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의 가슴에서 거꾸로 나이를 먹는 듯합니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도 제 가슴 속에서는 제 키만큼 큰 가방을 메고 유치원으로 향하던 때와 그보다 더 이른 시기의, 말하자면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던 유아기의 그때로 퇴행을 거듭하곤 합니다.  그것은 마치 아이가 세월에 비례하여 쑥쑥 자라는 것과는 정 반대의 길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추석 명절에 처갓집을 방문하였을 때 저와 동서들에게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며 하셨던 장인어른의 말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든이 넘은 장인어른이 다섯 살 무렵에 찍었다는 가족사진이었습니다.  칠십 년도 더 지난 사진 속에서 당신은 뭔가에 잔뜩 주눅 든 모습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은 사진과 함께 그때의 추억 한 토막을 들려주시면서 한껏 그리움에 젖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쓸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데 지난 일들은 어제 일처럼 또렷해."라고 말이죠.

 

주말부부로 지내는 내게 아들은 각별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석에 함께 보냈던 시간이라야 고작 며칠이었지만 그 며칠도 친척들과의 어수선한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아들과 단 둘이서 호젓하게 보낸 시간은 불과 몇 시간을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화를 통하여 매일매일의 아들의 일상을 전해 듣고는 있지만 그리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부풀려지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런 까닭에 나는 아들을 만날 때마다 허락도 없이 아들의 물건들을 뒤적이곤 합니다.  아들의 손때가 묻은 레고 모형과 스케치북과 독서록 등. 그런 흔적들은 내 가슴 속에서 언젠가 아들의 지금 모습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석에 우연히 보았던 '고래'에 대해 쓴 아들의 영어 스피치 원고를 고치지 않고 옮겨 보았습니다. 

  

Whales are animals which live in seas. But they are not fish. They are mammals like humans. There are more than seventy- five different kinds of whales living all around the world's seas. We can divide whales into two main kinds: toothed whales and whalebone whales.  Toothed whales have teeth and hunt food by their teeth. Whalebone whales have baleens, which are like mustaches.  They use baleens to filter the food from the water by drinking and spitting water. Whales are born in water but they don't  die. It's because their tail comes out first and their mother pushes the baby to breathe. The baby knows that it shouldn't breathe until he or she reaches the surface. There are many kinds of whales. Many whales move in groups. Groups can be two or three upto hundreds of whales. The columns of water are actually their breath that is mixed with the cold air. Many people hunt whales. We should protect our giant friends living in seas. We can protect them by protesting whale hunting and telling our friends about it, too.  Thanks for listening to my speech!

 

아들은 내 가슴 속에서 여전히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지만 어쩌면 내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모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아내도, 부모님도, 형제들도 모두 내 마음 속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그리움의 세계에서는 항상 시간이 거꾸로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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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많지 않은 주제에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쓴다는 게 어쩌면 시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헌법 제21조에도 언론,출판의 자유가 있다고 하니 용기를 내어 써보려구요.

지금 쓰는 내용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사람마다 다 다를 수는 있겠지요.

제 생각으로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좋아지는 점이 꽤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들 단점을 찾는 것에만 급급할 뿐 장점은 말하지 않더군요.  두서없지만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런 까닭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점이 좋았어요.

어렸을 적에 무서워했던 귀신이나 요괴, 도깨비 등이 이제 그 실체를 알게 된 까닭인지 더 이상 두렵지 않더군요.  저는 어렸을 때 무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던 듯합니다.  두려워 하는 어른도 많았고, 어둠이 짙었던 밤도 두려웠고, 간간이 들리던 부엉이 울음소리도 무서웠습니다.  아, 또 있어요!  실체도 알지 못하던 '죽음'도 두려웠어요.  그랬던 제가 이처럼 무덤덤해질 수 있었던 데는 경험과 지식의 축적이 한몫한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내게서 두려움을 완전히 다 몰아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말이죠.

