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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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만나는 그 경계선 _ [파트릭 모디아노- 지평]


 

 

그는 모든 첫 만남은 상처라는 말이 어느 책에 쓰여 있었는지 기억해내려 애썼으나 헛수고였다 _ p28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골목길 어귀마다 종종 있었던 레코드 가게를 지나다 문득 비라도 만나 잠시 머물때, 추억을 같이 공유했던 그 음악이 나오면 한동안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은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 함께 즐겼던 어떤 사물을 만나게 되면 적적한 마음에 추억이라는 샘이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같이 공유했던 것들이 자리 잡지 않더라도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서 마음을 어지럽힐 때도 있다.


 

어느 날 보스망스는 자신의 젊은 날의 기억들을 떠 올려 보았다. 그에게도 왜 이제 와서 지난 40여년이 지난 그 일을 떠 올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희미해진 기억들 속에 자리 잡은 얼굴들도 왜 자신의 기억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지 그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기억 속에 머물며 희미한 그림을 다시 맞춰 보려 애쓴 것은 어쩌면 40여년전에 헤어진 마르가레트를 기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닯아 있는 두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사랑받지 못한 가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망스는 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자랐고 이후 돈을 갈취당하면서 살았다. 마르가레트 역시 어머니와 절연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여자였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불운한 가정으로 인해 두 사람은 매우 불안한 모습으로 성인이 되었고 주변인과의 만남 또한 그랬다. 서로가 마음의 한쪽 다리를 절며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했던 것인지 몰라도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어쩜 이것이 두 사람에게 있었던 첫 만남의 상처는 아니었을까.

 

책속에서 나는 마르가레트라는 여자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정말 어떤 여자였을까? 의문의 남자에게 추적을 당하며 그와 맞서지 않고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독일로 도망가는 것이라며 기차를 타고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생존 소식은 보스망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로 독일행 기차를 타고 떠났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은 보스망스를 떠난다고 해서 혹은 독일행 기차를 타고 독일에 도착했다고 해서 끝이 났을까? 끝없이 펼쳐지는 그 지평 속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그녀의 그 말처럼 자신을 사랑해 줄 그 어떤 다른 사람과 끝나지 않는 그 미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존재는 알 수 없는 그저 보이지 않는 끝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는 생의 한 교차로에, 보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한 경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P91

 

베를린, 어느 서점에 있을지도 모를 그녀를 만나기까지 소설이 끝나는 부분에서는 나는 그저 그들의 만남이 어느 세월의 한 조각으로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쁘지 않을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스망스는 저녁까지 열려 있는 그 서점으로 발길을 돌려 그녀의 생존을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들에게 펼쳐진 그 지평의 끝에 서로 맞닿아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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