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던져 놓은 세월의 그물을 통하여 무엇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 대답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잠깐 소나기가 내렸었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닥 친하지 않았던, 어쩌면 데면데면 굴었던, 낯을 붉히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죠.

 

시간이 괜찮다면 차나 한 잔 같이하자는 전화였습니다.

딱히 둘러 댈 핑계도 떠오르지 않아 그러마 대답했습니다.

마지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는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고 그는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조금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말한 후

내게 조언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거짓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내세울 것 없는 내게 그는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가볍게 스쳐가는 생각들을 그에게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제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던 만남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말이죠.

'내가 세월에서 건져 올려야 할 것은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이구나.

아무리 악한 사람도 그 그물을 오랫동안 드리우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진실한 마음 한 조각을 던져주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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