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김수영
취해도 쉽게 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는
오랜만이라며 서로 눈빛을 던지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비어버린 자리들을 세며
서로들 식어가는 것이 보인다
가슴 밑바닥에서 부서지는 파도
저마다 물결 속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사이의 한 섬,
그 속에 갇힌 한 사람을 생각한다
외로움보다 더 가파른 절벽은 없지
살다 보면 엉망으로 취해 아무 어깨나 기대
소리 내서 울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어디든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 발치에서
물거품으로 부서져가는 것을 본다
점점 어두워오는 바다로 가는 물결
무슨 그리움이 저 허공 뒤에 숨어 있을까

오랜만에 시를 읽고 울쩍해졌던 오늘 밤,
혼자 앉아 잊고 있던 술잔을 떠 올려봤다.
다카마츠 마지막날 편의점에서 사온 두개의 과일 술을 놓고
혼자 뭘 먹을까 고민했던 그날을 생각하니
며칠전 받은 상처가 쉽게 지워졌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은 때론 어색한 사이에서 오는 긴 침묵보다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