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끌리는 사람들, 호감의 법칙 50 - 그 사람은 왜 또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까?
신용준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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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정작 말을 하고 있는 당사자는 이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려 자신은 이미 남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꼰대' 대열에 동참했다는 것이며, 인정하기 싫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기피 대상 1순위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며,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여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격체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알라.'로 통칭되는 무지에 대한 자각이 무감해졌음을 의미하며, 지금까지의 경험 이외의 다른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도 이런 뜻이리라. 다른 이의 충고나 조언은 무시한 채 오직 자신의 고집 대로 행동한다는 것.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마치 어렸을 때 경험했던 답답하기만 한 학교 담임선생 같은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표현한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꼰대 취급받는다."  (p.274)


비즈니스 강의 분야에서 수강생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명강사이자 기업교육 전문회사 에듀콤 교육연구소 대표이사인 신용준 강사의 저서 〈괜히 끌리는 사람들, 호감의 법칙 50〉에는 상대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부터 관계를 발전시키는 법, 좋은 인상을 남기는 대화법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와 사례를 들어 집필한 심리학 자기계발서인 셈이다. 사실 인간관계에도 어느 정도의 연습이 필요하지만 학업을 마친 후 취업과 동시에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인간관계에 의해 지치고 불편한 감정이 지속되다 보면 나의 단점을 개선하여 호감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증가하게 된다. 즉 자신의 단점보다는 타인의 단점만 부각된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인식으로 인해 틀어진 인간관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상대방에 의해 촉발되었을 뿐 나와는 무관하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는 세상에 불평한다. 성공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이다. 여기에도 호감의 법칙이 존재한다. 호감이 가기 때문에 같이 일하고 싶어지고, 일을 맡겨도 마음이 편하다. 실력이 월등히 차이 나면 물론 기회는 실력 좋은 사람에게 간다. 하지만 실력은 일반적으로 긴 시간 동안 반복하여 익히면 누구나 일정한 수준에 올라갈 수 있다. 실력이 엇비슷한 상황이면 역시나 호감 가는 사람에게 일을 주고 싶다는 뜻이다. 결국은 실력이 비슷해지면 호감 가는 사람이 더 잘나간다."  (p.17)


삶은 90퍼센트 이상이 인간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지 않는 한 인간관계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좋은 삶이란 좋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인간관계로 상황이 유리해질 수도 불리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삶에 있어서 호감이라는 전략무기를 갖출 수만 있다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좀 더 좋은 혜택을 얻을 수도 있고 좀 더 깊은 만족감을 경험할 수도 있음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생(一生)을 살고 있다. 딱 한 번뿐인 인생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말하지만 한평생 살며 무언가 이루어 놓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 인생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꼭 대단하고 시대를 흔드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적어도 남들 앞에 열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법이다."  (p.224)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동안에 쌓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인생에 필요한 지식을 모두 습득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와 같은 말투는 자신의 경험에 준거해서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인 양 일반화하는, 소위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오류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배움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에게 남는 것은 오직 아집과 불평뿐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수히 많고, 내가 아는 것이라곤 티끌처럼 아주 작고 미미하다는 생각이 선행되어야만 저자의 충고 또한 유효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자신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방법부터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방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 방법, 자신의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방법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는 방법까지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호감도 증진 방법에 대해 한 수 배워보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독자의 바른 자세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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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고 싶은 기분 - 요조 산문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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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혹은 몇십 년 동안 해왔던 자신의 직업에 대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마치 어떤 사명감이나 직업의식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인류애의 발현인 양 포장하는 사람들을 볼라치면 피식 웃음이 나곤 한다. 사명감이나 애국심 혹은 개별 직업인의 소명 의식은 그렇게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전력의 직원이 매일 아침의 출근길에서 '나는 오늘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원활한 전기 공급을 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 다짐하며 기쁜 마음으로 출근할 리도 만무하며,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인들 역시 '오늘도 나의 목숨을 바쳐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짐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며, 오늘 퇴근하면 무엇을 할까? 생각하거나 근사한 휴가 계획에 들뜰 뿐이다. 99%의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일 뿐인 까닭에 사명감이나 소명 의식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발생하지 않는다. 예컨대 '블랙아웃(대정전)'이나 전쟁과 같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포장 기술은 그 지위가 높을수록,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 클수록, 그리고 개인의 학력과 재산에 비례하여 높아진다. 말하자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 높을수록 자신이 마치 특별한 사명감으로 그 일을 해왔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양, 개인의 영달이나 재산 축적의 목적이 아닌 오직 직업적 소명의식과 희생정신으로 힘들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낸다는 식으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와 같은 양태가 대한민국의 지도층 인사를 불신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덧붙였다. "기업들 보면요, 어떻게든 세금 덜 내려고 발악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놓고 불우이웃 성금 보내면서 좋은 기업인 척하고,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게 얄미워 보이는 거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보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p.240)


