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박근영 지음, 하덕현 사진 / 나무수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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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책의 제목이 맘에 쏙 들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종일 내렸던 어제, 나는 아침부터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까닭도 없는 본원적 슬픔이 찾아들고 나는 그때마다 죽음과 같은 안식을 느끼곤 한다.  감정의 골을 깊게 파면 그 바닥에는 언제나 슬픔의 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심연의 슬픔은 평화의 다른 표현일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하여, 처연한 슬픔은 오히려 평화롭다.

 

나는 이런, 다소 쓸쓸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이따금 음악처럼 들리는 빗소리와 물동그라미의 잔상을 떠올리며 아들 녀석의 어릴 적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대여섯 살 무렵의 아들은 뜀박질을 좋아했다.  저만치 앞서 달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환하게 웃곤 했다.  비 온 다음날의 외출에서는 인도에 고인 물웅덩이를 발로 힘차게 튀겨 바지를 흠뻑 적신 적도 많았다.  그것은 말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랬던 아이가 자라 이제는 제 주관대로 하려 든다.  조금 더 자라 성인이 되면 제 어릴 적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창문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네 여자는 간이역에 앉아 먼 곳에서 당도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탈 기차가 오면 한 명씩 그 자리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향할 것이었다.  누군가는 남아 손을 흔들어주고 누군가는 그 모습을 스케치할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자리, 그 시간, 그 열정...  이날 우리의 마음에는 어떤 빗금이 새겨졌을까.  중요한 것은 두려워도 이 생生을 천천히 잘 걸어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도,부모도, 동무도, 스승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온전히 자신의 몫인 마술 같은 시간들..."    (p.133)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은 저자가 만난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연극배우, 화가, 영화감독, 에디터, 만화가, 뮤지션, 여행작가, 건축가, 시인 등 13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국경을 넘는 심정으로 이 도시로 흘러들어온' 청춘들.  '더디게 오지만 결코 없지 않은 희망을 충실히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저자는 이 미로와 같은 세속을 걷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책에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그 반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이미 쇠잔해진 느낌이다.  자본주의란 본디 그런 것이라고 누군가 한번쯤 솔직하게 말해줬더라면 내 청춘은 달라졌을까?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외줄을 타는 곡예사의 발걸음처럼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걷는 13인의 청춘들.  저자의 시선은 그들의 쓸쓸한 등을 토닥이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 높은 수입, 조건에 맞는 결혼, 넓고 편안한 집 등 우리 사회가 이 시대의 청춘에게 강요하는 조건들은 해를 더할수록 늘어만 간다.  그 욕망의 틀을 부수고 황량한 들판으로 나선 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저자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 자신이 불편해졌다고 할까요.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너무 멀리 이탈해버렸다는 자괴감이 시시때때로 제 자신을 괴롭혔으니까요.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면 저는 그런 삶에서 아득하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던 거죠.  매일 같이 굴종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하루는 일하고 있던 웨딩숍으로 현대문학 외판원이 구독신청을 하라고 들렀어요.  문학이라는 막연한 환상도 있었지만 거절을 못하는 성격 탓에 1년 구독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 우연히 한 대학에서 문예창작전문 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돼요.  살면서 사 본 시집이라고는 다섯 권도 안 되는데 무작정 등록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p.344)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부딪치고 무너지고, 또 부딪치고 그렇게 또 무너지고...  그들 청춘의 모습은 애잔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언젠가 한 번쯤은 내 삶의 기준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되돌릴 수 없는 삶에 쓴 소주를 마시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나만의 삶을 찾는다는 것은 그 후회의 순간을 대비한 보험증서일지도 모른다.  비록 처참히 무너져 피를 흘린다 할지라도.

 

"자신의 욕망에 속아도 보고 껶여도 본 자들, 한 번쯤 삶에 굴절되어도 보았으나 연민이란 거울방에 갇히지 않고 희망 없이 희망을 꿈꾸며 나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나는 '동무'라고 부른다.  이 인터뷰는 '동무'들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들이 지나왔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는 글> 중에서

 

도시의 어두운 골목 저 끝에는 희망의 등불을 밝힌 채 오늘도 밤새 뒤척이는 청춘이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등대는 밝음을 구하는 자에게만 비춘다.  나는 그들의 삶이 밝게 빛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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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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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쓴 손글씨에는 적당한 시간이 채색되었을 때 아름답다.  시간의 형체를, 그리움의 실체를, 잊혀질 것만 같던 사랑의 순간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는 것이 마냥 놀랍고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는 영원이라는 갈망이 오직 내 손에 의지해 기록될 수 있음을 비로소 자각하게 된다.  푸슬푸슬 흩어질 것만 같던 순간의 느낌들이 내 손끝을 통해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손글씨 덕분일 게다.