 

나이가 들면서 그동안 나를 지배해왔던,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했던 나의 감정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좋아요.  지나고 나면 다 후회할 일이지만 우리는 때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 파르르하며 화를 내곤 하잖아요?  나이가 어릴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게 마련이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해를 더하면서 실수를 통하여 배우는 게 많아지면 크게 화낼 일도, 크게 낙담할 일도, 또는 크게 기뻐할 일도 줄어들더군요.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어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기대가 줄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사람관계에 있어 좀 더 원만해졌다는 점이에요.  '생긴 대로 산다'는 말이 이제는 어떤 진리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디다.  13억 중국인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지셴린의 책인데요,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나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나쁜 사람은 결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내가 관찰한 몇몇 나쁜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변하지 않았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들을 위해 뭐라 변명을 해주고 싶어도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다.  어떤 때는 나도 정말 궁금하다.  세상에 정말 '나쁜 사람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짧고 간결하게 쓰려고 했는데 말이 길어지네요.  재주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이보다 훨씬 더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까 봅니다.  이제부터는 제 눈에 비친 꼴불견들을 쓰고 싶거든요.  젊어서는 별 느낌도 없었던 일들이 나이가 들면서 꼴불견으로 비춰지는 게 있습디다.

 

첫째는 나이 든 사람들의 성형입니다.  제 눈에는 꼴불견 1호로 보이거든요.  내 생각에 사람의 외모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서히 변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그래야만 본인도 정신적 충격을 덜 받을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성형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제 주변에도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거나 보톡스 주사를 맞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곧 닥칠 정신적 충격을 생각하면 불안불안하게만 보입니다.  마치 지진의 충격처럼 말이죠.  지진의 원리 아시죠?  지각과 상부 맨틀은 탄성체인 암석으로 되어 있어서 어느 한도까지는 구부러지지만 탄성한도를 넘으면 암석은 깨지고 그때 발생한 진동이지표에 전달됨으로써 땅이 흔들리는 원리죠.  즉 사람의 성형이라는 게 시간을 거스르는 행위이거나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도피 행위잖아요?  영원히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어느 날 의학적 도움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 본인이 받을 충격은 지진의 충격과 맞먹지 않을까요?

 

둘째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연과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사람은 어차피 한 번 죽게 마련이고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게 너무도 당연하죠.  그럼에도 몇몇 나이든 분들은 자신이 마치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자연을 파괴하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생태학자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저절로 생겨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감사와, 생동하는 어린 생명력에 대한 찬미와, 나를 둘러싼 모든 자연에 대한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솟아나야 마땅하거늘 개인의 들끓는 욕심은 나이도 잊게 하는가 봅니다.

 

제 눈에 비친 꼴불견도 나열하자면 이보다 한참이나 더 많습니다만 그만하렵니다.  제가 오히려 이상한 놈으로 보일까 봐서요.  저는 제 곁에서 자연스럽게 주름이 지는 제 아내가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제 아이의 놀라운 생명력도 감탄스럽구요.

 

오늘 아침에는 창밖으로 가는 빗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자동차 소리 등 이러저러한 삶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오더군요.  이런 기회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소리를 선별적으로 듣기 때문입니다.  외부 환경에 자리를 펴듯 마음을 펼쳐 놓지 않으면 이런 소리들은 결코 신의 연주곡처럼 들리지 않거든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감사가 늘어날수록, 나이 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일수록 우리의 젊은이들도 나이 든 사람들을 더욱 존경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것을 배우고 시간을 멈추려는 해괴한 짓거리는 당장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존경받지 못할 어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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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3-09-13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하게 느끼는 부분중에 하나가 나이를 먹을 수록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지는 부분이에요. 옛날은 연락 안하는 친구들이 너무 섭섭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가끔 결혼식, 아이들 돌...뭐 이런 행사때 얼굴 보는게 어디냐..그렇게 생각하니 섭섭한것도 없어요..

꼼쥐 2013-09-24 13:3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쩌면 열정이 식어 무덤덤해졌다고 부정적으로 평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나이가 들수록 여유롭고 편해졌다고 생각해요.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성긴 마음결로 순한 바람이 스칠 듯한 9월입니다.

명절을 코앞에 둔 번잡한 주말, 서두를 것도 없는데 마음만 분주하고,

아이처럼 괜스레 딴짓을 하며 한나절을 보내고 싶은 그런 날들이 쫓기듯 흘러갑니다.