뮤지션이자 작가이며 동시에 책방 주인이기도 한 요조의 산문집 <만지고 싶은 기분>을 읽는 동안 나는 불현듯 화가 났던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물론 자신 주변의 이웃들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저자의 따뜻한 마음씨가 고스란히 담긴 이런 책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고, 평생을 검사로 살았다는 어느 권력자의 회고록은 베스트셀러 상단에 버젓이 이름을 올린 걸 보면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검사 재임 기간 동안 피의자를 협박하고, 온갖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에 편승하였던 그가 자신이 마치 정의와 공정의 화신이었던 것처럼 쓰고 있는,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구린내가 진동하는 책을 그렇고 그런 이들이 서로 짬짬이로 돈을 보태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만드는 일은 우리 사회의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하면 요조의 글은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답고, 따뜻했던가.


"내가 무너졌을 때 일으켜준 책과, 내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게 도와준 음악을 생각한다. 예술과 대화할 때, 예술과 나, 우리 둘은 차 안에 있다. 나는 아스팔트에 감탄하면서 운전을 하고, 우리는 꼭 필요한 침묵 속에 있다."  (p.105)


나도 이제 퇴직 이후의 삶을 계획해야 할 나이가 되고 보니 가까운 친구들 중 몇몇은 이미 명예퇴직을 하고 다니던 직장에서 완전히 떠나버렸다. 몸은 여전히 쓸 만한데 딱히 쓸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남들처럼 회고록이나 써볼까?' 하는 유혹이 간혹 드는지 지나가는 말로 슬쩍 운을 떼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슨 말이냐며 펄쩍 뛴다. 그럴 시간이면 차라리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이나 하라고 이른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야 할 사람은 쉽게 잊힐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좋다. 회고록이랍시고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사람들의 잊을 권리마저 빼앗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요조처럼 작고 힘없는 존재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는 이의 글이 지금보다 더 많이 출판되고, 그로 인하여 독자들 또한 그렇게 변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이 세상을 살다 간 지구인의 의무인지도 모른다.


"이슥한 밤길, 아까 받은 촉촉한 백설기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느릿느릿 올라가는 언덕길이 조금 심심하길래 나의 칠순 잔치를 한번 상상해보았다. 홍대 앞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제 '칠순 잔치'는 지울 수 없는 글자가 되었으니, 이렇게 된 거, 몇십 년 뒤 우리가 칠십 세가 되는 시절에 정말 아름답고 신나는 칠순 잔치들로 홍대 앞을 정신 없이 만들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258)


우리 욕심의 얼룩이 마치 자본주의의 원래 문양인 듯 착각하며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은 온통 회고록이라는 이름의 거짓 명함들이 서점을 장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요조와 같이 작은 목소리의 주인들은 점차 자신의 설 자리를 잃고 골목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서로 힘을 합쳐 세상을 향해 외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식들은, 우리의 손주들은 미세먼지 가득한 대기와 방사능 오염수 가득한 바다를 보며 세상을 떠난 우리들의 무능과 비겁함을 끝없이 원망할지도 모른다. 작고 욕심 없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외면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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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조 페슬러 지음, 홍한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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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교과서에 등장하는 흔하고 일반적인 답변도 있겠지만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대답 또한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함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심리를 알기 위함일 수도 있고,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함일 수도 있으며, 삶의 의미를 깨닫고자 혹은 언젠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멋진 작품을 쓰고자 함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위에 열거했던 여러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을 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남들에 비해 책을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린 축에 속하는 나는 책을 읽는 동안에는 본의 아니게 꼼꼼히 읽게 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대체로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나 전체의 줄거리, 심지어 책에 대한 인상까지도 모두 잊으려 노력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 책의 제목을 보더라도 처음 보는 책인 양 반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고, 읽었는지 안 앍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은 다들 책의 내용이나 문장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게 뭔 말이냐고?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머리가 나쁜 나로서는 처음 받은 책을 단 한 번 읽어서는 책의 내용을 도무지 기억도 못할 뿐만 아니라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을 기억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까닭에 어설프게 읽은 책을 나중에 다시 읽기 위해서라도 책의 내용이며 저자 혹은 책과 관련된 다른 정보들을 모두 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어쩔 수 없이 리뷰를 남겨야 하는 경우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문예지 '애틀랜틱' 온라인에 '바이 하트'를 운영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조 페슬러는 책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을 주목했었나 보다. 어찌 보면 나와는 상반된 입장에서 독서의 효용을 관찰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의 저자인 조 페슬러는 스티븐 킹, 할레드 호세이니, 엘리자베스 길버트 등 작가 33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인생을 바꾼 한 문장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작가는 다른 이의 글이나 문장이 어떻게 자신의 작품이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 그 순간들을 서술한다.


