 작가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A to Z'라고 해야 하겠지요.


"내 안의 오랜 꿈을 이루어주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금 쑥스럽더라도 완전히 다른 나 자신이 되어보는 것. 그리하여 다정하게 타인에게 말 걸 수 있는 용기를 내보는 것. 그것이 글쓰기가 제게 가르쳐준 희망과 용기의 비밀입니다. 물론 글쓰기만으로 없던 집이 생기고, 잃어버린 사랑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글을 씀으로써 여전히 살아 있는 나 자신과 만날 수 있습니다."  (p.121)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나와 같은 일반인 혹은 아마추어 작가의 글이 같을 수야 없겠지요. 그렇다면 전문 작가가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말 테니까요. 그러나 출판이 자유로워진 작금의 출판 환경에서 그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전업 작가의 글이 아마추어 작가의 글처럼 형편없어졌다고 폄훼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프로 작가(로서의 자격이 있는)의 글은 시간이 갈수록 더 빛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프로 작가의 글이 점점 귀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뼈아픈 고독 속에서 아무도 이해 못 할 환상을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창조성의 뿌리가 된다고 믿습니다. 릴케는 환상의 체험, 영혼의 세계, 죽음 등과 점점 멀어지는 현대인의 세속적 삶을 걱정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만 걱정하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삶을 보살피는 기술을 잃어가고 있으니까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마음속의 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삶의 어두운 부분들을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지요."  (p.296 '나오며' 중에서)


나는 비록 수많은 블로거 중 일인으로 글 다운 글 한 편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처지임을 잘 알고 있지만 정여울 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를 읽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1년도 이제 겨우 이틀을 남겨 둔 오늘, 새해에 대한 희망보다는 가는 해에 대한 쓸쓸함만 느껴지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요. 잠깐 풀렸던 날씨가 다시 또 추워진다는 예보. 이 겨울 나는 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다가올 한파를 대비하듯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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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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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은 우리들에게 너무도 익숙하여 그의 삶이나 업적 혹은 그가 쓴 작품 전반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을 듯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너무도 유명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잘 아는 듯 행동하는 자기기만이 합쳐져 스스로도 그럴 것이라고 내심 안심하는 처지에 이르는 게 인간의 보편적 인식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자신의 인식 체계에 심한 과장이나 오류가 있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급작스레 허를 찔린 것처럼.


조지 오웰의 『1984』 역시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의 명성과 더불어 너무나 유명해진 작품.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감시자로 지칭되는 '빅 브라더'가 더 널리 회자되어 소설의 제목보다 소설 속 인물이 더 유명세를 타게 된 기이한 작품. 그럼에도 우리는 소설 『1984』에 대해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다. 숫제 읽지 않았거나 읽었다 하더라도 스토리 전개만 대충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설 『1984』를 손에 잡는 순간 우리는 조지 오웰이라는 탁월한 재능의 소설가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의 치밀한 구성과 생생한 묘사, 도래하지 않은 미래 사회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 등은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조지 오웰'이라는 소설가를 오늘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 갇힌 '조지 오웰'은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짧은 생을 살았던 기괴한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가 전부였지만 막상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을 이끌어가는 그의 천부적 재능에 대해 무엇보다 놀라워한다. 길게 갈 것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소설의 첫 도입부부터.


"맑고 쌀쌀한 4월 어느 날, 시계들이 열세 차례 치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지독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가슴팍 깊숙이 턱을 묻은 채 빅토리 맨션의 유리문을 재빨리 지나갔지만 한 줄기 모래 먼지 소용돌이가 딸려 들어오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p.7)


