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라오스편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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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하나면 지구의 모든 어린이들과 친구가 될 것 같은 일곱살 중빈이와 오소희가 함께 떠난 라오스 여행기이다.  중빈은 더럽게 옷을 입은 라오스 거리의 거지 소년들과도 쉽게 친해지며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자고 꼬드긴다.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소년을 기어이 설득해서 밥을 같이 먹게 만든다.

 

똑같은 9달러의 모텔인 두 곳 중에 한곳은 너무나 깨끗하고 안락하지만 좁은 공간이고 한곳은 세면대의 물이 바닥으로 철철 넘쳐흐르는 곳이지만 넓은 마당이 있는 곳. 그중에 당연히 여인숙이라 말해야 하는 곳으로 방을 잡으며 중빈은 말했다.

 

“됐어, 됐어. 방 좋은데, 뭘. 밖에 애들만 많으면 돼! 물 좀 새면 어때? 난 더 좋은 걸. 바닥이 금방 수영장이 되잖아!”

 

이런 중빈과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중빈의 母 오소희가 더욱 부럽게 느껴졌던 라오스의 여행기였다.

 

전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터키편>과는 내용의 밀집도가 좀 다르다. 그때의 내용이 좀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고 여행기가 아닌 에세이라는 편이 훨씬 더 적당한듯했다면 이번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편은 사진과 그녀의 감성이 시로 표현되었다고 해야 할 듯하다. 라오스의 열기처럼 뜨겁게 구구절절하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느껴보지 못한 라오스의 그 열기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긴 시간의 침묵과 같았다. 창밖으로 흐르는 라오스를 구경하는 중빈의 모습과 함께 오버랩 되어 겹겹이 우거진 숲들이 떠오른다. 라오스의 도시들은 대부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그 이동 시간도 어마어마 하다.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까지는 미니버스로 6~7시간 정도라는 것에 진짜 멀다, 했는데 지도를 보면 참 가까운 거리인것 같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그 거리는 비포장도로이고 구불구불한 산길이라고 한다. 잘 닦아진 그런 거리가 아니니 오래 거릴 수 밖에 없고 다들 슬리핑 버스한번 타고나면 절대 다시는 안탄다는 얘기가 들정도로 고된 버스이동인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살 중빈이는 어쩜 이렇게 씩씩하게 여행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푹식한 의자도 없는 버스에서 아이를 마주친 중빈이가 느낀 이 표지속에 나온 얘기를 보고 있노라면 기특해서 머리를 하염없이 쓰담고 싶어진다.

 

 

 

 

 

 

 

 

 

 

 

“TV는 태국의 싸구려 드라마를 전하고

(실제로 대부분의 라오스인들이 태국어를 이해한다.)

전기는 내내 필요 없었던 냉장고의 새로운 쓸모를 강요한다.

오토바이는 시간과 거리의 개념을 바꾸어 놓고

자전거는 아이들에게 가지고 싶은 것의 목록을 만들어냈다.

 

참파싹의 오늘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가는 여행자의 감상일 뿐.

파장은 점점 커질 것이다. -67P"

 

참파싹에서 느꼈던 오소희의 문명의 쓸쓸함을 절실하게 느껴본적은 없지만 요즘 라오스 여행을 검색하면서 알게되는 것들은 안타까운 얘기들이 많다. 작년에 했던 '꽃보다 청춘_라오스'덕에 한국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방비엥의 블루라군을 가면 한국 사람들 모임인가, 생각이 들정도로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것까지야 매체를 통해 알려진 여행지가 한번쯤 거치는 유명세라고 생각되지만 늘어나오 있는 퇴폐 맛사지샵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는 참 아찔하다. 특히 한국 아저씨 부대들이 패키지로 많이 오셨다 간다는 얘기에 어찌나 마음이 씁쓸하던지. 해외에 나가면 내가 곧 나라의 얼굴이고 내가 잘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버리지 않고 오는데 그들은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 나라에, 그럼 마음가짐으로 오는 것일까.

텔레비젼에 나오고 난후 변화된 방비엥의 얘기를 듣고는 라오스를 간다면 방비엥은 빼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10여년전 필리핀에 갔을 때 그들이 사먹는 콜라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캔이면 되는 콜라를 비닐봉지에 담아 팔고 그 콜라를 먹겠다고 모여드는 아이들을 거리에서 만나면서 저 아이들 옆을 지나면서 마치 경기를 하듯 놀라며 지나갔던 나의 모습이 이제와 반성이 되는 것은 뭘까. 해외여행이라고 잘 차려입고 나온 바람에 흔들리는 원피스 끝자락이 그들의 까만 몸에 닿을까봐 질겁했던 모습이 이제야 후회가 되는 것은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우월하다고 생각되어진 나의 개인주의적인 발상 때문일 것이다.

   

법당에 있는 승려들에게 단 하루의 영어 수업을 하던 도중 기다리지 못한 중빈이 기어이 수업 도중에 엄마 손을 잡고 있었다. 나가자는 암묵적인 의사 표현이었지만 오소희는 점점 더 길어지는 수업을 마칠 수 없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이 나고 사원을 나왔다.

 

“ 우리 중빈이, 너무 잘 기다렸으니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줄게."

 

아이는 여전히 뿔이 난 듯, 입을 잔뜩 내밀고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중빈아, 오늘 엄마가 한 일은...이런거야.

너에게 로봇이 세 개 있는데 하나도 없는 친구를 만났어.

그럼 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를 주고 같이 놀아.

 

맞아.

네가 나눠주면 둘이서 더 재미나게 놀 수가 있지?

엄마도 마찬가지야.....(중략) 290P"

 

이런 중빈과 나는 공차기를 하러 중빈이 살고 있는 과천으로 가야 할까 생각도 해 봤다. 나눔을 알게 되는 나이라니. 내가 서른 살이 되어도 철들지 않는 그 나눔을 아는 중빈이가 부럽기까지 한 중빈의 나름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라오스의 여행기는 오소희보다 중빈의 모습이 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 그런데 얼마전에 오소희씨 블로그에 가봤더니 중빈이가 어느덧 중2가 되었다고. 책이 나온것이 그만큼 오래 됐다. 그런만큼 중빈이도 늙은 나와 공을 차 주지 않을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할까. 라오스가 변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보다 훨씬 빨리 중빈이가 변했구나. 그래도 중빈아, 넌 정말 일곱살때의 여행속의 너는 너무 멋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부족하지만 그것만으로 행복을 누리고 느림을 사랑하는 라오스에 가면 내가 가진 이 무거운 욕망도 멈춰질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당장이라고 짐을 싸서 떠나야 할 것 같다.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욕심에 많은 날들을 허덕이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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