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뭐 딱히 형식을 정해놓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하소서'하는 기도를 빙자한 바람이다.  그 전날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혹시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잘못과 오늘 만날 사람들에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한 속죄와 용서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것은 내게 마음으로만 하는 일종의 적선이자 보시인 셈이다.  그 일에는 돈이 들지 않는 일이니 나는 베풀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기원하며 한껏 선심을 쓰곤 한다.

 

이따금 너무 바쁘게 서두르는 날은 이것마저 까먹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찜찜하고 영 개운치가 않다.  하루 중 아주 잠깐의 짬을 내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닥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천지개벽할 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한심한 놈이 아닐 수 없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제부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눈길이 가곤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들이 견디며 겪어왔을 크고 작은 일들과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동병상련의 감정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나의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삶 전체가 하나의 학습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누군가의 행복을 비는 행위는 학습을 통한 깨달음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깨달음에도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행복했던 순간에서 얻는 것은 그닥 많지 않다.  어떨 때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무심히 흘려보내기도 한다.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지만 어느 나이에 이르게 되면 행복이라는 게, 행복했던 순간들이 마치 인생의 무임승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괜히 미안하고 허망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일지도 모르는 먼 미래에 누군가로부터 그 대가를 요구받을 것만 같아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행복을 비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불행을 빌어야 옳을지...  

 

나의 이런 생각이 바보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만으로도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진다.  고통을 피하려고 아등바등하거나 잔꾀를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힘든 고통의 순간도 그저 지나갈 뿐이고 그 뒤에는 반드시 어떤 깨달음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들곤 한다.  삶이라는 학습장에는 무임승차가 있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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