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국가 중 종교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한 수준이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82조~246조원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 대통합'을 외치며 출범한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이제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은 정부도 어찌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수준까지 육박했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아침 운동길에 자주 만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다.

그분은 언제나 얇은 모시 적삼을 입고 산에 오른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산 중턱에는 여러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그분은 오직 그곳까지만 산행을 한다.  하필이면 내가 그곳에서 한참 운동을 하는 시간에 그분이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늘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노래다.  레퍼토리는 언제나 같다.  '잘 살아 보세'와 '애국가'.  가사를 다 외우지 못하였는지 그분의 노래는 귀에 거슬리다 못해 소음에 가깝다.  가끔은 추임새인 듯, 혹은 산에 온 기념인지 '후타타타!'하는 이상한 소리를 낸다.  '야호!' 대신인 듯도 보였다.

 

산에서 '야호'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행위는 야생동물들에게 지나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고 나는 그분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다.  나이가 많은 탓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가끔 그분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분이 살았던 시절, 독재의 서슬에 눌렸던 사람들은 모두 저렇게 세뇌를 당했고, 한마디 항거도 하지 못했으며,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도 그것이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닌 세뇌의 결과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가여움.  내가 운동을 다 마치기 전에 그분은 산을 내려간다.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내 행동에 있어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이다.  도덕과 예의를 중시하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을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 이래 가장 첨예한 갈등관계를 노정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더없이 안타깝고, 그 분열을 방치하는(혹은 방조하는) 정치권에 분노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하고 언어의 딸딸이가 난무하는 무슨 베스트라는 사이트마저 자신들의 정권유지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음으로 양으로 비호를 일삼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으며, 도덕성을 상실한 이런 정치인들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갈등의 해결은 힘 있는 자의 몫이다.  아무리 가까운 자신의 측근들일지라도 원칙을 어긴 자는 과감히 처벌하는 모습을 그들 스스로가 먼저 보이지 않는다면 갈등은 결코 봉합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정치 권력자들이 역사에서 비겁자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오직 그 길밖에 없음을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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