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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쓴 손글씨에는 적당한 시간이 채색되었을 때 아름답다. 시간의 형체를, 그리움의 실체를, 잊혀질 것만 같던 사랑의 순간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는 것이 마냥 놀랍고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는 영원이라는 갈망이 오직 내 손에 의지해 기록될 수 있음을 비로소 자각하게 된다. 푸슬푸슬 흩어질 것만 같던 순간의 느낌들이 내 손끝을 통해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손글씨 덕분일 게다.
"책 속에 남긴 문장이 편지이건 사랑고백이건 내가 보기에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내용이 모두 너무도 솔직하고 진심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때론 아주 짧은 문장을 보고서도 그 글씨를 쓴 사람에게 이끌려 깊은 상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경험을 한 적도 많다. 책 속에 글씨를 남긴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은 셀 수도 없다." (p.15 ~ p.16)
내게도 그런 책들이 있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손에 쥐어질 때면 언제든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서점 입구의 회전식 서가에 꽂힌 문고판 서적이 눈에 들어오곤 했었지만 이따금 주머니가 두둑할 때는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책들을 한꺼번에 사들이곤 했었다. 그렇게 샀던 책의 표지 안쪽 여백에 나는 언제나 책을 구입한 날짜와 서점 이름, 그날의 날씨(특별한 경우에만, 가령 비가 온다거나 눈이 내리는), 혹은 그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를 적어두곤 했었다. 가끔은 졸업이나 입학 선물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르기도 했었다. 그럴 때에도 여전히 표지 안쪽의 여백에 편지처럼 짧은 글을 남기곤 했었다.
나는 그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기록을 했던 것일까?
세월의 손목을 틀어 잡고 사정이라도 해볼 요량이었을까? 아니면 눈발이 흩날리던 그날의 오후가 사랑처럼 아쉬웠던 것일까? 어쩌면 여울물처럼 흐르는 세월의 어드메쯤에 쾅쾅 대못을 박아 그 순간의 문패라도 달아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때의 기록들이 모두 단풍이 든 책장과 함께 노랗게 말라가고 있다. 이 책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읽고 있노라니 그 시절 교내 게시판에 걸리던 대자보처럼 시대의 그리움이 아슴아슴 되살아난다.
"어느 날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장난스럽고 따뜻한 마음들을 읽으며 얼굴 가득 웃음이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어떤 시대를 살든 청춘의 빛깔은 똑같으며 소중히 여기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p.210)
한 권의 책이 뭇사람의 사랑 속에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사는 형편보다 책값이 조금 힘에 부쳤고, 그래서 더 소중했고, 그 소중함을 기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자신의 글을 담았던 시절. 학사주점의 흐린 조명처럼 시절은 조금 암울했고 하얀 책장처럼 밝은 세상이 오기를 희망하며 소중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던 시절. 응암동 골목길에서 간판도 없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는 그 시절을 살았던, 혹은 지금 청춘을 살아내는 독자들에게 잊혀져가는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서명도 날짜도 남기지 않았지만 시심만은 이렇게 긴 세월을 건너왔다.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한 시인이 있다. 그의 시는 인터넷 검색창에 넣어봐도 아무 정보가 없다. 진짜 시인은 검색되지 않는다." (p.194)
어쩌면 책에 남기는 짧은 글귀는 먼 훗날의 나에게 전하는, 또는 수신인 없는 미래를 향한 침묵의 외침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외침에 귀를 기울이며 이 책을 조용조용 읽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