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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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소중한 친구들에게서 이제는 너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될까. 그것도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아니고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이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추억과 기억을 모두 지우고 더 이상 공유 할 수 없는 것들만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다자키 쓰쿠루는 고향 나고야에서 도쿄로 대학을 가면서 친했던 고향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방학이면 늘 친구들을 찾아가 도쿄의 외로운 대학교 생활을 잊을 수 있었다. 다자키를 풍요로운 추억을 함께 하는 친구들은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이다. 모두 이름에 색을 가지고 있다. 붉은 아카, 푸른 아오, 흰 시로, 검은 구로 모두 색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 있지만 다자키만 유독 색이 없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은 다자키에게 색이 없는 아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늘 친구들 무리에게 자신만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다자키를 따돌리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21살이 되던 그해, 다자키가 고행 나고야에 내려가면서부터 모두 전화를 받지 않고는 이내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때 이유를 물어 보았지만

“그 이유는 네가 더 잘 알텐데”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분명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완전하지는 않지만 치유는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자키 쓰쿠루에게도 그랬다. 죽음을 앞둘 것처럼 먹지 않고 잠들지 못하고 말라가다가 결국 시간이 그를 치유시켰다. 수영을 하면서 말라갔던 근육에 생기를 넣고 어린 시절의 추억대신 현재의 시간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치유 된다고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잊고 있었던 일들을 다시 꺼내며 괴로워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어느 날 다자키 쓰쿠루는 그의 애인에게 자신이 잊으려고 했던 친구들의 얘기를 한다. 그때 그녀는 이제 16년의 세월도 흘렀으니 친구들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연락을 끊었는지 이제는 그 진실과 마주하라고 하여 그가 친구들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게 간단하면서 사설이 참 길다. 잘 지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나를 따돌리며 이제 안 논다고 한다. 자존심 강한 나는 전화 한통에 알았다고 하며 친구들과 인연을 끊었다. 집에 찾아가서 왜 그런지 물어 보지도 않고 그간의 모든 인연을 끊는 주인공도 모질다는 생각도 든다.

 

 

 

색의 이름을 가진 친구들과 달리 이름 속에는 색이 없지만 가장 강렬한 색을 가졌던 다자키 쓰쿠루였을지 모른다. 친구들중 가장 선명한 색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고야가 아닌 도쿄로 공부를 하러 떠났을 것이고, 생활 형편을 보아도 가장 부유해 보인 그는 어디서든 빛나는 윤택함을 지녔을 것이다. 그런 그가 정말로 색이 없어졌던 것은 그들과 인연이 끊기고 혼자가 된 후가 아니었을까. 혼자가 되어 그는 매일 수영을 했다. 물감으로 물들여진 붓이 씻기듯 물속에서 그의 색들이 모두 빨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색이 없는 그런 무색의 남자로 변한 것은 아닐까.

 

 

 

소설의 핵심은 친구들이 왜 다자키 쓰쿠루에게 그런 말을 하고 연락을 끊었는지 그 미로 같은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름 생각했던 어떤 이유들을 떠 올려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너무나 반듯하게 살아왔던 다자키 쓰쿠루였기 때문에 뭔가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네 명의 친구들중 두 명은 남자, 두 명은 여자였다. 혹시 이들 사이에서 뭔가 일어나면 안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생각했지만 역시나 다자키가 처음 친구를 찾아가 설명을 들었을 때는 사실 좀 어이없는 이유에 당황스러웠다. 모두 그 말이 진실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결국 다자키는 진실이 아닌 거짓에 고립되었다.

 

친구 네 명을 모두 찾아다니다가 마지막 핀란드에 있는 친구를 찾아 가는 부분에서 사실 가장 흔들렸다. 마지막 친구는 정말로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 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역시 딱 그만큼의 이유를 알 수 있을 뿐. 그동안 헤어졌던 시간들은 공유 될 수 없으며 멀어졌던 시간은 그만큼 씁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하루키의 소설이 때로는 어느 부분 비슷하듯 친절하지가 않다. 다자키가 친구들에게서 고립되어야 했던 진실, 친구들은 그 진실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진실에게 외로워져야 했던 것은 다자키뿐이었다. 그 부분에서도 뭔가 속 시원하게 밝혀주는 것이 없다. 또한 그가 사랑하는 사라와의 관계도 그렇다. 어쩌면 그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얘기를 끝으로 책을 덮고 싶은 욕망으로 마지막 엔딩이 마음에 안든 것도 있다. 대체, 그 둘의 미묘한 그 관계는 또 어떻게 해결이 난다는 것인지. 그러니까 사라는 다자키의 청혼을 받아 준다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아, 답답해. 그리고 사라는 왜 이토록 다자키에게 친구를 다시 찾아주려 애를 썼을까, 그것이 다자키의 어떤 면을 다시 깨워 주려고 한 것일까.

 

 

 

어떤 이들은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소설을 더 좋아하는데 나는 역시, 소설이 더 좋다. 하지만 하루키의 낡은 늘어진 셔츠를 입고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추억을 담아 버리고 오면서 여행가방의 무게를 줄이려다가 레코드를 가득 사와 오버 무게가 된다는 그의 투덜거리는 문장을 마주하게 되면 그 역시 또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난 역시 단편보다 장편의 하루키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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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11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의 먼북소리 읽다가 다 못읽었어요 아직까지 제게 끌리는 부분을 못찾았거든요 그런데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서 이 책 구입했는데 왠지 이 책을 읽어도 미지의 세계에 빠질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오후즈음 2015-03-11 14:12   좋아요 0 | URL
저도 먼북소리는 사 놓고 못 읽고 있는 책인데요...재미있다는 분이 많지만 이상하게 읽을 책의 순위에서 벗어나게 되더라구요. 소설가보다 에세이스트로 더 좋아하는 분들도 많지만 ...때로는 이런 소설이 좋더라구요. 이책은 참 쉽게 읽혀요. 몇시간만에 다 읽어버렸어요. 역시 흡인력은 짱인 하루키인데도 사 놓고 못 읽는 책이 많은건 저에겐 참 아이러니 하네요.

꽃핑키 2015-03-1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같은 책을 읽어도 이렇게 훌륭한?ㅋㅋ 서평을 쓸 수 있는걸까요?ㅋㅋㅋ 언니글 읽다보니 대학때 절친에게 절교 선언 받았던 추억? 도 떠오르고ㅋㅋㅋ 옛생각 나요ㅋㅋ

오후즈음 2015-03-11 14:14   좋아요 0 | URL
훌륭하다고 말해주다뉘 ㅠ.ㅠ 고마워.
아, 핑키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추억이 떠 오르는것들이 몇개 있어서 사실 좀 불편했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지난날을 억지로 떠 올려 봐야 한다는 그런 끔찍한 그런 생각...그들을 떠 올리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후애(厚愛) 2015-03-1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 오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