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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와 경계를 넘다 - 수의사 문성도, 5대륙 12만 킬로미터를 달리다
문성도 글.사진 / 일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오토바이와 의사, 그리고 여행과 길이라는 단어들의 조합을 떠 올리면 체게바라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나 상투적인 생각일까?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누비는 여행을 떠난 수의사의 얘기라는 말에 나는 그가 마치 혁명을 준비했던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고 하는 체게바라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속초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럽으로 관통하는 그의 여행 경로에 군침이 흐른다. 넓디넓은 사막과 황무지를 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를 떠올리면 사실 잠깐의 소름이 돋기는 했지만 그 황무지를 달려 만나게 될 도시들의 황홀한 만남은 얼마나 짜릿할 것인가.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일본 여행을 한 어느 청년의 얘기를 보면서 걷다가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한 여행의 매력에 부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걷는 것이 힘들고 많이 외롭다고 느꼈던 작년 제주도의 여행을 통해 혼자 떠나는 장기 여행이 얼마나 많은 외로움을 견디며 지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몇 달씩 혹은 일 년 넘게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간들보다 스스로 견뎌야 할 외로움과의 싸움에 더 많은 이해와 안쓰러움을 가질 수 있었다.
새로운 도시와의 만남 때문에 그의 여행이 부러운 것보다 오토바이를 타고 밤이 되면 1인용 텐트에서 잠을 청할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이 가장 부럽다. 위험하다는 생각은 황무지 건너편으로 보내고 잠을 청할 수 있는 자유. 여자가 아직은 이렇게 여행을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고 물론 남자들도 위험한 도시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더 위험한 여행이 있기 때문에 그가 오토바이로 경계를 넘을 때마다 그의 데워지는 엔진에 부러울 수밖에 없다. 유럽 어느 나라에서 만난 여자 바이크 여행가를 만나서 생각이 드는 그 나라의 안전한 치안과 자유에 부럽다는 생각에 나는 더 없는 갈망을 느낀다.
“나와 마찬가지로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면서 혼자 여행 중이었다. 여자 혼자서 장기간 오토바이 여행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안전한 치안상태, 그리고 여성의 자의식 등 모든 면이 부러웠다.” (p56)
오토바이를 통해 대륙을 넘는다는 것은 걷는 여행보다 더 어려웠던 순간이 많은 것 같다. 속도를 내고 비포장도로에서 전복되었던 그의 오토바이 때문에 한 달 때로는 넉 달을 깁스를 하고 낯선 도시에 머물러야 했고 오토바이의 부속이 없어 며칠을 기다려 수리를 해야 했지만 역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묘미, 사람과의 만남은 행복해 보였다.
아시아를 시작해 유럽, 유럽을 시작해 아프리카. 다시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경계를 넘었던 그는 어떤 경계들을 또 넘고 있을까.
칠레, 우수아이아의 도시 그 세상의 끝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면을 통해 느끼지 못했던 그 막막한 세상의 끝을 알고 싶다.
“ 그 도로의 공허 앞에서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이었나. 우리 행위의 주체가 각성한 자아가 아니라 무의식적 자아일 때 인간은 동물과 다를 것이 없다. 그곳에서 나는 완벽하게 혼자였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 모든 것과 동등한 나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었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우리는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P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