그렇게 시작되는 소설은 서늘한 느낌과 함께 숨 가쁘게 진행된다. 13이라는 불길한 숫자가 상징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로 인도하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전체주의 경찰국가들에 의해 세계가 지배된다는 가상적 미래를 설정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중앙부처인 '진리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각종 기록물을 당의 입맛에 맞게 수정, 조작하는 일을 맡고 있는 그는 일을 계속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과 당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모두 일기에 기록한다. 당에서 금지하고 있는 일기를 쓰기도 하고 골동품 상점에서 몰래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던 그는 어느 날 진리부의 한 여인으로부터 쪽지를 건네받는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사랑 고백을 담은...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


"한동안 그는 그녀가 거기에 있다는 엄청난 환각에 휩싸였다. 그와 함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내부에도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의 살갗을 뚫고 들어오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 그는 그들이 함께 자유롭게 있었을 때 이상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그녀가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p.428~p.429)


사상경찰에 의해 체포된 윈스턴은 계속되는 투옥·고문·재교육으로 인해 육체는 물론 영혼의 존엄성마저 파괴된다. 이러한 과정은 그가 증오하던 '빅 브라더'를 사랑할 때까지 계속된다. 권력지향과 타인에 대한 지배는 결국 끊임없는 감시와 부정직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인간의 미덕은 서서히 소멸하게 된다는 사실을 소설은 윈스턴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콧수염 아래 숨겨진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데 40년이 걸렸다. 아, 모질고도 부질없는 오해였다! 아, 저 애정 어린 품속을 벗어나 고집스럽고 아집에 찬 유형의 삶을 살았다니! 술 냄새가 배인 두 줄의 눈물이 콧날 양옆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만사가 다 괜찮았다. 이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p.457)


자신의 이념이나 가치체계에 반하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대개 불같이 화를 내게 되지만 자신의 잘못된 인식이나 지적 오류를 감지하는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내적으로 심한 모멸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본 척한다거나, 읽지 못했던 책을 읽은 체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낱낱이 밝혀지고 자신의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의 경험은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성탄절.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라는 가사의 어느 캐럴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빅 브라더'의 눈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아이들이 산타를 좋아하는 것만큼 빅 브라더를 좋아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도 인간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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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삶 -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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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경험은 개성이라는 특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개성이 입은 상처를 치유해 준다. 상처를 치유해 주는 집단적 감정들도 있지만 그것들은 개성이라는 특권을 파괴한다. 집단적 감정 속에서는 우리 개개의 자아들이 서로 뭉뚱그려지면서 개성이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훌륭한 문학을 읽으면 나는 천의 인물이 되면서도 여전히 나로 남아 있다.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나도 무수한 눈으로 보지만, 보는 주체는 여전히 나다. 예배할 때나 사랑할 때, 또 도덕적 행위를 할 때나 지식을 얻는 순간처럼, 독서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초월하되 이때처럼 나다운 때는 없다."  (p.22)

 

책을 읽는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불가사의한 경험'이라고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 머릿속에서 하나하나의 장면을 상상하고, 때로는 춥거나 무덥거나 습하거나 건조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도 하며, 기쁘고 슬픈 감정을 현실에서와 같이 직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한다. 그것은 다른 어떠한 보조장치의 도움도 없이 순전히 자신의 독자적인 인식 체계만으로 구동된다는 점에서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과 구별되며, 그 어떤 가상현실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세밀하게 구현된다는 점에서 현대의 과학기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가상현실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띤다고 하겠다.

 

독서의 이점은 사실 아무리 말해도 부족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하나의 문장으로 말하기는 또 쉽지 않다. <나니아 연대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C.S.루이스 역시 '당대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 무엇이든 읽고, 읽은 것은 전부 기억한 사람'으로 평가될 정도로 독서가 몸에 배어 있었던 사람이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의 이점을 설파하였던 것을 보면 그 역시 독서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듯하다.

