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성공의 인사이트, 유대인 탈무드 명언 - 5천 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부와 성공을 얻었나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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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신의 그릇에 맞는 부의 크기도 가늠하게 된다. 말하자면 주제 파악이랄까, 지나친 과대망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여러 번 신중하게 두들겨 본 돌다리도 이따금 금이 가거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일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배포는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사람을 믿는 일도, 앞으로의 경제 전망이나 전문가의 투자 전략도 도통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세상에는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게는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이 있다. 우리가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때 보는 눈이란, 외모만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눈이다. 겉은 소박할지라도 내면이 깊고 가치 있는 사람이 있고, 겉은 화려한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전자인 사람들을 일찍이 알아보고 관계를 잘 꾸려 나가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p.42)

 

인문학자이자 지식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현 역시 부와 성공의 원천을 탈무드에서 찾고 있다. 노벨상이 수여되기 시작한 1901년부터 2021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943명 중 유대인은 210명(22%),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 민족이 일궈낸 결과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더구나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비롯해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 투자가 조지 소로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인사 중 다수가 유대인이고 보면, 5000년간에 걸쳐 유대인을 지탱해 온 생활 규범이자 '유대인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는 탈무드에서 우리들 개개인의 부와 성공에 대한 가르침을 배워 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지식을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교육은 도덕과 지혜의 두 기반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도덕은 미덕을 받들기 위해서이고, 지혜는 남의 악덕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도덕에만 중점을 두면 성인군자나 순교자밖에 나오지 않고, 지혜에만 중점을 두면 타산적인 이기주의자가 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도덕과 지혜의 두 기반 위에 교육이 있어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p.124)

 

김태현의 저서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 유대인 탈무드 명언’은 유대인의 지혜를 담고 있는 탈무드와 전 세계 상위 1% 유대인 위인들의 명언 중 770개를 엄선했다. 저자는 “탈무드에는 인생의 순리를 따르면서도 가난을 싫어하고, 무엇보다 배움과 교육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의 인생철학이 잘 담겨 있다."고 하면서 “어려서부터 탈무드를 통해 자부심과 정체성을 교육받은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힘이다.”라는 말로 탈무드를 통한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를 강조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김만덕과 임상옥과 같은 두 거상이 있었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들이 수없이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상업을 천시했던 조선시대의 인물이었기에 사료로 남겨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유대인들의 굴곡진 삶을 통한 통찰과 인생을 가로지르는 삶의 기술을『탈무드』로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인생의 순리를 따르면서도 가난을 싫어하고, 무엇보다 배움과 교육을 중시하는 그들의 인생철학이 잘 담겨 있다. 특히 공동체 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민족의 생존을 위해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돕는 자선과 구제를 당연한 의무이자 자신이 복을 받는 비결로 받아들였다"  (p.254 '나오며' 중에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재앙 속에서 암울한 시간을 보냈던 지난 2년여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방역 모범국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다. 그와 같은 성과로 인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한껏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 뉴스에 대한 언론 신뢰도가 46개 국가 중 40위 등 부끄러운 기록들도 함께 갖고 있다. 이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갈라놓기에 바쁜)고 극단적 갈등을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들의 농간 때문이다. 유대인의 성공은 자선과 구제를 통한 강한 결속과 공동체 의식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정치인들에 의한 분열과 퇴보만 남았을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가뜩이나 세계 경제가 어렵다. 통합과 협치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지만 적어도 분열과 증오를 획책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법대로 하자는 말은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말이지 이쯤에서 멈추고 서로 화해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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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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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확실한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다수가 동물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우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이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고,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데는 '조지 오웰'이라는 저자의 명성 하나만으로는 부족했으리라. 그보다는 오히려 권력과 인간 속성에 대한 저자의 철저한 탐구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감탄과 공감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을 터이다. 권력지향적인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국가 제도가 지속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나는 사실 조지 오웰의 소설보다는 르포 작품에 더 매력을 느끼는 독자 중 한 사람이다. 현장과 체험을 바탕으로 쓴 그의 탁월한 작품들은 화려한 문체와 더불어 날카로운 문제의식, 그리고 체험과 검증에서 비롯된 현실 감각 등은 독자로 하여금 르포란 이런 것이다 하는 자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르포에 비해 그의 소설 작품들이 격이 떨어진다거나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관적인 느낌상 그의 르포 작품이 더 좋다고 말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탁월한 르포 작품이 있었기에 <동물농장>과 같은 완성체의 소설이 존재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동무들이여, 절대로 이런 결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에도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과 동물들이 서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번영이 곧 동물들의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에 절대로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모두가 거짓말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외에는 어떤 생물의 이익에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물들은 모두 일치단결하여 철저한 동지애를 가지고 인간과 투쟁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적이고,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들입니다."  (p.33)

