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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일은 가끔 기혹하리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떠나지 못하는 지금의 순간이 우울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대리만족할 수 있게 해주는 책도 있지만 당장 책장을 덮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책이 있는 법이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는 나에게는 전자에 속한 여행 에세이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삶의 한 단면을 뚝 잘라 보여주는 것 같은 이 여행기의 가장 큰 매력은 너무나 솔직한, 인간적인 여행기라는 점이다.

 

 

 

여행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나에게 여행기의 에세이는 가장 훌륭한 힐링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를 읽으면서 이렇게 유쾌하고 혹은 센티하고 혹은 매혹적인 여행기가 또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파키스탄에서 생긴 에피소드는 너무나 인간적이라서 나도 모르게 아니, 이렇게 너무 솔직하게 까발리면 책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웃으며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어쩌면 이런 인간적인 부분 때문에 이 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짙게 깔렸다.

 

 

나도 장이 많이 안 좋은 편이다. 그래서 장거리 여행을 할 때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이 편치 않은 마음을 먹으면 바로 탈이 나는 장 때문에 화장실 걱정이 가장 커서 떠날 때부터 큰 고민거리가 됐다. 파키스탄에서 건네받은 그 수상쩍은 음식 때문에 대지에 아무것도 없는 뻥 뚫린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다 본 다음 나를 빼고 모든 사람들이 빛의 속도로 버스를 타고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 장면이 왜 이렇게 공감이 될까.

 

 

 

“차라리 버스가 이대로 떠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짐이라고 해봐야 세면도구만 가지고 나왔으니, 버스가 이대로 떠나준다면 나는 이곳에서 똥을 싸다가 늙어 죽더라도 좋겠다. 여전히 들리는 응원의 소리와 박수 소리.” P161

 

 

 

낯선 이방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달리는 버스를 세워서 나무 한 그루조차 없는 곳에서 똥을 싸는 모습에도 박수를 쳐주는 파키스탄 사람들의 정이 느껴지는 부분. 물론 작가는 참 난감했겠지만.

 

여행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대체 여행이 뭐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여행 작가로 남고 있는 것일까. 요즘 여행 작가가 직업이 되어 세계를 떠도는 이들의 책들을 많이 접해서인지 그들에게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다.

 

 

 

“상관없는 길 위에서 보낸 시간들은 늘 허전했다.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늘 반복하면서도 절대로 면역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 면역되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러 길 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P35

 

 

 

나는 괜찮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날은 세상에 나 혼자만 덜렁 남아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고 나만 외톨이라는 생각에 삶이 닭가슴처럼 기름기 한 점 없이 퍽퍽하다고 느낄 때는 늘 여행을 꿈꿔본다. 작가의 말처럼 더 이상 면역되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러 길 위에 서고 싶어진다.

 

 

 

“삶이랑 문득 이렇게 경건한 것이다. 버릇처럼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기꺼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 때로 외롭고 지루하거나 힘든 모든 것들은 스스로 이겨낸 뜨거운 마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내가 만난 한 가닥 한 가닥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걷는 일이 가까운 미래에 큰 포만감을 줄 것이다.” P99

 

 

 

세계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하루가 삶의 여행일 수 있는 것이고 그 여행을 통해 나는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나 지금의 순간에 큰 포만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세상을 많이도 돌아다니면서도 내 것을 나누는 일이 서툴렀고, 그는 움직이지 않고도 세상에 마음을 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것을 본다고 마음이 달라지겠는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서도 모든 것을 다 안을 그 마음에 비한다면." P247

 

 

 

볼리비아에서 만남 한국인의 사장님을 만났을 때의 이 얘기가 어쩌면 이 책을 통한 가장 큰 울림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간혹 여행을 통해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눈을 통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꼭 떠나야만 그런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타국에서 살면서 자신보다 훨씬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는 그 한국인에게 감동받은 에피소드였다. 자신의 모국도 아니고 타국으로 이민을 온 그 사람의 생활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을 해 퍼주는 일을 하는 그 모습은 우리가 꼭 세계의 여행을 통해서만 나눔의 마음을 얻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언제부턴가 당신에게 자꾸 밥을 덜어주고 싶던 마음. 그 마음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내 그릇은 영원히 반이어도 좋으리.”

 

 

 

감성이 뚝뚝 떨어지는 이 문장만큼 매력적인 여행을 계속 하고 있는 작가의 나날이 참 부럽기만 한 여행기가 참 달고 맛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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