"글을 쓰다가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때에도 고집스러운 기쁨에 매달리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의 방법이다. 글쓰기란 심리적으로 매우 극단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비극, 재앙, 감정, 실패 등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의 고통을 비극이 아니라 신기한 것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작가로서의 길이 한결 평탄해졌다."  (p.30)


예컨대 어떤 문장을 접한 후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어떻게 성숙해지고 깊어지며 견고해졌는지, 문득 떠오른 창의적 영감이 다른 작품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리고 작가의 인생관이나 작품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한 순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꿈이 채 영글지 않은 청소년기에 다가오기도 하며, 늦은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책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이 책의 성격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문학비평이고 어떤 면에서는 작법 수업이고 어떤 면에서는 공개작업실이었다"라고 말한다.


"나는 사람의 진정한 면은 여러 다양한 이유 때문에 감춰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비스럽고 묘한 부분이다. 나는 사람은 정말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의식하고 쓰지 않아도 내 글에 그런 면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  (p.232)


인생을 바꾼 한 문장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전업 작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세상을 처참하면서도 경이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잭 길버트의 시를 읽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엘리자베스 길버트나 주노 디아스는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읽고 문학이 역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잔신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책에 밑줄을 그은 한 문장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거나 그 시발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작가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하나의 시를 언급했던 점은 의미심장하다. 삶의 은유가 담긴 시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지향점을 알려주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꿈을 꾼다. 독자가 서점에서 시집 코너를 훑어본다. 한 권을 뽑아 몇 편을 읽는다. 그런 다음 책을 다시 꽂는다. 이틀 뒤에, 새벽 네 시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생각한다. '그 시 다시 읽고 싶어! 어디에 있지? 그 책을 구해야겠다.'"  (p.283)


나는 오늘도 읽었던 책을 모두 잊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한 번 읽었던 그 책을 기필코 다시 읽겠다는 다짐이자 가까운 미래의 내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다. 나는 비록 책 속의 멋진 문장을 암기하여 낭랑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는 없지만 내 몸에, 내 시간에, 내 삶에 스며든 한 권의 책이 나를 조금 더 유익한 방향으로 안내하리라고 믿는다. 그런 까닭에 책은 스며드는 것이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나의 고집을 여전히 꺾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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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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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 추석을 코앞에 둔 어느 날 농산물 절도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한 할머니의 사연은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세 살 터울의 언니마저 돈을 벌어 오겠다며 떠난 뒤 호적 등록도 되지 않은 몸으로 75세의 할머니가 될 때까지 줄곧 혼자 살아왔다는 할머니의 사연은 그간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두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삶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니와 헤어진 후 식모살이와 식당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할머니는 60대에 접어들면서 주덕읍의 한 여인숙에 자리를 잡고 산나물을 캐 장터에서 팔아 생활을 이어왔지만 여인숙 월세 15만 원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던 할머니는 결국 다른 이의 농작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경찰의 도움으로 주거지와 긴급복지서비스를 받게 되었고 호적 취득 절차도 밟게 되었다고 하는 데, 이와 같은 따뜻한 도움에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한밤중의 아이>를 읽는 독자라면 어쩌면 평생을 무적자로 살았던 그 할머니의 사연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렌지 역시 호적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가는 어린 소년이기 때문입니다. 유흥가에서 생활하는 엄마 아빠는 어린 렌지를 홀로 남겨 두었고, 돌봐줄 사람 하나 없었던 렌지는 나카스 전역을 떠돌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가게 쪽에서도 렌지는 귀여운 마스코트가 되었다. 담장을 넘어 어디선지 모르게 찾아오는, 잘 길들여진 남의 집 고양이 같은 존재였다. 엄마 아카네는 클럽에서, 그리고 아빠 마사카즈는 호스트로 밤일을 하고 있었다. 렌지가 태어난 곳도 이곳 나카스였다. 쥬오 거리 일대에서 렌지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간혹 이름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한밤중에 술 취한 어른들 사이를 쪼르르 뛰어다니는 어린애라고 하면 이미 유명 인사였다 나카스 사람들은 그를 '한밤중의 아이'라고 불렀다."  (p.36~37)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나카스 파출소에 첫 부임한 히비키는 한밤중에 유흥가 주변을 맴도는 어린 렌지가 그저 불쌍하기만 합니다. 순찰 도중에 렌지를 만나기라도 하면 음료수를 사주기도 하고, 근무가 없는 날에는 렌지가 호적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알아보곤 합니다. 히비키는 아동종합상담센터로, 다시 구청이나 법무국을 오가며 마치 제 일처럼 힘을 씁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부모를 설득해 서류를 제출하라는 형식적인 대답뿐 달리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친구도 없이 나카스 전역을 떠돌던 렌지는 어느 날 자신과 나이가 같은 여자 아이 히사나를 만납니다. 호적이 없어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렌지와는 달리 룸살롱을 경영하는 유코를 엄마로 둔 히사나는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없지만 말입니다.


