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성장소설속의 여자 주인공들은 왜들 이럴까. 몇 달전 읽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선 삶이 참 모질다고 생각하게 했던 여자 주인공의 성장소설이었다. 물론 <트렁커>가 성장소설은 아니지만 그녀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오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삶의 귀퉁이에서 자라나는 어린 싹들의 모습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다치면 안 되니까, 아프면 안 되니까, 그들의 상처가 아주 오래도록 남아 지워지지 않으면 삶이 더 고달플 테니까.

 

하얗고 깨끗한 시트의 침대도 있는 서른이 넘은 여자 온두는 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멀쩡하게 집이 있으면서도 잠은 집에서 잠들 수 없는 그녀는 치유 할 수 없는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처럼 집에서 잠들지 못하고 어둑해지면 공터에 세워둔 차의 트렁크에서 잠을 자고 책을 읽고 별을 보는 이름이 있다. 이름이 이름인 남자, 참 독특한 이름들을 가진 두 주인공들은 집에서 잠을 자지 않고 차 트렁크에서 잠을 자는 트렁커들이다.

 

언젠가 인간극장에서 가수 김장훈이 공황장애로 잠들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참 지독한 병라는 것을 알았다. 잠들려고 해도 잠들 수 없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그 공허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병. 온두 역시 그런 공황장애를 가진 한 사람으로 트렁크를 찾아 잠을 자면서 자신이 공터의 주이이라고 말하는 름을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둘 사이가 엮일 것 같다는 조짐은 쉽게 감지 할 수 있다. 그리고 름이 만들어 낸 ‘치킨차차차’라는 게임을 통해 듣는 온두와 름의 과거는 트렁크에서 잠자는 신기하고 별난 사람들의 얘기일 것 같다는 생각과 다르게 가슴의 답답한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부모가 자살하려고 아이까지 약을 먹이려고 했지만 부모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어린 온두와 완벽한 남자만을 요구했던 군인 아버지에게 학대받았던 름의 과거를 듣는 게임이 지나갈 때마다 제발, 그들의 진실의 게임이 빨리 끝나길 원했다.

 

“밤이 빨리 왔으면…….공터로 가고 싶어. 게임에서 지고 싶어, 기억을 잃고 싶어.” P192

 

그들이 트렁크속에서 잠들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말해야 하는 게임의 역을 지날 때마다 름의 얼굴의 상처가 아물어지고 잘려진 손가락의 마디가 길어질 듯 했다. 하지만 온두는 기억 저편에 있는 자아를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그녀에게 세명의 자아가 있다고 했던 피의 말처럼 그녀에게는 항아리속에 쌓아 둔 낡은 옷처럼 숨겨 놓은 자아가 여러명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의 진정한 자아를 꺼내는 일은 무거운 항아리 뚜껑을 여는것처럼 어려운 일이아닐까.

 

름의 얘기들에는 많이 속상하다. 피가 낭자한 영화를 열두편은 더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가족사의 얘기들에는 피말고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름의 이름만 들으면 손 마디마디에 고름이 가득 들어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더 힘들었을 것 같은 그들의 삶의 저편을 많이 위로해주고 싶었다.

 

서로를 보듬어 줄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의 엔딩에서 다행이라는 말이 떠 오른다. 온두는 름의 짧은 손 마디를 아파하며 사랑해줄 것 같고, 름은 온두의 항아리 뚜껑속을 다시는 들여보지 않도록 자아를 찾아줄 것 같다. 그렇게 서로를 치유해 나가며 그들의 트렁크속에 단꿈들이 가득 들어찰 것 같다.

 

문득 ‘치킨차차차’라는 진실게임을 나도 해야 할 것 같다. 매일 지긋지긋하게 말하는 불평과 불만, 질투, 짜증이 아닌 사랑과 위로, 행복을 얘기하며 나를 위로하고, 그리움이 아닌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해져야 할 것 같은 그 게임을 시작해야겠다. 어쩜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게임일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