 

소설은 매너 농장의 주인인 존스 씨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물들은 결국 주인인 존스 씨를 몰아내고 동물들의 세상인 동물농장을 만든다. 여기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지도자의 지나친 음주는 항상 문제가 된다. 그래서인지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은 애주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취임과 함께 술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대통령이 술에 취해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궐위 상태와 진배없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현재의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 꾸알라가 된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켰다. 창피도 이런 창피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휴전 상태에 있는 국가의 대통령이...

 

"매너 농장의 존스 씨는 밤이 깊어지자 닭장 열쇠를 채우기는 했는데, 술에 너무 취한 나머지 문을 닫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둥그런 등불 빛을 앞세우고 비틀거리면서 뜰을 가로질러 가서는, 뒷문에다 장화를 휙 차 버리고 주방으로 들어가 술통에서 맥주 한 잔을 따라 마지막으로 들이켜고 난 후에야, 한참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있는 존스 부인 옆의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p.25)

 

주인인 존스 씨를 몰아낸 동물들은 글을 읽을 수 있는 동물들인 나폴레옹(돼지), 스노우볼(돼지), 스퀼러(돼지)의 지도 아래 동물농장의 7계명을 만들고 모든 동물들을 평등하게 살게 하는 데 뜻을 모은다. 그러나 각종 사건들로 인해 동물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결국 나폴레옹(돼지)이 무력으로 동물농장을 지배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동물들을 독재와 공포정치로 통솔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동물들 사회에서도 계급과 서열이 생겨나고, 급기야 나폴레옹은 인간처럼 2발로 걸어다니며 채찍을 휘두르기에 이른다.

 

"그리고『동물농장』에서 오웰은, 다음번의 선거가 빠짐없이 다가오듯이 늘 새롭게 나타나기 마련인 정치적인 폭력과 그에 대한 공포는 우리들 스스로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p.19 '러셀 베이커(Russell Baker)의 서문' 중에서)

 

유행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정치적 유형도 되풀이되는 듯 보인다. 군부 독재가 사라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독재 시대에 대한 향수가 불꽃처럼 타올랐고, 급기야 검찰 권력에 의한 독재가 시작된 느낌이다. 과거의 교훈을 쉽게 망각하는 인간의 철없음, 혹은 타인의 감언이설에 쉽게 현혹되는 대중의 얕은 지조에 의해 역사는 비슷한 과오를 끝없이 양산한다. 대중은 술에 취해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는 존스 씨를 자신의 지도자로 선출하고야 만다. 오늘도 그리고 어쩌면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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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따러 가자 - 고립과 불안을 견디게 할 지혜의 말
정은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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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비가 잠깐 내렸다. 얼마만의 비인지... 과거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모두 대통령의 잘못인 양 전국의 모든 언론이 대통령 탓을 하기에 바빴었다.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그야말로 언론사다운 건전한 언론사가 단 한 군데라도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언론 소비자 중 한 사람인 나로서도 너무 심하다는 인식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언론사들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봄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와중에도 이게 모두 대통령의 탓이라거나, 밀양에 번진 대형 산불로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대통령은 한가하게 브라질과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관람하고 있느냐고 지적하는 언론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언론사들도, 경찰도, 심지어 검찰도 알아서 길 거라는 예언은 현재의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용하다는 어느 여인의 입을 통해 기자에게 전달된 바 있었다. 과연 그 여인은 무속인들과 그리 어울려 다니더니 웬만한 무속인을 능가하는 예지와 신통력(?)을 지닌 게 아닌가!

