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하루가 지나갔다.



작년에는 혼자 치앙마이에 가서 큰 이벤트 없이도 즐겁게 다녀왔었다. 공원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매일 찾아간 호텔 옆의 카페에서 30분씩 책을 읽으며 마신 라테는 한국에서도 먹을 수 없는 맛이라 그립다. 수십개의 사원을 돌며 그늘에 앉아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홀딱 젖어 걸어 호텔로 들어갔다. 원목으로 깎여진 코끼리 상을 사기위해 세 시간이나 상점 구경을 하기도 하고, 200원하는 삼천원어치 꼬치, 먼지와 함께 볶아지는 길거리 팟타이는 타이거 맥주와 하루의 엔딩을 만들어줬었다. 내년에도 태국에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짐을 싸 비행기에 올랐던 그 여름의 똑같은 날



나는 방 한구석에 앉아 마트에서 사온 타이거 맥주로 그날의 사진들을 뒤적이며 치앙마이 올드 타운에 있는 낡은 그 호텔의 침구마저 그리워지고 있다. 아니 사실은 그것들보다는 낯선 곳으로 간다는 그 설렘을 가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고 싶다. 작은 공간에 꼼짝없이 콕 박혀 앉아서는 착한 얼굴로 자고 싶다. 얇지만 따뜻한 비행기 담요를 덮고 목이 꺾이도록 자다가 킁킁 기내식 냄새를 맡으며 부스스 일어나 생선과 닭고기 중에 뭘 먹을까 오래오래 고민하다가 승무원이 물어 오면 “피시, 플리즈” 당황하지 않고 세련되게 대답하고 싶다. 스프라이트도 달라고 해야겠다. ‘사이다’라고 말하면 안 돼.

이제 식판을 받아 들고 비닐을 쭉 찢어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와 숟가락을 꺼내서 칸칸이 나눠 담긴 음식을 차례차례 해치우는 거다. 작긴 해도 있을 건 다 있지. 누가 그랬더라.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딱 맞는 말이지. 작은 은박 도시락, 작은 치즈, 작은 케이크 조각, 가방 속엔 작은 샴푸, 작은 비누, 작은 샘플 화장품들, 그리고 잠깐 만나고 곧 헤어ㅓ지는 사람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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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비행기, 비행기를 타고 싶어. 꼼짝없이 콕 박혀 있는 작은 공간이 필요해.” (내 여자 친구는 여행중 - 이미나 P24~26)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천천히 달리다 활주로에 바퀴가 올라갈 때 그 짜릿함을 느끼고 싶었다. 고막이 막혀 침을 꼴깍 삼키는 그 순간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환한 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그 짧은 순간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나에게 이런 경험을 주지 않는다. 갈 수 있는 나라도 별로 없지만 귀국 후 자가 격리 2주는 회사를 그만둬야 가능한 일이다.



서울을 벗어나 어디든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 시국에 지인들을 찾아 가는 것이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는 결론으로 결국 나는 집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이제 하루 지난 휴가는 그동안 사 놓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잘, 할 수 있겠지? 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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