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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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이 야속한 것은 비단 나 스스로가 늙어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와 내 주변의 다정했던 사람들을 속절없이 앗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태어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가까웠던 사람들을 차츰 잃어간다는 건 더없이 슬픈 일이다. 하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기도 한다. 이것 역시 속절없는 세월과 유한한 생명에 대한 반작용임을 나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자연의 매몰찬 냉대에 대한 티끌처럼 가벼운 한 인간의 무위한 반항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1인분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닮은꼴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다채로운 시간들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많지 않을까.『세월』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신비체험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닮은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 나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너무도 그럴듯한 상상.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는 타인과 만나고, 한 몸으로는 다 살아낼 수 없는 무지갯빛 시공간을 겪어내는 것은 아닐까. 지구라는 별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덜 외롭고, 덜 아프고,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p.282)


정여울의 에세이 <잘 있지 말아요>는 작가가 읽었던, 혹은 보고 느꼈던 수많은 '사랑 이야기'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이자 해석이며, 사랑에 대한 통념과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인 진지한 논평이기도 하다. 작가는 다양한 연관 매체의 지식을 자신의 글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책에 국한하지 않는 독자의 다양한 관심을 아우른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스탕달의 <적과 흑>,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이언 매큐언의 <속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등 서른일곱 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사랑에 대한 자신의 지적 경험과 그를 통해 정립된 개인의 사랑관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상처가 스스로 발화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사랑은 매력으로 시작되어 우정으로 승화되고, 마침내 서로에게서 최고의 스승을 발견하는 위대한 배움으로 이어진다. 이미 만들어진 완벽한 사랑의 저수지에 풍덩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거운 돌을 나르고 빈틈을 메워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의 호수를 만들어가야 한다."  (p.323 '에필로그' 중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홀로 오지 않는다. 행복과 사랑, 분노와 사랑, 기쁨과 사랑, 슬픔과 사랑, 때로는 엄숙함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에 약방의 감초처럼 사랑이 함께하는 까닭은 혹여라도 우리가 사랑으로 가는 길을 잃었을 때, 다른 감정과 더불어 사랑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했던 신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다면 삶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전부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소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그 사랑을 통해 그들 주변의 세상을 좀 더 환하게 밝혀줄 수 있다는 희망이야말로 사랑을 아름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빛이다."   (p.290)


많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사랑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랑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인간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져 왔던 감정. 그 숭고한 역사의 흔적을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혹은 한 편의 영화를 통해, 혹은 감동적인 연극이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우리가 자신의 눈을 통해 빛 속에 감추어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통해 다채로운 사랑의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랑의 실체를 그저 희미하게 짐작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예술을 포기할 수 없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에 눈먼 청맹과니인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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