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홍상수의 영화 [오,수정]을 보면서 기억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중심으로 편집된 기억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기억은 나를 중심으로 이뤄진, 그러니까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기억 일 수 있고 타인은 같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중심으로 기억된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장면은 진실 그 상태를 오로지 기억 할 수 없다. CCTV나 그 장면이 녹화된 테이프가 아니라면 그때의 그 순간의 기억은 백프로 사실은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통해서 이미 내용을 전부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으면서 작가의 치밀한 구성에 짜증이 난다. 뭐 이런 깐깐한 작가가 다 있을까. 1960년대부터 시작되는 1부에서는 소설의 화자인 토니와 그와 연결된 친구들 3명이 나오지만 정작 중요한 인물인 학교에서도 주변에서도 너무나 똑똑하고 명석한 에이드리언이다. 그의 총명함이 시사되는 초반에 교사와 설전을 벌이던 모습을 보면 뭔가 그의 불안한 마음이 느껴진다. 딱히 그런 대사들은 없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우울한 아우라가 책장 밖으로 나오는것 같다.

1부에서는 토니와 베로니카의 연애가 잘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나도 여자이지만 베로니카의 그 도도하면서 알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취향과 다른 토니의 음악 컬렉션에 뭐 그런 얼굴을 할 것까지야. 그 여자 참, 고상한척 한다는 생각에 사실 나는 베로니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둘의 연애가 달콤하지도 않고 오로지 토니는 베로니카와 더 깊은 관계만을 원하는것 같아 남자가 원하는 연애는 뭐 이런 것뿐인가 싶어 따분해질 쯤 토니는 베로니카와 헤어졌다. 그런 상실감을 털어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영국 청년 토니는 방랑을 하며 돌아오니 그의 친구인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룸메이트들이 모두 떠난 주말 혼자 욕조에 물을 받고 동맥을 끊었다. 그것도 정확하게 죽을 수 있기 위해서 사선으로 그었다는 친구들의 얘기에 토니는 그냥 그의 죽음이 주변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무 똑똑해서 그랬다고만 생각했지 전혀 자신과 연관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은 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에이드리언은 토니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자신이 헤어진 베로니카와 사귀겠다고. 그때 토니는 불안한 청춘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담아 답장을 보냈었다. 불취한 청춘이 보낸 답장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험담 아닌 험담을 늘어 놓았겠지. 더욱이 자신보다 잘난것 같은 에이드리언과 사귄다니. 하지만 그것이 그의 자살 사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에이드리언은 그런 편지 따위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일 것이라고 생각, 예감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느 유행가 가서처럼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을 생각하게 된다. 그때 내가 좀 더 침착하게 혹은 여유롭게, 때로는 차분하고 너그럽게 생각했다면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만약에 라는 얘기는 필요 없는 것이다. 토니가 신중하게 에이드리언에게 편지를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하필 왜, 친구와 사귀었던 여자와 만나겠다고 에이드리언은 생각 했을까. 그의 알 수 없는 행동들로 그들의 결정에 어떤 의미를 담는 것도 불필요 한 것은 아닐지.

이 책의 제목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지만 반어법적 제목이니 당연히 내용도 그렇다. 에이드리언이 죽고 사십년이 지난 어느 날 토니에게서 온 편지는 잊고 있던 애인의 엄마, 사라였다. 애인도 아니고 애인의 엄마라니. 베로니카와 만나고 있을때 여름에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지내는 동안 그들의 가족은 토니에게 불친절했고 내내 토니도 그 기억이 유쾌하게 남아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녀의 엄마에게 온 편지는 더 놀라운 것을 담고 있었다. 그녀가 죽으면서 토니에게 500파운드의 유산을 남겨 줬다. 하지만 그녀가 돈만 준것이 아니라 원래 있어야 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과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도 함께 보내졌었지만 그것만은 빠져 있었다. 그것을 찾기 위해 토니는 아득하게 멀어진 베로니카를 만나게 만난다.

소설은 처음부터 뭐든 다 풀어 주지 않는다.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사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왜 베로니카의 집에서 머무를 때 그녀의 엄마인 사라는 베로니카를 조심하라고 했는지. 또한 베로니카는 왜 토니를 계속 만나려 하지 않는지 모두 숨겨 놓고 독자에게 알아서 찾아보라고 하니, 읽으면 읽을수록 답답해지기만 한다.

책을 소개하는 표지처럼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에 모든 사실이 다 풀어져 있고 그것을 읽으면서 제목이 떠오르고 이내, 그간 내가 알고 있었던 기억이란 얼마나 무모한 진실인가 느끼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행했던 그 진실은 어쩌면 나를 위한 변명으로 미화 되어 있지는 않을까. 나는 또 그것이 확실한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누군가를 미워하는 날들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나 또한 토니처럼 에이드리언에게 그런 상처받는 편지로 그것을 말로 풀어서 생채기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그날 밤 그런 편지를 썼으리라고 전혀 알지 못한 그 편지를 보게 된 토니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어떤 꿈을 꾸었을까. 내가 그런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에이드리언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나와 마주 했을까. 사라는 또 왜, 나에게 이런 죄책감을 안겨 주며 유산을 남겼을까.

마지막 책속의 반전은 어쩌면 그간 내가 진짜라고 믿었던 내 기억속의 진실 혹은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억은 모두 가짜 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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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08-0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 책을 6-7월에 알라딘 신림점에서 몇 번이거 들었다놨다를 반복했었습니다. 요는 중고치고 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해서....20-30%세일 가였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그냥 신간을 사야지...라고 생각하고는 지금까지 못 구입하고 있습니다. 리뷰를 보니 다시 구입해야할 거 같아요..ㅜㅜ

오후즈음 2015-08-07 23:14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원가의 50% 이하 일때는 사는걸 엄청 고민을 하는데요. 워낙 줄리언 반스 얘기를 하루 많이 들어서 구입했어요. 후회 없이 정말 잘 읽었습니다. 완전 마지막 반전때문에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잼있습니다. 무엇보다 얇고....음 금방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