 

 

과학과 연관된 책을 접할 때마다  나는 괜한 욕심을 부리곤 합니다.  전공 분야도 아닌데 말입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일까요.  아인슈타인에 대한 일화나 에피소드는 차고 넘치도록 읽거나 들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의 일대기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살아 있는 아인슈타인을 만난다 할지라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유행처럼 팔리는 자기 계발서를 몇 권쯤 읽어 본 분이라면 성공학 분야의 대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나도 언젠가 그의 책을 두어 권 읽어 본 듯합니다.  그러나 대가의 이면에 가려진 젊은 시절의 노력과 경험담은 얼핏 듣기만 하였을 뿐 책으로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느 유명인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힘겨웠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만큼 널리 읽힌 책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에게도 최근에 새로 구입한 <어린왕자>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 한 권의 책 속에는 우리가 전 인생에 걸쳐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요? <어린왕자>를 100번 이상 읽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합니다.  아마도 저와 같은 취향이 많지는 않더라도 더러 있지 않을까요. 그의 시니컬한 문장이 때로는 독자의 마음을 가볍게 할 때가 있습니다. 속 깊은 이야기도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능력이 그의 매력인 듯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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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3-09-0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꼼쥐님. ^^
몇번 방문은 했는데 게으른 유령 블로거라서 덧글을 늘 못 달고 갔다가 저와 같은 책 읽고 싶은 에세이 페이퍼 보고 반가워서 덧글 쓰고 후다닥 사라집니다.
저도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거든요. ^^
지난번 읽은 에세이는 이상하게 야동 순재가 아닌 야동 할배 하루키가 생각이 나서 진짜 즐겁게 읽었네요.

꼼쥐 2013-09-13 12:4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요즘은 블로그 업데이트를 잘 못하겠더라구요. 환절기라서 그런지 피곤하기만 하구 말이죠. 추곤증인가요? ㅎㅎ
 

"한국 사회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국가 중 종교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한 수준이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82조~246조원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 대통합'을 외치며 출범한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이제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은 정부도 어찌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수준까지 육박했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아침 운동길에 자주 만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다.

그분은 언제나 얇은 모시 적삼을 입고 산에 오른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산 중턱에는 여러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그분은 오직 그곳까지만 산행을 한다.  하필이면 내가 그곳에서 한참 운동을 하는 시간에 그분이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늘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노래다.  레퍼토리는 언제나 같다.  '잘 살아 보세'와 '애국가'.  가사를 다 외우지 못하였는지 그분의 노래는 귀에 거슬리다 못해 소음에 가깝다.  가끔은 추임새인 듯, 혹은 산에 온 기념인지 '후타타타!'하는 이상한 소리를 낸다.  '야호!' 대신인 듯도 보였다.

 

산에서 '야호'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행위는 야생동물들에게 지나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고 나는 그분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다.  나이가 많은 탓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가끔 그분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분이 살았던 시절, 독재의 서슬에 눌렸던 사람들은 모두 저렇게 세뇌를 당했고, 한마디 항거도 하지 못했으며,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도 그것이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닌 세뇌의 결과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가여움.  내가 운동을 다 마치기 전에 그분은 산을 내려간다.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내 행동에 있어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이다.  도덕과 예의를 중시하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을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 이래 가장 첨예한 갈등관계를 노정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더없이 안타깝고, 그 분열을 방치하는(혹은 방조하는) 정치권에 분노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하고 언어의 딸딸이가 난무하는 무슨 베스트라는 사이트마저 자신들의 정권유지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음으로 양으로 비호를 일삼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으며, 도덕성을 상실한 이런 정치인들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갈등의 해결은 힘 있는 자의 몫이다.  아무리 가까운 자신의 측근들일지라도 원칙을 어긴 자는 과감히 처벌하는 모습을 그들 스스로가 먼저 보이지 않는다면 갈등은 결코 봉합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정치 권력자들이 역사에서 비겁자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오직 그 길밖에 없음을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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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과 그리움이 번듯하게 자리를 펴고 누울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경과를 실감하게 된다.

그때의 모습은 마치 기간이 만료된 세입자에게 하는 집주인의 막무가내식 어깃장을 묵묵히 듣고만 있는 상황과 흡사하다.

 

어제, 오늘은 아침 기온이 제법 낮아져서인지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조금 늘었다.

계절은 이렇게 시나브로 가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불볕 더위에서 습기가 한 겹 벗겨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이제 조금 있으면 아침 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이 불어

오슬오슬 추위를 느낄 것이다.

 

아무 것도 예정된 것은 없다.

시간 속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만 숨쉬고 있을 뿐.

그러나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 되돌아 보면

우리는 이미 정해진 길을 걸어 왔음을,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었음을

어슴프레 짐작하게 된다.

 

삶의 경이는 바로 그곳에 위치한다.

내 의지에 기대어 살아왔는데,

그때는 보이지 않던 길에 내 발자국이 찍힌 모습을 보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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