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담장 하나를 가로 지르는 옆 아파트에서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모녀를 아파트에 잡아 둔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택배기사를 가장해 집안에 침입했다고 하는데, 택배 기사라는 말에 문을 열어 준 딸이 택배 기사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한 학생이 재빨리 경찰에 신고했다.
범인이 여자 친구가 살고 있는 15층 아파트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딸의 엄마가 범인에게 욕을 했고, 인신공격적인 말을 듣는 순간 술 취한 범인은 욱해서 여자 친구의 엄마를 칼로 찔렀고 여자친구의 엄마를 밖으로 내 보낼 시간도 없이 경찰이 아파트 앞에 당도한 것은 4시 전후였다.
순식간에 빠르게 사건이 진행된 것이다. 경찰이 들이닥히고 폴리스 라인이 쳐지는 등, 옆 아파트가 발칵 뒤집어 졌음에도 그리고 그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딸 아이가 다급하게 전화해서 한신아파트에 경찰, 소방차, 과학수사대차가 왔으니 엄마, 빨리 여기로 와 보라는 말에 나는 시큰둥했었다. 누가 다쳤나보다,라고 생각했지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퉁에 많이 피곤했었고 무엇보다 아들애가 들어와서는 저녁밥 달라고 해서 밥하고 있었던 때였다.
사건의 내막을 자세하게 안 것은 밥 먹고 음식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동네 아줌마 한분이 한신아파트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딸의 엄마가 칼에 찔려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옆 아파트에 가 보았던 것이다. 그 넓은 아파트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방송국들 차들이 들이닥쳐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11시까지 지켜보고 있는 동안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 사람들 사이에 떠 돌아 다녔다(으이구, 나중에 다리와 허리가 어찌나 아프던지!). 현재 집안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은 여기 아파트로 이사 온지 한달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주변 사람들도 그 집안 내막을 잘 몰랐을 터인데.
나는 단순히 범인이 악질 스토커 인줄 알았다. 사람들 사이에 떠 돌아 다니는 말에 의하면, 여자네 집은 딸과 사귀는 남자를 피하기 위하기 여자가 다니던 좋은 직장도 관두고 남자 친구 몰래 이사를 왔다고 한다. 전입 신고 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여자 친구가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게 되었고 칼과 수갑을 들고 작심하고 쳐 들어왔다는 것이다. 것도 술이 취해서.
그런데 문제는 범인을 단순한 스토커로 보기엔 또 다른 인질극 동기가 있었다. 둘이 한 때 사랑했던 사이는 맞고 사랑하던 그 과정에서 남자가 여자한테 여자가 해 달라는 것을 다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요는 여자가 남자한테 받아낼 것 다 받아내고 부모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줄행랑을 쳤다는 것.
그렇게 이런저런 추측과 소문이 떠돌던 자리에서 딸의 엄마가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안타까움과 탄식. 그리고 또 다시 말말말.
범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이 여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지 특히나 물질적으로 다 해주었는데 자기를 배신했다는 충격이 더 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범인에 대한 동정론도 없지 않았다. 특히나 나이 드신 분들은 결혼 하지 않을 사이라면 그렇게 넙죽넙죽(<----- 전적으로 어른들 표현) 받아 챙기면 안 되지..하면서 딸이 엄마를 죽인 것이라는 말들이 사람들 사이에 오갔다.
다음날 뉴스나 인터넷 매체를 뒤져봐도 내가 그 날 밤에 들었던 무성한 소문의 말들에 대한 진실을 어디에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간략한 사건의 요지만 있었고 대략적인 동기만 있었을 뿐이었다. 남자가 변심한 여자한테 물질적으로 해 준게 분하고 억울해서 인질극을 벌였다는, 말들의 진실은 이제 확인할 길이 없고 없을 것이다. 모든 언론사들에 의해 그는 이제 애인을 잊지 못한 인질극을 벌인 스토커일 뿐이다. 사건의 내막은 그것으로 끝났고 더 이상의 깊은 내막을 우리는 알 수 없을 것미여 아마 소문과 진실 사이에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점차 사라질 것이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나는 지난 번에 읽었던 <우행록>을 떠 올렸다. 한 가족에게 일어난 살인사건의 이면을 취재하는 형식의 이 소설은 살해 당한 부부의 겉과 다른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마다 알고 있고 있는 그 부부의 진실된 모습의 괴리가 너무가 심해서 독자인 나는 오히려 반감이 생겼던 책이었다. 어떤 모습이 진실인지 구분이 쉽지 않았고 작가의 의도적인, 부부의 사악한 모습이 진실인 양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것 또한 이러한 진실이 거짓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햇었다. 이걸 이 부부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진실일까? 진실의 위배. 결코 읽고 나서 기분 좋은 소설은 아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 진실과 거짓은 구분 지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것일까?
<우행록>의 부부의 정체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와 여자친구의 엄마를 죽인 범인의 정체를 우리는 정말 이제 알 수 없을 것이다. 진실과 거짓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진실이 가십으로 대체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는 얼마나 진실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