 

"요컨대 시 예술 전반에서 최고 경지는 결국 일종의 물러남이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 전체가 그의 뇌리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제 시인은 길을 비켜나기만 하면 된다. 가만히 있으면 파도가 밀려오고, 산들이 잎을 흔들고, 빛이 비쳐 들고, 천체가 회전한다. 이 모두가 시를 짓는 데 필요한 소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시다."  (p.157)

 

나는 사실 이 책, C.S.루이스의 <책 읽는 삶>을 두 번째 읽고 있다. 시간이 날 때 일부분을 읽었던 것까지 포함하면 여러 번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군데군데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을 발견하기도 하고,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독서라는 한정된 행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역시 제한된 것일 테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육체에 갇힌 나를 잊은 채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유영했던 것이다.

 

"여기 충격적 사실이 있다. 진실하지 않고는 글을 잘 쓰기가 치명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진실성 자체는 누구에게도 좋은 작법을 가르친 적이 없다. 진실성은 문학적 재능이 아니라 도덕적 덕목이다. 진실성에 대한 보상을 바랄 곳은 내세이지 문단이 아니다."  (p.130)

 

단지 한 권의 책만 갖고 하루를 이토록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건 소위 '가성비'의 측면에서 단연 '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토네이도가 덮쳐 순식간에 나를 날려 보낸다고 할지라도 나는 두려움 없이 그 직전까지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그 사이에 바깥 기온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으슬으슬한 한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걸 보니... 보일러 온도를 높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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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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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이 야속한 것은 비단 나 스스로가 늙어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와 내 주변의 다정했던 사람들을 속절없이 앗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태어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가까웠던 사람들을 차츰 잃어간다는 건 더없이 슬픈 일이다. 하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기도 한다. 이것 역시 속절없는 세월과 유한한 생명에 대한 반작용임을 나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자연의 매몰찬 냉대에 대한 티끌처럼 가벼운 한 인간의 무위한 반항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1인분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닮은꼴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다채로운 시간들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많지 않을까.『세월』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신비체험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닮은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 나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너무도 그럴듯한 상상.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는 타인과 만나고, 한 몸으로는 다 살아낼 수 없는 무지갯빛 시공간을 겪어내는 것은 아닐까. 지구라는 별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덜 외롭고, 덜 아프고,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p.282)


정여울의 에세이 <잘 있지 말아요>는 작가가 읽었던, 혹은 보고 느꼈던 수많은 '사랑 이야기'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이자 해석이며, 사랑에 대한 통념과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인 진지한 논평이기도 하다. 작가는 다양한 연관 매체의 지식을 자신의 글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책에 국한하지 않는 독자의 다양한 관심을 아우른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스탕달의 <적과 흑>,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이언 매큐언의 <속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등 서른일곱 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사랑에 대한 자신의 지적 경험과 그를 통해 정립된 개인의 사랑관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상처가 스스로 발화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사랑은 매력으로 시작되어 우정으로 승화되고, 마침내 서로에게서 최고의 스승을 발견하는 위대한 배움으로 이어진다. 이미 만들어진 완벽한 사랑의 저수지에 풍덩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거운 돌을 나르고 빈틈을 메워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의 호수를 만들어가야 한다."  (p.323 '에필로그' 중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홀로 오지 않는다. 행복과 사랑, 분노와 사랑, 기쁨과 사랑, 슬픔과 사랑, 때로는 엄숙함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에 약방의 감초처럼 사랑이 함께하는 까닭은 혹여라도 우리가 사랑으로 가는 길을 잃었을 때, 다른 감정과 더불어 사랑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했던 신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다면 삶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전부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소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그 사랑을 통해 그들 주변의 세상을 좀 더 환하게 밝혀줄 수 있다는 희망이야말로 사랑을 아름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빛이다."   (p.290)


