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통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같은 소설.

며칠 동안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한다고 한들 고작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뿐이었다. 기사를 읽는 것이 싫다. 현관 밑에 구부려 넣어진 신문은 며칠째 구부려져 있는 채로 방치되어 있다. 아마도 올해가 가고 내년이나 되어 재활용 수거함으로 던져 넣어질 것 같다. 인터넷 기사의 덧글들은 현실을 알려주는 기사를 보는 것보다 더 소름이 돋는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누군가를 몰아세워야 하는 것일까. 진실이 있는데 그 진실은 왜 외면을 받으며 우상이 아닌 인물에 우상시 되어 흔들리는 것일까. 답답했다. 누군가와 이런 답답함을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C국으로 발령을 받은 그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답답하고 스산했을까.

어느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으로 있었던 그는 쥐를 잘 잡는다는 이유로 감기 바이러스 같은 것이 창궐한 그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우연치 않게 C국으로 오던 그는 가방을 잃어버리고 그가 증명할 어떤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모국이 그를 다른 나라로 버린 것처럼 그는 버림받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아내와 이혼을 했을 때 기분 같은 것이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그는 더욱더 아내와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소통의 부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C국으로 서둘러 왔던 그는 그의 개가 혼자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반전에 놓인다.

 

소설은1,2,3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그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출국 전날 밤의 일과 그가 왜 자신의 집에 그의 개와 전처가 난자당해 살해 되어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이야기는 끝났다. 그리고 그는 살인사건의 주범이 되었다. 기억나지 않는 일들 떠올려 보았지만 그는 왜 자신의 전처가 자신의 집에 죽어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억이 날 때까지 그의 누명이 벗겨질 때까지 부랑자가 되어 떠돌게 되었다.

 

자신을 C국으로 부른 담당자는 없고, 자신은 전처를 살해한 용의자로 되어 있고, 본사로 전화를 해보면 자신은 C국으로 발령조차 없는 있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간절한 소통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말로 자신이 전처와 개를 죽였는지 기억해 내고 싶었을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쓰레기 더미로 떨어지던 그때를 벗어나 안락하지 못하더라도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와도 소통 할 수 없는 공간에 떨어져 길거리를 방황하며 구석에 숨죽여 사는 쥐들처럼 숨어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쥐들을 잡으며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C국에 남아 기억나지 않는 지난날을 뒤로하고 또 하나의 생명채로 살아 가게 된다.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이름도 없는 도시속의 그곳에서 그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마지막 페이지는 인간이 인간에 흡수되어 살아가는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편혜영의 단편을 한권 선물 받기 전에 장편이 한권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묵혀 놓은 소설을 꺼내고 한 번에 숨도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문득 작가란 무엇인가 생각되었다. 소설가란 무엇인가. 글을 쓰는 일은 어떤 삶의 소통인가.

호숫가의 안개가 아닌 모든 것이 타버리고 새벽을 맞이하는 지구의 종말 다음 날을 연상하게 하는 소설, 마치 어떤 날의 다음날 같은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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