 

"좋은 날도, 슬픈 날도 다 지나갑니다. 기도와 웃음은 정다운 주술과 같습니다. 괴로워도 슬퍼도, 외롭고 서러워도, 두렵고 막막해도, 불안해도, 눈물을 거두고 웃습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 우리를 기다리는 하루는 다시 희미한 웃음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안에서 지펴낼 수 있는 온기는 바로 웃음입니다. 전환점이 되는 달에 멀리서 미소 담은 편지를 띄웁니다."  (p.128)

 

한국외대 영미문학ㆍ문화학과 정은귀 교수의 산문집 『딸기 따러 가자』가 출간되었다. 코로나19를 통과하던 시기, 묵상하듯 인디언의 노래를 찾아 읽으며 고립과 불안을 달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열두 달과 지금 우리가 사는 1년 열두 달의 주기를 비교하며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계절 감각과 생활 감각을 일깨운다. 북아메리카에 흩어져 살던 인디언들은 비록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서로 달랐지만 자신이 깃들어 사는 터를 존중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식으로 생태적 가치를 지켜왔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면을 지녔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투느라 전쟁마저 불사하는 요즘, 인디언들의 지혜는 현대인의 절망을 극복하는 현명한 처방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던 아메리카 인디언은 힘든 환경이나 사건 사고를 두고 투덜거리지 않았습니다. 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순간순간 느끼려고 했지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그대로 우리에게 삶을 돌려줍니다. 이 세상이, 삶이 가치 없다 여기면 모든 일이 쓸모없이 여겨질 것이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 세상이, 삶이 가치 있고 소중하다 생각한다면, 주변의 작은 것들도 아름답게 느껴지겠지요."  (p.144)

 

퇴임한 전직 대통령의 사저 근처에서 주야장천 욕설을 퍼붓고, 확성기를 틀고, 근거도 없는 말들을 떠들어대는 인간들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게 된다. 자신들과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약간의 돈을 갈취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겠지만, 아무리 돈이 중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간성마저 팔아 팽개친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게 생명을 부지한다는 게 무슨 소용이며, 몇몇 지지자들로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그렇게도 기분 좋아할 일이란 말인가.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여러 사람들의 건강과 평화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이익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과연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서로가 소로의 다른 손, 다른 머리가 될 것. 함께 나눌 것. 성탄절에 세상에 오신 분이 가르치는 사랑도 그러한 것이겠지요. 강해 보이는 이에게 굴종으로 엎디지 말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이의 곁에 머물 것. 혐오의 말들이 난무하는 메마르고 거친 시절에, 구원의 역사를 새로 쓰신 분의 탄생을 기리며, 조금 차분한 성탄 전야를 보냅니다. 사랑으로 오신 분의 사랑의 방식을 생각하며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려 합니다. '구원'이 비현실적인 단어가 된 오늘날,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작고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p.223)

 