 

"책 속에 남긴 문장이 편지이건 사랑고백이건 내가 보기에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내용이 모두 너무도 솔직하고 진심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때론 아주 짧은 문장을 보고서도 그 글씨를 쓴 사람에게 이끌려 깊은 상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경험을 한 적도 많다.  책 속에 글씨를 남긴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은 셀 수도 없다."    (p.15 ~ p.16)

 

내게도 그런 책들이 있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손에 쥐어질 때면 언제든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서점 입구의 회전식 서가에 꽂힌 문고판 서적이 눈에 들어오곤 했었지만 이따금 주머니가 두둑할 때는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책들을 한꺼번에 사들이곤 했었다.  그렇게 샀던 책의 표지 안쪽 여백에 나는 언제나 책을 구입한 날짜와 서점 이름, 그날의 날씨(특별한 경우에만, 가령 비가 온다거나 눈이 내리는), 혹은 그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를 적어두곤 했었다.  가끔은 졸업이나 입학 선물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르기도 했었다.  그럴 때에도 여전히 표지 안쪽의 여백에 편지처럼 짧은 글을 남기곤 했었다.

 

나는 그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기록을 했던 것일까?

세월의 손목을 틀어 잡고 사정이라도 해볼 요량이었을까?  아니면 눈발이 흩날리던 그날의 오후가 사랑처럼 아쉬웠던 것일까?  어쩌면 여울물처럼 흐르는 세월의 어드메쯤에 쾅쾅 대못을 박아 그 순간의 문패라도 달아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때의 기록들이 모두 단풍이 든 책장과 함께 노랗게 말라가고 있다.  이 책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읽고 있노라니 그 시절 교내 게시판에 걸리던 대자보처럼 시대의 그리움이 아슴아슴 되살아난다.

 

"어느 날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장난스럽고 따뜻한 마음들을 읽으며 얼굴 가득 웃음이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어떤 시대를 살든 청춘의 빛깔은 똑같으며 소중히 여기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p.210)

 

한 권의 책이 뭇사람의 사랑 속에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사는 형편보다 책값이 조금 힘에 부쳤고, 그래서 더 소중했고, 그 소중함을 기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자신의 글을 담았던 시절.  학사주점의 흐린 조명처럼 시절은 조금 암울했고 하얀 책장처럼 밝은 세상이 오기를 희망하며 소중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던 시절.  응암동 골목길에서 간판도 없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는 그 시절을 살았던, 혹은 지금 청춘을 살아내는 독자들에게 잊혀져가는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서명도 날짜도 남기지 않았지만 시심만은 이렇게 긴 세월을 건너왔다.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한 시인이 있다.  그의 시는 인터넷 검색창에 넣어봐도 아무 정보가 없다.  진짜 시인은 검색되지 않는다."    (p.194)

 

어쩌면 책에 남기는 짧은 글귀는 먼 훗날의 나에게 전하는, 또는 수신인 없는 미래를 향한 침묵의 외침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외침에 귀를 기울이며 이 책을 조용조용 읽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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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저받 2013-10-03 16:09   좋아요 0 | URL
오오..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저도 손으로 글씨쓰는 걸 참 좋아하는데 글씨는 진짜 못쓰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분명히 좋은 것도 있지만 그리운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메일로 받은 메세지들은 금방 잊혀져도 좋은 사람들에게 받은 좋은 편지들은 예쁜 상자에 담아서 몇년이고 보관해두곤 하니까요 ㅎㅎ

꼼쥐 2013-10-05 22:58   좋아요 0 | URL
칭찬 고맙습니다. ^^

디지털 시대에 웬 아날로그적 감상이냐고 탓할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학창시절을 고스란히 아날로그 시대로 살아온 저로서는 항상 그리운 추억이 될 수밖에 없더군요. 그래서인지 요즘도 저는 사각사각 긁히는 연필의 느낌이 좋아요.