"요즘 히사나는 내 친아빠는 저런 식으로 눈이 핑핑 돌게 바뀌는 엄마의 남자들 중 누군가였는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일은 깊이 따져 보고 싶지도 않았다. 동시에 가족이라는 것에 더 이상 희망을 품지 않았다. 나라는 인간은 아무도 원치 않는데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인지도 모른다. 렌지의 소문은 그런 히사나에게 뭔가 큰 힘이 되었다." (p.136~p.137)


밤거리를 배회하며 나카스 지역의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던 어느 날, 엄마인 아카네가 출산에 대비해 외가로 떠나게 됩니다. 집에는 이제 아빠인 마사카즈와 렌지 두 사람뿐입니다. 그때 마침 아카네의 전 남편이 찾아와 마사카즈를 폭행합니다. 머리를 크게 다친 마사카즈는 결국 병원으로 후송됩니다. 갈 곳이 없어진 렌지는 외가로 보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카타 지역으로 되돌아옵니다. 멀쩡한 집을 두고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던 겐타는 자신의 집을 렌지에게 내어줍니다.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렌지를 어린 히사나가 헌신적으로 보살핍니다. 자신의 엄마에게서 받은 용돈으로 생활비를 하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렌지에게 가르치기도 합니다. 사고 이후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렌지도 지역 축제인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를 다시 보게 되면서 전에 알던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합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열일곱 살이 된 렌지는 나이를 속인 채 호스트 클럽의 넘버원이 됩니다. 그런 렌지 앞에 어느 날 엄마인 아카네와 여동생 토마가 찾아옵니다. 그 후로 아카네는 매일같이 찾아와 렌지에게 돈을 요구합니다. 결국 렌지는 호스트 클럽을 그만두고 요리사인 헤이지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렌지는 헤이지와 함께 어릴 적부터 그렇게 원했던 야마카사 축제에 참가할 준비를 합니다.


"렌지는 육체나 규칙이나 사회성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 특별한 요소로 구성된 존재인 것이라고 겐타는 생각했다. 늘 정의를 품고 대했고 순간순간 외경심을 느끼는 일도 있었다. 렌지가 처한 환경에 대해서도 겐타는 정령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렌지를 덮친 슬픈 폭력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도 렌지라면 대처할 수 있다, 성장을 위해 미리 준비된 시련, 숙명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생각에 딱히 걱정도 하지 않았다."  (P.324)


