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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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도 보이는 만수씨 [투명 인간 _성석제]



-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 한 적이 없어요.

형, 만수 형.




 

성석제의 소설은 항상 좋았다. 그의 소설의 신간은 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빨리 읽는 것도 아까워 야금야금 읽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단 한 번의 연애>를 끝으로 그의 소설과 이별했었다. 하지만 내가 헤어지자고 해 놓고서는 그의 SNS를 몰래 드나들며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훔쳐보는 옛사랑처럼 그의 소설을 대하고 있었나보다. 그동안 신간 소식은 옛 연인과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색한 미소처럼 지나쳐 버렸는데 다시 끊겼던 그의 소설을 뒤적이며 읽고 있다. 370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다 읽고 생각했다. 답답했지만 좋았고, 지루 했지만 아련했고, 한숨이 나오다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역시, 나는 그를 좋아했구나.


 

3남 3녀의 자식 중에 메인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넷째 김만수다. 그는 첫째 형보다 훨씬 부족한 스펙을 가지고 있다. 형보다 훨씬 못생긴 얼굴, 공부 잘하는 형과는 달리 느리고 부족한 만수였다. 물론 형을 이길 수 있는 가족들 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완벽하게 태어난 사람이었으니까. 공부 잘하는 자식이 있으면 못해서 부모 마음 상하게 하는 자식도 있는데, 만수는 공부는 느리고 힘들게 하지만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인물은 아니다. 천성이 착한 만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따르고 그의 선함을 믿는다. 회사와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구하고 소송을 하며 법원을 찾아가는 모든 일을 만수가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모인 사람들 중 만수가 가장 많이 배웠고 믿음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이 그의 마지막을 가장 힘들게 만들기는 했지만 만수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6남매의 이야기는 어느 지방의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가족의 일화부터 시작이 된다. 만수를 중심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에피소드들을 돌아가며 얘기하고 있다. 때로는 따뜻하지만 안타까운 엔딩이 더 많았다. 그래서 김만수라는 인물에 연민으로 시작된 눈물이 끝까지 멈추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만수 일가의 이야기는 영화 <국제시장>과 닮아 있다. 만수의 집에서 가장 명석한 큰형은 베트남 전쟁으로 떠나게 되고, 온 식구의 기둥이었던 형은 고엽제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서울로 올라 온 누나들이 겪어야 했던 연탄가스 중독은 만수가 짊어져야 하는 가족의 큰 책임이 또 하나 생기고 만다. 1970년대를 지나 80년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이들이 겪어야 했던 세월의 큰 흐름 속에 영화의 주인공처럼 김만수라는 인물이 충실히 연기해내고 있다. 그가 지나 왔던 삶이 우리의 역사였고 흔적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속 황정민이 김만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만수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위해 희생해 왔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우유조차 동생들과 형들을 위해 희생했고,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로 사망한 큰형, 연탄가스 중독으로 바보가 된 누이, 무능력한 술꾼으로 변한 아버지, 행방불명된 동생의 자식까지 만수가 해결해야 할 몫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공장을 버리고 도망간 사장대신 공장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에게 끝내 돌아온 것은 어마어마한 손해배상 청구액이었다. 그것도 만수가 갚아 나가야 할 몫으로 남았다. 처연한 그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고단한 그의 발소리가 책 밖으로 쏟아질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모습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그가 지나가도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처럼 세월에 혹은 가족에 때로는 그 어떤 사회 속에서 투명인간으로 변한 이들과 마주치고 그들과 함께 말을 이어 갈 뿐이다. 다리 위에 올라 선 어떤 이들 옆에는 이런 투명 인간들이 더 있을지 모르겠다. 김만수, 그가 투명하지만 투명하지 않고,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그런 인간으로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겠지.



 

-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 한 적이 없어요.

형, 만수 형. P369


만수씨, 포기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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