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 싶은 기분 - 요조 산문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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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혹은 몇십 년 동안 해왔던 자신의 직업에 대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마치 어떤 사명감이나 직업의식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인류애의 발현인 양 포장하는 사람들을 볼라치면 피식 웃음이 나곤 한다. 사명감이나 애국심 혹은 개별 직업인의 소명 의식은 그렇게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전력의 직원이 매일 아침의 출근길에서 '나는 오늘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원활한 전기 공급을 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 다짐하며 기쁜 마음으로 출근할 리도 만무하며,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인들 역시 '오늘도 나의 목숨을 바쳐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짐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며, 오늘 퇴근하면 무엇을 할까? 생각하거나 근사한 휴가 계획에 들뜰 뿐이다. 99%의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일 뿐인 까닭에 사명감이나 소명 의식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발생하지 않는다. 예컨대 '블랙아웃(대정전)'이나 전쟁과 같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포장 기술은 그 지위가 높을수록,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 클수록, 그리고 개인의 학력과 재산에 비례하여 높아진다. 말하자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 높을수록 자신이 마치 특별한 사명감으로 그 일을 해왔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양, 개인의 영달이나 재산 축적의 목적이 아닌 오직 직업적 소명의식과 희생정신으로 힘들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낸다는 식으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와 같은 양태가 대한민국의 지도층 인사를 불신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덧붙였다. "기업들 보면요, 어떻게든 세금 덜 내려고 발악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놓고 불우이웃 성금 보내면서 좋은 기업인 척하고,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게 얄미워 보이는 거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보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p.240)


뮤지션이자 작가이며 동시에 책방 주인이기도 한 요조의 산문집 <만지고 싶은 기분>을 읽는 동안 나는 불현듯 화가 났던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물론 자신 주변의 이웃들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저자의 따뜻한 마음씨가 고스란히 담긴 이런 책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고, 평생을 검사로 살았다는 어느 권력자의 회고록은 베스트셀러 상단에 버젓이 이름을 올린 걸 보면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검사 재임 기간 동안 피의자를 협박하고, 온갖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에 편승하였던 그가 자신이 마치 정의와 공정의 화신이었던 것처럼 쓰고 있는,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구린내가 진동하는 책을 그렇고 그런 이들이 서로 짬짬이로 돈을 보태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만드는 일은 우리 사회의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하면 요조의 글은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답고, 따뜻했던가.


"내가 무너졌을 때 일으켜준 책과, 내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게 도와준 음악을 생각한다. 예술과 대화할 때, 예술과 나, 우리 둘은 차 안에 있다. 나는 아스팔트에 감탄하면서 운전을 하고, 우리는 꼭 필요한 침묵 속에 있다."  (p.105)


나도 이제 퇴직 이후의 삶을 계획해야 할 나이가 되고 보니 가까운 친구들 중 몇몇은 이미 명예퇴직을 하고 다니던 직장에서 완전히 떠나버렸다. 몸은 여전히 쓸 만한데 딱히 쓸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남들처럼 회고록이나 써볼까?' 하는 유혹이 간혹 드는지 지나가는 말로 슬쩍 운을 떼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슨 말이냐며 펄쩍 뛴다. 그럴 시간이면 차라리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이나 하라고 이른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야 할 사람은 쉽게 잊힐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좋다. 회고록이랍시고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사람들의 잊을 권리마저 빼앗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요조처럼 작고 힘없는 존재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는 이의 글이 지금보다 더 많이 출판되고, 그로 인하여 독자들 또한 그렇게 변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이 세상을 살다 간 지구인의 의무인지도 모른다.


"이슥한 밤길, 아까 받은 촉촉한 백설기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느릿느릿 올라가는 언덕길이 조금 심심하길래 나의 칠순 잔치를 한번 상상해보았다. 홍대 앞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제 '칠순 잔치'는 지울 수 없는 글자가 되었으니, 이렇게 된 거, 몇십 년 뒤 우리가 칠십 세가 되는 시절에 정말 아름답고 신나는 칠순 잔치들로 홍대 앞을 정신 없이 만들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258)


우리 욕심의 얼룩이 마치 자본주의의 원래 문양인 듯 착각하며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은 온통 회고록이라는 이름의 거짓 명함들이 서점을 장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요조와 같이 작은 목소리의 주인들은 점차 자신의 설 자리를 잃고 골목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서로 힘을 합쳐 세상을 향해 외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식들은, 우리의 손주들은 미세먼지 가득한 대기와 방사능 오염수 가득한 바다를 보며 세상을 떠난 우리들의 무능과 비겁함을 끝없이 원망할지도 모른다. 작고 욕심 없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외면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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