유코의 룸살롱에서 일하던 아키네를 감옥에서 출소한 그녀의 전 남편 후미아키가 찾아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렌지도 결국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우리는 어쩌면 서로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각자의 좁은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어떤 큰 사건이 터졌을 때나 겨우 아주 잠깐 타인에 대해 생각할 뿐 대부분의 시간은 오직 자신의 삶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지요. 참으로 이기적인 동물이 인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본의 정치인도, 대한민국의 정치인도 모두 일제의 만행에 대해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일 테지요. 마치 남의 일인 양 말입니다. 더없이 맑은 봄날, 미세먼지로 대기는 온통 탁하고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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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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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수 있다는 것과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 의미와 실행의 측면에서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인다. 흩어졌던 삶의 흔적들을 어떻게든 한 곳에 모아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하고, 간추리고 덧붙이며, 객관적 사실에 가깝도록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은 글을 쓸 수 있는 아무개가 어느 날 갑자기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한 자리에 앉아 오래도록 기억을 되살리고, 때로는 생각나는 누군가와 긴 통화를 이어가며, 쓰고자 하는 글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동안 어깨가 쑤시고, 때로는 눈이 침침해져 오며,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설 때마다 우두둑우두둑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참아내야 하는 수고보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더 큰, 소수의 몇몇 사람만이 글로써 자신의 삶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라는 두 단어의 클리셰를 생각 없이 받아들인 건 얼마간 젊음과 무지 때문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과 평범함이라는 환상은 관습적인 결혼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침실에서 거실에서 서재에서 작업실로 갈 때마다 우리가 발 들인 이 과정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결혼이라는 마법이 통하게 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행동들을 점점 더 예리하게 느꼈다. 우리는 스스로를 창의적인 작업에만 집중할 줄 아는 사람들로 보았다."  (p.217)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혹은 에세이스트로서 독보적인 글쓰기를 보여주었던 작가 비비언 고닉의 회고록 <사나운 애착(Fierce Attachments)>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아, 작가란 천상 타고 태어나는 것이구나.' 하는 절망 섞인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근래에 읽었던 어느 책에선가 '일상과 그 반복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면, 그것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느냐 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물음에 대해 비비언 고닉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대답하고 있는 듯했다.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비비언 고닉은 자신의 엄마와 긴 세월을 함께 보냈던 브롱크스의 4층짜리 다세대주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것은 지금의 고닉을 만든 정신적 토대인 동시에 그녀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곳에서 함께 살았던 노동계급, 이민자 여성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그 순간 나는 그 거리의 여자가 나를 어떤 면에서 감동시켰다고 인식했다. 그의 존재감, 그의 외양 하나하나가 나를 동요시켰다. 그를 낙담한 사람, 망가지고 병든 존재로 상정하고 내가 그를 치유하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미지는 무의식의 장막을 뚫고 들어와 스스로 발전해나갔다. 나는 그를 치유하고 그는 변화한다. 어느덧 여자의 좁았던 어깨는 넓어지고 피부는 깨끗해지며 머리는 단정해진다. 무엇보다 눈빛이 진지해지고 결연한 의지가 생겨난다. 그러나 내가 무슨 상상을 하건 가을은 깊어졌고 밤은 점점 더 추워졌으며 여자는 얇은 드레스와 찢어진 숄 안에서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p.88~p.89)


현재 로어 맨해튼에서 서로 1.5km 정도 떨어져 살며 종종 만나 함께 산책도 한다는 고닉 모녀는 그때마다 서로를 향한 애정이나 애틋함으로 감싸기보다는 할퀴고 물어뜯는 말로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산책을 멈추지 않는다.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주택 안팎에 살았던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서로 묻고 대답하면서 시간 여행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고닉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시나브로 자신의 것으로 적용하고 체화해갔던 여자들의 사랑, 시기, 질투, 신의, 성애적 욕망을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과 움직임 등은 사실 고닉 자신의 정체성인 동시에 다시 떠올리기 싫은 희미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다세대주택에 살았던 다른 여자들에 비해 엄마는 똑똑하고, 웃기고, 활기 넘치고,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다. 비록 엄마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때로는 그 세상을 열렬히 원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고 아빠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엄마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부엌을 떠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엄마는 다른 모든 이의 슬픔을 독차지하려 했고, 아빠의 죽음에서 절대로 빠져나오지 않기로 결심한 듯 행동했다. 이때부터 엄마의 고통은 딸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딸이 거주하는 국가, 바짝 엎드려 따라야 하는 법과 규칙이 되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딸은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엄마의 고통에서 기원한 그 다짐은 딸의 새로운 고통이 되어 자신을 겨누고 만다.


"그날 저녁 내내 슬프고 고요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줄곧 엄마에게 내려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밤 엄마는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처럼 보이는 주름지고 지친 노인의 얼굴. 하지만 지난 세월은 엄마를 엄마만의 세계로 끌고 가고 눈에는 다시 그 혼란이 찾아온다. 엄마를 놓아주지 않는 저 끈질긴 삶이라는 혼란.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p.300)


비비언 고닉의 회고록 <사나운 애착>은 여성 작가의 회고록에 마치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진부한 소재이지만, 생생한 묘사와 구체적 대화를 적절히 엮은 기록으로 인해 글이라기보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들 모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에 담는 전속 촬영기사를 어린 시절부터 곁에 두고 일을 시켰던 것처럼 어쩌면 그렇게 세세한 것들을 기억하여 글로 옮길 수 있었는지 읽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팔순의 노모를 대하는 사십대 후반의 딸은 남편을 잃은 슬픔을 끌어안은 채 상실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답답한 게 아니라 흐르는 세월을 붙잡지 못하는 자신의 불안과 곧 다가올 자신의 상실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에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닐지언정 책상이 잠재적 구원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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