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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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과가 스펙터클하게 지나가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뿐일까.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고 복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어제 다 지워지지 않은 피로를 등에 업고 다시 하루를 시작하며 세상의 가장 긴 침묵이 보내주는 긴 한숨과 함께 직장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점심이 지나고 차츰 밀려오는 하루의 그림자가 어느덧 나를 저녁시간으로 이끌고 간혹 생겼던 저녁 약속도 어느덧 사라져 똑같은 패턴으로 집으로 돌아가며 하루의 24시간 중 가장 고되고 녹녹치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신발장에 채 넣지도 못하고 끝이 날 때가 많다.

 

그런 일상이 일주일을 채워지고 달력 한 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탁상 달력을 다시 사들여야 하는 한해가 되어 버린 해가 벌써 몇 해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게도 가슴 떨린 사랑을 했던 날들도 있었는데도 왜 그런 따끈따끈했던 기억들을 오늘의 고된 날이 녹슬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산성 작용을 해서 내 모든 것들을 부식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제목 때문에 잠시 침식되는 기억들을 재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다가왔다. 컴퓨터 속에 저장되어 있는 MP3파일들을 꺼내서 바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아닌 버튼을 꾹 누르고 약한 노이즈가 가미된 라디오에서 녹음한 노래를 듣는 그 추억을 생각하며 책을 펼쳤던 나는 많이 당혹스러웠다.

 

책을 읽는 동안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붙여 놓는데 포스트 잇 플러그들이 책에 한 하나도 붙여있지 않는 책을 읽어버렸다. 책을 읽는 동안 자꾸만 점점 잦아드는 숨소리 때문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냥 책을 읽을 수밖에 없을 뿐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그냥 책속에 있는 주인공 아름이의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주인공 아름이는 내일을 떠 올리는데 읽는 독자인 나는 왜 아름이의 내일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을까. 담담한 주인공을 서술한 김애란 작가와 달리 당황스런 주인공을 받아들이는 독자의 입장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이미 하루가 한 달로 나이를 먹는 아름이를 겪었기 때문일까.

 

지금 아름이의 나이 열일곱, 자신이 만들어졌던 그때 부모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부모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의 새끼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진짜 새끼를 만들어 버렸다. P13> 정말로 잘 하는 것이라고는 애를 일찍 만들어 놓은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외할아버지의 생각처럼 그들의 부모는 능력을 말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순박했다.

당혹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열일곱의 어머니는 친구에게 이런 조언을 듣는다.

 

“나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노트를 반으로 갈라 표를 만들어. 그런 뒤 그 일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 그럼 이상하게 한눈에 답이 보일 때가 있더라고. ” P25

 

하지만 열일곱의 어머니는 나쁜 점만 가득 써 놓고 좋은 점을 두어 개도 쓰지 못하고 아름이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다. 인생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적어 놓고 나쁜 점이 훨씬 많아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게 열일곱의 어머니는 잠을 자도 대답을 할 수 있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고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어머니의 자리로 살아가면 될 뿐인 것 같은 인생이 쉽지가 않다.

 

아직 뭘 해야 할지, 어떤 것을 더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선택을 위해서 노트를 반으로 갈라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적어 선택을 할 고민들도 많을 나이에 열일곱의 엄마가 아빠가 낳은 아름이는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만들었던 숫자로서의 나이가 되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지금의 엄마와 아빠의 나이보다 두 배나 나이를 먹은 육체를 가지게 되었다. 조로증으로 열일곱의 아름이는 혈압약과 관절약과 혈당을 조절해야 하는 약을 먹으며 청춘이 지녀야 할 고민들과는 이미 멀어졌고,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트를 반으로 접어놓을 일도 없어지게 되었다.

 

문득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단편 몇 편을 읽고 알게 된 김애란 작가는 왜 이런 얘기를 쓰게 되었을까. 대체 조로증을 앓는 아들을 보면서 느끼는 부모들의 반응이은 상투적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아들을 보며, 너를 사랑하고 이런 아픈 네가 나의 슬픔이라는 것이 기쁘다고 말하는 부모의 말이 절대로 상투적이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조로증을 앓고 있는 부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병을 앓는 사람치고 열일곱까지 살았다는 것이 기적이라며 자신의 얘기를 열여덟의 생일에 부모에게 선물을 하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만 청춘인 늙어가는 손의 주인공이라는 것에 더 가슴이 따뜻해진다.

 

노안이 찾아와 앞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아름이의 시력처럼 그들의 가정생활도 점점 어두워졌다. 그동안 아름이의 병원비로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그들은 매일 열심히 일해도 아름이를 위한 혈압 약하나 사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병원비를 위해 텔레비전 프로에 나가게 되고 많은 책을 읽는 아름이의 넓디넓은 배경지식으로 아름이는 더 눈물 나게 아름다운 청춘으로 많은 사람들의 성원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열일곱…….누군가 가슴에 붉은 실 하나를 풀어 놓은 것을 잡고 싶을 그런 순정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처럼 아픈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서하라는 아이.

풋풋한 두 아이의 순정처럼 보일 이 부분에서 나는 참 이상하게 졸렸다. 아름이와 서하의 편지 부분이 가장 지루했던 부분이 아마도 서하의 존재를 짐작하고 있어서였을까.

 

아름이가 부모님께 주고 싶었던 뒷얘기를 읽는 동안 아주 짧게 그들의 청춘이 팔랑거리다 사라졌다. 나는 문득 아름이의 이별이 안타까워졌다.

 

“아빠”

“응?”

“그리고 엄마.”

“그래”

그리곤 남아 있는 힘을 가까스로 짜내 말했다.

“보고 싶을 거예요.”

-P322

 

아름이 적어 내려간 <두근두근 그 여름>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저물어가는 청춘에 눈물이 났다. 두근두근했던 네 청춘의 시간을 내가 기억해 놓겠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분명 내일부터 또 시작되는 내 일상이 별반 다르지 않더라도 그것에 아주 많이 고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때로는 네 청춘을 떠올리며 두근두근하게 하루를 보내 보겠노라고 마음먹었다. 나도 맹랑한 너를 기억하고만 싶다. 소설 속에서 영원히 잠든 아름다운 청춘. 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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