남희돌이 2013-10-04 12:12   좋아요 0 | URL
마음에 고요히 스며드는 리뷰네요. 신간평가단 최고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꼼쥐 2013-10-05 22: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그렇지만 남희돌이님도 신간평가단 활동이 끝나기 전에 한번쯤은 선정되실듯...
늘 그래왔거든요. 저는 이제 뽑히지 않을테구요. ㅎㅎ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백은하 글.그림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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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 작가.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녀는 꽃잎을 톡톡 따는 습관 때문에 '꽃도둑'이란 별명이 붙었단다.  이렇게 딴 꽃잎을 말려서 꽃잎 위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까닭에 '꽃그림 작가'라는 별명이 붙었다고도 했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에 이렇게 관심을 쏟는 것도 오랜만이다. 말린 꽃잎 위에 드로잉을 덧입혀 사람으로 표현해내는, 이른바 '꽃그림' 전문가인 저자는 직접 그린 이색적인 꽃그림들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구성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풀어냈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져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꽃잎에 그려진 여인네 모습은 마치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있는 듯하고, 자연의 색깔이 고스란히 담긴 꽃잎은 읽는 이로 하여금 유년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내게 꽃은 전부 사람으로 보인다.  이상도 하지.  왜 꽃이 사람으로 보일까.  꽃을 책갈피에 말린 건 아주 어려서부터의 일인데, 아빠가 만든 근사한 꽃밭 덕인데, 책갈피에서 마른 꽃이 사람으로 보인 건 다 커서의 일이다.  무심코 따서 책갈피 어딘가에 끼워 두었던 나팔꽃 하나가, 어느날 보니 외출하는 아가씨 같았다.(나팔꽃을 거꾸로 보면 치마가 퍼진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녀가 폼 잡은 대로 세심하게 두 팔과 구두 신고 뽐내는 다리와 얼굴을 그려주었다."    (p.5 '서문'중에서) 

 

시인 듯, 에세이인 듯, 또는 동화인 듯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짤막짤막한 그녀의 글은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듯하다.  이렇게 느끼는 데에는 나도 어렸을 때 노란 은행잎이나 빨간 단풍잎을 책갈피에 끼워 말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 터였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 말 좀 들어봐.

내 말 좀 들어봐.

 

우리 마음속 가장 큰 갈증은,

'내 말 좀 들어봐.'

 

우리가 고요해진다면, 언젠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될까요.

'네 이야길 듣고 싶어.'             (p.137  '내 말 좀 들어봐')   

                                   원탁의 딴생각

 

작가의 글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기의 발걸음처럼 글자 하나하나가 제각각 내 마음길 여러 곳에서 뛰노는 듯하다.  뒤뚱뒤뚱 느린 걸음으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새삼 감탄하며 그녀의 글과 그림을 감상했다.  어쩌면 나는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내 유년의 추억을 읽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 맞지 마라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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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바꾸는 책읽기 -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한 독서 해법
박민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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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공부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IQ는 전적으로 유전적 영향이 강하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과학적 증거는 미약하다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주장일 뿐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자랑 같지만 내 주변만 보더라도 나의 형제자매는 다들 공부를 잘했었고, 조카들과 내 아이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의 자식들도 대부분 공부를 잘한다.  그러나 다중지능 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단지 여러 능력 중 하나일 뿐이고, 소위 말하는 '성공'의 보증수표는 될 수 없다.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성과 목표의식, 인내력과 상황 대처능력일지도 모른다.  결국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은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점도 독서의 효능과 부모의 역할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독서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마음을 치유하는 효능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독서의 효용과 유용성에 대하여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이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독서애호감을 심어주는 것과 올바른 독서습관을 유지하는 문제 및 독후활동은 부모의 관심과 참여가 선행되지 않으면 전혀 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이 점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급격한 기술의 발달로 요즘 아이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 지식을 활용하는 실행능력에 있어서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하여 저자는 피상적 지식의 습득 및 놀이문화의 실종, 자연과의 멀어짐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들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요즘 아이들은 여러 유형의 양상으로 문제점을 드러낸다.  소아우울증을 앓는 아이, 불안한 아이, 스트레스가 심한 아이, 예민한 아이,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 안 좋은 생활습관을 가진 아이 등.  저자는 각각의 아이들에게 맞는 책을 선정하여 읽히고, 상담을 통하여 아이들과 대화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치유되는 과정을 사례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독서의 치유능력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개선시키는 것은 물론 아이들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인류 최악의 발명품은 '스마트폰'이라고 믿고 있다.  스마트폰은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아이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마치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가 전 세게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오죽하면 스마트폰의 부가적인 기능을 모두 빼고 전화 송,수신과 문자메시지 송,수신 기능만을 지원하는 피처폰이 '고3폰'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을까.

