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잘 도착하셨기를
오후 7시 넘어 타는 전철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숨이 막히는 그 전철역에 유일하게 아무도 자리가 비어 있는 곳은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빽빽하게 차 있는 전철 안에서도 그 자리가 비어 있던 그날, 전철의 문이 열리자 두 남자가 몸이 엉키며 급하게 들어 왔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와 어린 남자, 둘 다 멱살을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술자리에서 무슨 싸움이 있었나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술 먹고 어르신으로 보이는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는 어린 남자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다.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멱살은 왜 잡고 있는 거야?
“제가 아빠예요. 아들이 자폐아라서 지금 이러고 있으니 오해마세요.”
아버지라고 말을 하자 큰 싸움은 아닌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멱살을 잡고 있는 순간을 어찌해야 하나 마스크 속에 짙게 그어진 주름살을 보며 걱정스러웠다. 하필, 내가 서 있던 자리가 두 남자의 바로 옆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한손은 계속 아들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 손잡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오른손이 날카롭게 아들의 뺨을 향했다. 철썩, 철썩. 두 번의 소리가 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홍해의 물이 갈라지듯 반으로 갈라졌다. 나와 내 옆에 있는 한 남자만 덩그러니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따귀를 맞은 아들은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양해 손을 들었고 철썩 한 대 따귀를 날렸다. 두 번째 날아가는 아버지의 팔을 나와 옆의 아저씨와 함께 붙잡았다. 아버님, 이러시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육성이 터지고 아버지를 붙잡았다. 옆의 아저씨도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는 건너편 전철을 타야 하는데 문이 열리자 반대편 전철을 탔다고 했다. 내가 타고 있는 전철은 인천을 향해 가고 있는데, 그들의 집은 의정부라고 했다. 반대로 향하는 전철에 아들은 문이 열리자 본능적으로 들어 왔을 것 같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계속 다음 역에서 내리자고 했지만 아들은 대답을 안했다.
아버지는 무심한 혹은 걱정의 눈으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들은 말을 못한다고 얘기 했다. 따귀를 때린 아버지를 우리가 어떻게 보고 있을지 아버지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말을 이어가셨다. 하지만 아들은 손잡이만 꼭 잡고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때릴까봐 내 옆의 아저씨는 계속 아버지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때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게 했다. 내가 아프니 이렇게 위로 해 달라는 듯.
집에 가기까지 두개의 역이 남았다. 나는 앞에 있는 아들에게 몸을 숙여 눈을 보며 말했다. 다음 역에서 내가 내리니까 같이 내릴래요? 다음 역에서 같이 내려요. 내가 같이 가 줄게요.
나는 손잡이를 꼭 잡고 있는 아들의 손을 잡았다. 처음에는 아들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손을 잡으며 같이 내리자고 했다.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철 문이 열리자 아무런 반항 없이 아들은 일어 났다.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 아버지의 팔을 잡고 있던 아저씨. 이렇게 네명이 역에서 내렸다.
아들은 내 오른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버지가 건너편 전철이 올 때까지 같이 있어 주실수 있냐고 하셨고 나와 아저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들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아들은 22살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매일 전철을 다니며 사람들과 섞여 사는 연습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닌다는 그 노고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나와 아저씨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전철이 왔고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아들과 아들을 앉게 했는데 문제는 아들이 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억지로 빼려고 하니 뭔가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전철역 문이 닫히고 나는 우리 집과 반대편으로 다시 떠나고 있었다.
두 번째 정거장을 지나서야 나는 아들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아들에게 오늘 고생 많았고 아직 밥 안 먹었죠? 오늘 아빠랑 가서 맛있는 밥 먹어요. 고양이 좋아해요? 우리 집에 고양이가 나를 기다려요. 그래서 집에 가야 해요. 그때 아들이 살짝 손을 놓다가 다시 꽉 잡았다. 그리고 다시 손을 놓아 주었다. 처음에 손을 빼다가 가방의 철 고리에 손가락 살점이 살짝 뜯겨서 피가 났다. 패딩의 소매로 감사며 아들에게 인사를 했다. 잘가요.
나에게 고맙다며 인사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슬퍼보였다. 어쩜 그건 나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내일이라도 다시 만나면 인사를 할 것 같은 아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 주말이다. 의정부까지 무사히 잘 도착하였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