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조 페슬러 지음, 홍한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교과서에 등장하는 흔하고 일반적인 답변도 있겠지만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대답 또한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함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심리를 알기 위함일 수도 있고,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함일 수도 있으며, 삶의 의미를 깨닫고자 혹은 언젠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멋진 작품을 쓰고자 함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위에 열거했던 여러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을 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남들에 비해 책을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린 축에 속하는 나는 책을 읽는 동안에는 본의 아니게 꼼꼼히 읽게 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대체로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나 전체의 줄거리, 심지어 책에 대한 인상까지도 모두 잊으려 노력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 책의 제목을 보더라도 처음 보는 책인 양 반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고, 읽었는지 안 앍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은 다들 책의 내용이나 문장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게 뭔 말이냐고?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머리가 나쁜 나로서는 처음 받은 책을 단 한 번 읽어서는 책의 내용을 도무지 기억도 못할 뿐만 아니라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을 기억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까닭에 어설프게 읽은 책을 나중에 다시 읽기 위해서라도 책의 내용이며 저자 혹은 책과 관련된 다른 정보들을 모두 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어쩔 수 없이 리뷰를 남겨야 하는 경우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문예지 '애틀랜틱' 온라인에 '바이 하트'를 운영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조 페슬러는 책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을 주목했었나 보다. 어찌 보면 나와는 상반된 입장에서 독서의 효용을 관찰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의 저자인 조 페슬러는 스티븐 킹, 할레드 호세이니, 엘리자베스 길버트 등 작가 33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인생을 바꾼 한 문장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작가는 다른 이의 글이나 문장이 어떻게 자신의 작품이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 그 순간들을 서술한다.


"글을 쓰다가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때에도 고집스러운 기쁨에 매달리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의 방법이다. 글쓰기란 심리적으로 매우 극단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비극, 재앙, 감정, 실패 등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의 고통을 비극이 아니라 신기한 것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작가로서의 길이 한결 평탄해졌다."  (p.30)


예컨대 어떤 문장을 접한 후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어떻게 성숙해지고 깊어지며 견고해졌는지, 문득 떠오른 창의적 영감이 다른 작품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리고 작가의 인생관이나 작품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한 순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꿈이 채 영글지 않은 청소년기에 다가오기도 하며, 늦은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책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이 책의 성격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문학비평이고 어떤 면에서는 작법 수업이고 어떤 면에서는 공개작업실이었다"라고 말한다.


"나는 사람의 진정한 면은 여러 다양한 이유 때문에 감춰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비스럽고 묘한 부분이다. 나는 사람은 정말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의식하고 쓰지 않아도 내 글에 그런 면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  (p.232)


인생을 바꾼 한 문장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전업 작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세상을 처참하면서도 경이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잭 길버트의 시를 읽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엘리자베스 길버트나 주노 디아스는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읽고 문학이 역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잔신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책에 밑줄을 그은 한 문장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거나 그 시발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작가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하나의 시를 언급했던 점은 의미심장하다. 삶의 은유가 담긴 시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지향점을 알려주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꿈을 꾼다. 독자가 서점에서 시집 코너를 훑어본다. 한 권을 뽑아 몇 편을 읽는다. 그런 다음 책을 다시 꽂는다. 이틀 뒤에, 새벽 네 시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생각한다. '그 시 다시 읽고 싶어! 어디에 있지? 그 책을 구해야겠다.'"  (p.283)


나는 오늘도 읽었던 책을 모두 잊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한 번 읽었던 그 책을 기필코 다시 읽겠다는 다짐이자 가까운 미래의 내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다. 나는 비록 책 속의 멋진 문장을 암기하여 낭랑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는 없지만 내 몸에, 내 시간에, 내 삶에 스며든 한 권의 책이 나를 조금 더 유익한 방향으로 안내하리라고 믿는다. 그런 까닭에 책은 스며드는 것이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나의 고집을 여전히 꺾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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