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던져 놓은 세월의 그물을 통하여 무엇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 대답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잠깐 소나기가 내렸었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닥 친하지 않았던, 어쩌면 데면데면 굴었던, 낯을 붉히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죠.

 

시간이 괜찮다면 차나 한 잔 같이하자는 전화였습니다.

딱히 둘러 댈 핑계도 떠오르지 않아 그러마 대답했습니다.

마지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는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고 그는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조금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말한 후

내게 조언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거짓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내세울 것 없는 내게 그는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가볍게 스쳐가는 생각들을 그에게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제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던 만남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말이죠.

'내가 세월에서 건져 올려야 할 것은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이구나.

아무리 악한 사람도 그 그물을 오랫동안 드리우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진실한 마음 한 조각을 던져주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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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 글을 '공개'로 설정해 놓았다면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자신의 글을 읽은 다른 블로거,

또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반응에 대해 한번쯤은 의식할 듯합니다.

저만 그런가요?(그렇다면 이 글은 순전히 제 주관적인 견해가 되겠지만)

 

아무튼,

저도 가끔은(자주는 아닙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누가 뭐래도 번잡한 것을 싫어하고,

명예욕이 넘치거나 시기심이 많은 것도 아닌, 조금은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말입니다.

<팡세>를 쓴 파스칼도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독자의 반응을 의식한 듯합니다.

대문호 파스칼과 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시간이 날 때 재미삼아 끄적거리는 아마추어의 입장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도 제가 궁금해 마지않는 점은 제 글을 읽는 독자의 반응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일에 따라 블로그 방문객의 수에 약간의 편차가 있다고 할지라도,

글을 쓰는 제 입장에서 보면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또는 시간적 여유의 유무에 따라(조금 한가한 날은 제가 쓴 글을 훑어 보고 고치기도 함),

좋은 글(제가 보기에 그래도 괜찮다 싶은)과 나쁜 글(형편없어 보이는)로 나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의 판단은 번번이 빗나가곤 합니다.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던 글('전혀'는 아니겠네요. 조금의)은 오히려

폭발적인 반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이 읽히는 듯 보이는 반면

꽤나 공을 들이고 스스로도 만족해 하던(자뻑인가요?) 글은

그닥 인기가 없더군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죠.

오히려 일관되게 그랬었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궁금해 하지는 않았을 테죠.

참 알 수 없는 일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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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늘의 별을 동경하는 까닭은 어둠 속에서도 어둠을 배경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성긴 별 사이에는 도통 어둠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밝음 속에서 밝음만 도드라질 뿐이다.  자신보다 못한 것을 이용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결심.  별은 그렇게 빛난다.

 

이번주에 뉴스를 달구었던 '국정원 사태'를 보면서 인간의 추악함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했던 국가 공무원들이 갖은 선동과 모략으로도 모잘라 자신들의 추악함을 덮기 위해 국격과 국익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전 세계의 외교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  우리는 그 부끄러운 모습을 우리의 안방에서 보고야 말았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정치의 발전은 서로간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신뢰를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정원과 여당의 행태는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들의 추악함을 덮기 위하여 그보다 더 추악한 일을 함에도 한치의 죄의식이 없었다.  오히려 감언이설로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고자 했다.

 

스포츠 경기에는 규칙이 있고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마땅히 그 규칙을 따라야 한다.  하물며 선거에 있어서랴.  지난 대통령 선거는 게리맨더링보다 더 심한 규칙의 위반이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덕 본 게 없다고 한다.  예컨대 심판을 매수한 팀이 경기에서 실력으로 이겼다 치자.  그렇다고 심판을 매수한 잘못이 무마되는 것인가?  참으로 한심스럽다.  신뢰란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원칙의 준수에 있는 것이다.

 

시궁창 냄새에 더하여 똥 냄새가 진동하는 정치의 모습을 보면서 어둠 속에서 더한 어둠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별처럼 빛나는 정치의 모습은 언제나 볼 수 있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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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뭐 딱히 형식을 정해놓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하소서'하는 기도를 빙자한 바람이다.  그 전날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혹시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잘못과 오늘 만날 사람들에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한 속죄와 용서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것은 내게 마음으로만 하는 일종의 적선이자 보시인 셈이다.  그 일에는 돈이 들지 않는 일이니 나는 베풀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기원하며 한껏 선심을 쓰곤 한다.

 

이따금 너무 바쁘게 서두르는 날은 이것마저 까먹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찜찜하고 영 개운치가 않다.  하루 중 아주 잠깐의 짬을 내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닥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천지개벽할 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한심한 놈이 아닐 수 없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제부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눈길이 가곤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들이 견디며 겪어왔을 크고 작은 일들과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동병상련의 감정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나의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삶 전체가 하나의 학습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누군가의 행복을 비는 행위는 학습을 통한 깨달음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깨달음에도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행복했던 순간에서 얻는 것은 그닥 많지 않다.  어떨 때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무심히 흘려보내기도 한다.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지만 어느 나이에 이르게 되면 행복이라는 게, 행복했던 순간들이 마치 인생의 무임승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괜히 미안하고 허망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일지도 모르는 먼 미래에 누군가로부터 그 대가를 요구받을 것만 같아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행복을 비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불행을 빌어야 옳을지...  

 

나의 이런 생각이 바보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만으로도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진다.  고통을 피하려고 아등바등하거나 잔꾀를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힘든 고통의 순간도 그저 지나갈 뿐이고 그 뒤에는 반드시 어떤 깨달음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들곤 한다.  삶이라는 학습장에는 무임승차가 있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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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지 않은 결론에

너무도 쉽게 다다를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성급한 성격 때문에

때로는 판단할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서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무엇엔가 홀린 듯이 말이죠

어쩌면 귀찮아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내려진 결론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뒤엉켜져 이제는 정리조차 힘든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던가요

그 결과들을 멀뚱히 바라보며

혹은 부질없는 노력으로 제 자신을 괴롭히며

수많은 날들을 그렇게 속절없이 흘려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날들을 모두 모으면

내게 허락된 삶에서 몇 할이나 될까요?

 

우리는 오지도 않을 고도(Godot)를 기다리며

또는 갑자기 들이닥친 고도에 당황하며

어떠한 대책도 없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도 없이

참으로 뜬금없이 말이죠

날씨가 대책없이 더워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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