 

"그런데 아이들이 흔히 접하는 동영상이나 스마트폰은 초점성 주의력은 발달시키지 않은 채, 이미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 반응성 주의력만 강화할 뿐이다.  최근 아이들의 주의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고, ADHD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증가하는 현실은 스크린미디어 사용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p.198) 

 

이 책의 제목은 『아이를 바꾸는 책읽기』이지만 자신의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을 위한 교육 지침서이자, 독서 안내서이다.  '나쁜 부모는 있어도 나쁜 아이는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비록 아이와 떨어져 살며 아이의 교육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잊지 않고 실천하는 게 한 가지 있다.  매일 전화를 걸어 아이와 대화하는 일이다.  나는 아이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지, 오늘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그림자를 보고 자란다고 한다.  나는 비록 멀리 떨어져 아이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열심히 책을 읽는다.  아이는 결국 부모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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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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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결국 우리들의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알랭 드 보통은 뛰어난 문학가이다.  일상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와, 자칫 시시껄렁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던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독자들의 감성을 일깨우는 그의 능력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언제나 새롭다.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공항은 그닥 친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간혹 기억마저 아득한, 오래 전의 지인이 가족과 함께 모국을 방문한다는 통보만 하더라도 온 동네에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물론 도착 시간에 맞춰 대규모 환영인파(주로 가족과 친인척으로 꾸려진)를 이끌고 공항에 마중을 나가곤 했었다.  그것은 일종의 아무나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으로 취급되었다.  그만큼 공항은 누구나 출입할 수는 있어도 아무나 가지는 않았던 동떨어진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공항을 찾는 일이 마치 국내의 어느 곳을 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을 방문하는 것처럼 흔하디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시골에 사는 노인분들이 추수가 끝난 어느 가을날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할 때도 그들의 관광코스에 공항을 끼워넣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공항은 이제 일부러 시간을 내어 둘러보는 장소에서는 멀어진 셈이다.

 

『여행의 기술』 로 잘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은 2009년 여름 공항 소유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런던 히드로 공항의 소유주이며 BAA사의 최고경영자인 콜린 매튜스는 작가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은 채 공항에서 좀더 시간을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매혹적인 제안을 했고, 작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의 회사가 최근에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런던에서 가장 큰 공항의 두 활주로 사이에 자리잡은 최신 탑승객 허브인 터미널 5에 작가 한 명을 일주일 동안 초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름도 멋지게 히드로의 첫 상주작가로 불릴 이 작가는 공항 시설의 전체적 느낌을 살핀 뒤, 출발 대합실의 D 구역과 E 구역 사이에 특별히 배치한 책상에서 탑승객과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p.11) 

 

작가는 공항과 공항 인근의 호텔에 머물면서 오고가는 여러 사람들과 공항에 근무하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풍경들, 드넓은 공항의 구조물들을 스케치하듯 기록한다.  출발 라운지에서 이별의 키스를 하는 연인들의 모습과 공항 교회의 책임 목사, 비행기 조종사와 수하물 담당자 및 보안요원들.  스쳐지나가듯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작가는 자신만의 상상력과 위트를 더하여 그들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일회성의 인연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여행도, 우리의 삶도 순간적이면서 동시에 단발성의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대합실의 분위기는 쓸쓸하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 느낌은 자비롭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 외로울 경우에 겪을 수도 있는 불편이 없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혼잡한 도시의 술집이 분명히 더 쾌활하기는 하겠지만, 그런 환경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밤이면 공항은 유목민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본거지가 된다.  어떤 한 나라에 헌신할 수 없는 사람, 전통을 보면 뒷걸음질치고 안정된 공동체를 수상쩍게 여기는 사람, 따라서 다른 어느 곳보다 현대 세계의 중간지대에서, 등유 저장 탱크, 비즈니스 파크, 공항 호텔로 인해 풍경이 상처를 입은 곳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다."    (p.157) 

 

우리는 비록 '지구'라는 커다란 행성에 살고 있지만 매번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곤 한다.  때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생각할 때, 작은 성냥갑 정도의 크기로 착각하여 답답함을 호소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았던 곳,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스치듯 지나쳤지만 주목하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누군가 지적해준다면 지금 내가 머무는 시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앞으로 내가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항상 멀리 있다는 착각, 내 주변의 것들은 모두 익숙한 것 투성이라는 불만은 알랭 드 보통의 이 책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읽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항상 먼 곳만 바라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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