면허 취소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한 경력이 있는 자를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주취범죄 처벌 현실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 차별금지법의 통과는 반대하면서 차별은 반대하는 이상한 논리. 선제타격 운운하면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하는 정부.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란 늘 따라붙게 마련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잘 드러나는 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닌가. 최근 미 백악관의 초청에 의해 K팝 스타인 방탄소년단이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한 적이 있다. '반(反)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대한 의견 교환의 차원이었지만 낮은 지지율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제고 목적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명분만은 누구나 수긍할 만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정부의 지도자들은 얼마나 수준이 낮은가. 모호크 인디언의 어느 할머니는 가족 모두가 길을 잃고 낙심하고 있을 때, "딸기 따러 가자."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낙심과 우울과 절망을 떨치고 일어서도록 하는 원동력은 바로 딸기일 수도 있겠다. 오늘 당신의 '딸기'는 과연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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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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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미있는 일도 취미가 아닌 직업이 되는 순간 재미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반감되게 마련이다. 심지어 웬만한 아이들이라면 쉽게 빠져드는 인터넷 게임도 취미가 아닌 업으로 변하는 순간 흥미를 잃게 된다고 한다. 그도 당연한 것이 수십,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가 자신의 책임을 망각한 채 설렁설렁 취미인 양 임한다면 그를 고용한 구단에서도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처하게 됨은 물론 자신 역시 발전된 기량을 통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애초에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 글을 쓰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아마추어 작가일 때는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하던 글쓰기가 시간과 돈에 의해 제한되는 업으로 변하는 순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원고 요청을 제법 잘 거절하지만 여전히, 나를 원한다는 이유로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글이 있다. 또는 일이기 때문에 쓴다. 내가 쓰고 싶다는 이유로 시작하는 글을 내가 원한 대로 지키기는 늘 어렵다. 내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p.92 '이다혜' 중에서)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어쩌다 보니 글쓰기가 업이 된 9명의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가벼운 책이다. 전업 작가가 된다는 건 어쩌면 대단한 특권이자 적지 않은 노력의 결과물임은 분명할 터, 작가 지망생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로 읽힐 수도 있는 쓰고 싶지 않은 마음들은 대체로 마감을 앞둔 극도의 긴장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아마추어 작가일 때는 쓰고 싶은 순간에 자신이 쓰고 싶은 주제로 원하는 분량만큼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돈을 받고 쓰는 글에는 그와 같은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글의 주제나 분량도, 마감 시한도 전적으로 의뢰자의 사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글쓰기 작업도 '의무'라는 무게에 눌려 압사 직전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진 나의 머릿속에서 '자, 이제 준비기 되었으니 글을 써볼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더 할 일이 없는 건지, 정말 지금 완벽하게 글을 쓰기 위한 상태가 된 것이 맞는 건지 지뵤하게 묻고 있다는 걸. 그리하여 마침내 생각도 못했던 다른 할 일을 '녀석'이 기어이 찾아내는 걸 보면서 나는 알았다. 그동안 나는 쓰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게 아니라 오로지 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기만 했었다는 걸. 그게 두려움이나 권태든 다른 무엇 때문이든 간에 나는 이 일이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또 하기 싫어졌다는 걸."  (p.70 '이석원' 중에서)


프로 작가가 된 후 마감 시한에 맞춰 글을 쓰기 위한 각자의 노력이나 일상 습관은 열이면 열 서로 다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되기 위해 쏟아부었던 열정이나 노력은 글쓰기에 대한 각자의 애정만큼이나 서로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여타의 취미와는 달리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결코 좋아질 수 없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가 선행돼야 하며, 산책이나 명상 등 생각의 파편들을 한데 모으는 작업을 수시로 반복해야 하며,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한 결과물을 다듬고 고치는 일이 지루하다거나 지겹지 않아야 한다. 그와 같은 반복을 통해 더딘 성장을 이룰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글쓰기를 취미로 갖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에 투자된 시간과 노력이 항상 기꺼워야 하며, 아깝다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야 한다.


"나는 청결하고 질서 정연한 세계 속에서 평화와 안정을 느끼지만, 동시에 저항하고 싶고 그 세계를 파괴해 버리고 싶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내 곁에 항상 올바른 사람들만 두고 싶진 않다. 나는 엘리트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몰개성적인 다수를 혐오한다. 금욕적인 청교도 정신을 거부하면서 카톨릭 사제를 매력적으로 여긴다. 나는 무신론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남성이자 페미니스트다. 나는 발언하고 싶지만 입을 닫고 싶다. 쓰고 싶지만 쓰고 싶지 않다."  (p.241 '임대형' 중에서)


