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엔도 슈사쿠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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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함께 나누는 일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엔도 슈사쿠가의 글을 읽으면서 다정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에세이는 역시 그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그가 키웠던 혹은 스쳐갔던 동물들 식물들의 얘기에 내게도 왔다 갔던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그의 시바견의 얘기는 흐뭇하게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가 슬펐다. 어엿한 부인도 있었던 녀석은 동네 떠돌이 개와 돌아다니다가 성병까지 걸리고 말았다. 사실 그도 개에게도 성병이 있다는 것에 놀랐겠지만, 나 또한 놀랐다. 개에게도 성병이라는 것이 있구나. 교미할 시기가 되면 아무에게나 들이댄다고 생각했던 개들의 행동에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도 이상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이상형이어야만 교미가 가능하다. 그들에게도 선택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인간은 참 개보다 못한 것들인가.



그를 사색에 잠들게 했던 시바견의 아내인 흰둥이가 세상을 떠날 때의 모습은 동물과의 이별을 해본 사람은 분명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떠나는 것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서글픔이 울렁거렸다.



“세상에는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거꾸로 나처럼 동물을 좋아하는 남자는 개나 새에게 얼마나 위로를 받는지……. 아마 내가 언젠가 죽을 때면 수일 전부터 인생에서 다양한 사람과의 일을 음미할 텐데, 흰둥이의 가정했던 눈동자도 선명하게 떠오르리라. 우유 가게에서 받은 눈곱투성이의 잡종 강아지. 그 흰둥이와 함께 살아 참 좋았다고, 나이 든 지금 마음속 깊이 느낀다.” 66쪽




십여 년을 넘게 정들었던 흰둥이의 무덤은 그의 목련 나무 밑이었다. 하얀 흰둥이와 목련꽃이라니. 그가 처음 이별이라는 것을 맛보았던 검둥이와의 이별 때문이었는지 늘 모든 생물이 세상을 다하는 날까지 그들을 지켜줬다. 나를 스쳤던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책임감 있게 대해줬었는지 떠 올렸다. 유기견이었던 시츄 리치가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날 때 우리 가족은 리치를 보내고 나서 알았다. 리치가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니라 병에 걸려 버려졌었다는 것을. 우리와 한 달 정도 밖에 살다가지 못했지만 그 시간이 리치에겐 행복했던 순간이 잠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고양이 사진을 찍는 작가가 올린 인스타 사진 한 장에 얼마 전에 길을 가다가 펑펑 울었었다. 아홉 살 난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할머니는 가족이 없다고 했다. 서로 의지하며 사셨을 할머니도 늘 키우던 고양이 ‘찐이’의 남은 날들을 걱정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찐이보다 할머니의 건강이 더 안 좋아지셨고 결국엔 요양원으로 가셨다. 혼자 남겨진 찐이를 걱정하셨던 할머니와 달리 찐이는 임시보호처로 이동했다. 할머니가 입으셨던 꽃이 화려한 조끼를 덮고 잠이 든 찐이 사진을 보고 둘의 이별에 목이 아팠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살았을 날들이 떠올라 목이 아팠고 나도 언젠가 이런 이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서글퍼졌다. 언젠가는 하게 될 그 이별을 위해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rhamemu037님의 인스타 사진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사슴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일본 간사이 지방에 있는 도시 ‘나라’ 어디쯤엔가 뛰어 놀고 있을 사슴이 자기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언젠가 나라에 가서 사슴을 만나게 된다면 더 다정하게 인사 하리라. 나는 다음 생이 있다면 아무것으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 그 어떤 것과도 이별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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