많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사랑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랑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인간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져 왔던 감정. 그 숭고한 역사의 흔적을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혹은 한 편의 영화를 통해, 혹은 감동적인 연극이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우리가 자신의 눈을 통해 빛 속에 감추어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통해 다채로운 사랑의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랑의 실체를 그저 희미하게 짐작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예술을 포기할 수 없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에 눈먼 청맹과니인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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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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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어느 날 우리의 의식 표면으로 가볍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생각의 주인인 나에게 "이제 좀 나가도 되겠습니까?" 하고 정중히 허락을 득하는 것은 아니다. 도식적인 경로를 통해 멀리서 다가오는 것도 아닌 까닭에 미리 대비를 하거나 환영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사채업자처럼 어느 날 불쑥 나타났다가 가만히 사라지는 까닭에 '이런 기억도 있었구나.' 재차 확인할 뿐이다. 그런 기억들은 대개 나와는 전혀 다른 생명력을 지닌, 마치 다른 사람의 기억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이식된 듯한, 전혀 다른 개체의 기억처럼 느껴지곤 한다. 먼 훗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이 사람 저 사람의 기억 속을 둥둥 떠다니면서 끈질긴 생명을 이어갈 것만 같은 것이다.

 

"이성이 감정을 통제하는 어른이 된 지금은 내 딸의 감정적인 혼란과 비틀거림을 용납할 수 없어 짜증스러운 것만큼이나 나는 당시의 내가 낯설고 멋쩍다. 질서 정연하지 않고 안정감이 없는 것이 오히려 버거워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나왔던 것처럼, 그리고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처럼 내 딸 역시, 아니 이 땅의 모든 여고생들이 성장기란 어두운 터널 속을, 그 감정의 도가니 속을, 그리고 언젠가는 기억에서 멀어져 갈 현재를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204 '역자 후기' 중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집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는 여고생 시절의 기억들을 여섯 편의 단편을 통해 소환한다. 물론 나와 같은 남자 독자라면 사정이 다를 테지만 책을 읽는 여성 독자라면 그 시절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1964년생인 에쿠니 가오리의 고교 시절과 완전히 닮은, 판박이의 경험들이 독자들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일본이 아닌 한국은 생각이나 배경부터가 다를 테고. 하지만 그 시절에 들었던 생각들, 이를테면 학교생활, 성적, 부모님과의 갈등, 연애나 우정 등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나가 겪는 경험들로부터 비롯된 괜한 오해와 분노, 서글픔, 기쁨 등의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하던 순간들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때로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를 너무 먹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똑같지 않다.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기에 아직 어리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온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아주 아주 슬픈 일이다."  (p.138 '천국의 맛' 중에서)

 

그 시절의 우리는 덩치만 컸지 미처 성장하지 못한 이성의 발달을 탓할 새도 없이 분출하는 감정의 지배하에 놓인 몸뚱어리를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난감해하곤 했다. 실수는 다반사였고, 실수를 통해 깨닫고 배운 바를 다음에는 제대로 기억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는 다짐이나 결심은 번번이 빗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성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어른이 된 지금 "그때보다 사는 게 조금 더 편해졌거나 그때보다 더 행복해졌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우리는 지금도 만나야 했기에 만났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반년쯤 지나 미요와 다시 마주쳤다. 미요는 밤인데도 교복을 입고 시부야의 센터 거리를 혼자 걷고 있었다. 앞으로 가로막는 나를 보고도 금방은 기억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노골적으로 '아뿔싸' 싶어 하는 표정을 짓고는, 헤실헤실 미소를 지어댔다."  (p.195 '머리빗과 사인펜' 중에서)

 

겨울은 왠지 모르게 여름보다 농밀하거나 균질한 시간들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동네의 말썽꾸러기들이 친구의 집에 모두 모여 엉뚱한 작당을 하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거나, 춥고 어두운 거리를 이유도 없이 걷곤 했었다. 그러다 보면 길었던 밤은 온데간데없고 여느 날처럼 부옇게 해가 떠오르곤 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겨울밤은 매년 조금씩 길어져만 가는 듯하다. 가뜩이나 12월의 밤은 무리하게 길기만 하고, 독서로도 채울 수 없는 기나긴 시간이 부담스러운 나는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부르곤 한다. 길기만 했던 겨울밤도 언젠가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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