오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3주기 추도식이 있었던 날. 검은 상복 속에 숨어든 많은 말들이 세상의 허무 속으로 흩어진다. 대기는 알 수 없는 미래처럼 탁했고, 흘러간 세월만큼 옅어진 슬픔이 잔기침과 함께 툭툭 불거진다. 아무도 막지 못했던 십삼 년 전 오늘의 미래가 세월을 따라 켜켜이 슬픔의 과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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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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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던 건 지난해였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여동생까지 슬하에 3남 3녀의 많은 자식을 두었건만 병든 노모를 거두고 돌보겠다는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팍팍한 현실이 만들어 준 이런저런 변명과 구실들이 노모를 모시지 못하는 주된 이유였지만, 요양원이라는 더없이 편리한 기관이 자식들의 불효를 모두 덮어주는 까닭에 지근거리에서 노모를 모시지 않고도 어떤 자책이나 회의감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사셨던 엄마가 재작년 어느 날 목욕탕에서 넘어져 약간의 뇌출혈 증상을 보였던 게 요양원 생활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감옥과도 같았던 요양원에서 2년 남짓을 보내고 돌아가셨다. 코로나 시국에 면회도 되지 않는 그 답답했던 시간을 엄마는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면회가 금지된 한 달 사이에, 대명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주치의가 전했다.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쯤 덮고 일남과 두어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대명의 임종 상황을 설명했다. 한 달 만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지난달 면회 때만 해도 아주 좋아 보이셨다고, 일남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흔둘, 언제 어느 순간에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연세였다."  (p.254 '특별재난지역' 중에서)


김유담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을 읽다가 기어코 흐르는 눈물을 찍어내고야 말았다. 표제작인 '돌보는 마음'을 포함하여 열 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이 소설집은 돌봄을 근간으로 한 여성의 서사를 보여준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적 파고를 직접 겪어 보았고, 이를 통해 '돌봄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작가는 자신이 쓴 열 편의 짧은 소설을 매개로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돌봄'을 소재로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 이를테면 청소년과 노년, 전업주부와 감정 노동 종사자 등 각계각층의 시선으로 돌봄의 현실과 마음을 펼쳐 보인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그녀는 아기를 독립적인 자아를 지닌 타인으로 인정하며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임신 기간 내내 태아는 자신과 개별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그녀의 의지나 생활 패턴과는 무관하게 태동하고, 무관하게 반응하는 아기의 존재를 확인할 때마다 태아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타자를 품고 있다는 이물감이 앞섰다. 하지만 친구가 툭 던지듯 말한 인생의 성패라는 단어가 가슴 한구석에 날카롭게 박히는 순간, 자신과 아기가 서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p.139 조리원 천국' 중에서)


<돌보는 마음>에는 김유정작가상을 수상한 『안(安)』도 수록되어 있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큰엄마와 여성의 능력을 강조하는 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란 '나'의 고민을 통해 '집 안 여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다.  그 외에도 복직을 앞둔 워킹맘 '미연'의 베이비시터에 관한 고민을 다룬 소설 '돌보는 마음'과 젖 잘 나오는 엄마가 되기 위해 몰두하는 산후 조리원의 풍경을 담은 '조리원 천국', 코로나로 아버지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게 된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특별재난지역', 노년에 졸혼을 결심한 ‘희숙’과 노년에 결혼을 결심한 ‘명주’를 통해 결혼과 여성의 삶을 새로운 각도로 조망하는 '태풍주의보'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각계각층의 여성들을 통해 돌봄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나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공과 헤어졌고, 공의 집에서 나왔다. 처음 이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편하게 살면서 호강에 겨운 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고, 이혼 과정에서는 혼자만 편하려고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 여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p.72~p.73 '안(安)' 중에서)


'평균 수명의 연장이 우리의 삶에 과연 득일까, 실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할 때가 있다. 불과 쉰 살을 넘기지 못했던 수백 년 전의 사람들에 비한다면 우리의 삶은 획기적으로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수명 연장이 우리 모두를 행복한 삶으로 안내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저녁에 접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환갑이 지나 백발이 성성해진 자식이 백수를 바라보는 부모를 모시는 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부모가 자식 늙어가는 걸 하릴없이 지켜보는 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일이겠는가. 차라리 젊고 건강한 자식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하직하는 게 백 번 행복한 일일 테다. 그러나 돌봄 노동의 부담을 오롯이 홀로 떠안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고된 삶과  이를 당연한 듯 여기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이기적인 삶을 생각할 때, 약자를 향한 애정의 발현이라는 돌봄이 오늘날에 와서는 노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나는 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을 통해 배운다. 신은 사랑의 꼬리표에 돌봄이라는 의무를 우리들 몰래 매달아 두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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