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 / 모멘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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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키에 비하면 케루악은 멀끔히 차려입은 젊은 청년일 텐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삶은 조금이라도 더 살아본 자가 그 맛을 아는 법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를 일이다. (참 순탄치 않은 번역이건만 부코스키의 글이라 참는다ㅡ 십 년도 더 전에,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 그 첫 번째』가 출간된 후 두 번째 권이 도통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않는 와중에 나온 것이라) 물론 이런 식으로 악다구니를 부리는 멍청한 노인네는 지금까지 본 적도 없고 그다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으나, 꼰대스러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도취감을 자아낸다는 점에서만큼은 언제나 부코스키는 내 영웅으로 남아 있으리라(부코스키(치나스키)와 레보스키는 언제나 옳다). 언젠가 그가 마지막으로 한탕 크게 벌고 나서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결코 그런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최상의 독자, 최상의 인간이란 자신 앞에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보답하는 자들 ㅡ 작가는 글만 잘 챙기면 그만이고 독자가 있어서 발표 지면이 생긴다는 것 말고는 독자에게 빚진 것도 없다(p.9) ㅡ 이라더니,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심약하고 성마른 인간의 전형이 바로 부코스키가 아닌가 싶다. 독자들이 책을 사고 그 돈이 주머니에 들어오면 금세 경마장에 처박는 자가 바로 그 아니던가ㅡ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한 인생? 땡전 한 푼 없이 곧 죽어도 낭만? 글쎄, 그러든지 말든지, 부코스키는 진짜 어마어마한 돈이 있었다면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할 인간이다. 그가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든 아니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를 소설들을 쓰든 말든 내 쪽에서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단지 그의 사고방식, 사물과 사람을 대하고 자신에게 벌어진(질)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대개 태어나서 죽기까지 수십 년을 살 텐데 이런저런 다종다양한 생각들도 필요하지 않겠냐는 자세, 그걸 좋아할 뿐이다. 「곧 죽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난 그게 참 낯설게 느껴진다. 난 이기적인 놈이라 그저 글을 계속 더 쓰고 싶을 뿐이다 (...) 하지만 사실 내가 얼마나 더 계속할 수 있을까? 마냥 계속하는 건 옳지 않다. 염병, 죽음은 연료 탱크 속 휘발유다. 우리에겐 죽음이 필요하다. 내게도 필요하고, 네게도 필요하다. 우리가 너무 오래 머물면 여긴 쓰레기로 꽉 찬다.」(p.42) 좋아, 좋아. 여전히 마음에 든다. 이렇게, 또 저렇게(좋게 말해 변변찮은 미친 작자). 여전히 탈진한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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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1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1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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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예술은 공공의 미(美)인 동시에 무죄인 건가. 그렇다면 음악 또한 무죄일 터다. 하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의 재미가 더해지는 건 부제(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에서 알 수 있듯 음악(사)을 관통하는 특수한 순간들과 함께 버무려진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을 거다. 각각의 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채로운 순간들은 전쟁과 노예에서 시작한다. 쿠바를 놓고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벌인 후 버려진 군수물자들 중엔 군악대에서 쓰던 악기가 있었다. 특히 소리가 멀리 전달된다는 특성 때문에 군대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건 관악기.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바로 뉴올리언스였다. 뉴올리언스가 어디인가. 바로 재즈의 발상지라 여겨지는 바로 그곳이다. 나 원, 더군다나 거기에선 루이 암스트롱이 태어났다. 그런데 책에 의하면 재즈에 사용되는 악기를 만든 것도, 재즈 음반을 가장 먼저 녹음한 것도 백인이다. 희한한 일이다. 재즈라고 하면 으레 흑인의 탄력 있는 제스처가 떠오르는데 말이다. 가혹한 매질을 당하며 서로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해야만 했던 목화밭의 노예들, 백인이 정해놓은 규율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들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뿐. 바로 필드홀러(field-holler)다. 들판에서의 절규? 황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p.39)ㅡ 훗날 멕시코 올림픽에서의 블랙 파워 살루트를 떠올려보면 이 모든 것이 잊을 수 없는 역사라는 사실에 기분이 새로워진다. 그리고 이어진 블루스와 가스펠의 탄생. 세계는 내처 '모던'해지고, 50년대 미국 중산층과 히피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날 무렵 엘비스 프레슬리와 로큰롤, 비틀즈, 롤링 스톤스가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선 신중현과 김민기, 한대수로 대변되는 포크의 물결이 시작되고, 저 유명한 「아침 이슬」이 금지곡으로 지정된다(최초 양희은의 목소리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청년들로부터 많이 불리고 금지곡까지 된 것이지 김민기 본인이 부른 노래를 들어보면 맥이 풀릴 지경이다. 하지만 나는 김민기 버전을 더 좋아한다. 본래 「아침 이슬」은 만취해 '필름이 끊어진 뒤' 야산 공동묘지에서 자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선 '쪽팔려서' 만든 노래다). 책은 세 번째 장에서 훌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클래식을 훑는데, 다시 마지막 장에선 20세기 한국으로 돌아온다(트로트와 엔카의 탄생과 원조 논란도 이야기된다). 심지어 명성황후와 동학농민혁명까지 언급되는데 윤심덕이 죽은 뒤에야 발표된 「사의 찬미」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는 것만 같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전복'과 '반전'을 준비했다. 미국을 뒤흔들었던 재즈와 로큰롤, 한국의 통기타 음악과 그룹사운드, 프랑스혁명 전후의 모차르트와 베토벤,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관통하는 한국 근대음악까지. 그런데 좌표가 어디에 맞추어지든 내용과 관련 없는 의문이 하나 드는 건, 강헌이 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책 한 권 발표하지 않았었느냐는 거다. 책이 재미있고 아니고는 차치하고 그쪽이 더 의아하기 짝이 없다(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전에 쓴 뭔가가 있긴 한데, 이 『전복과 반전의 순간』 쪽이 좀 더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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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나서 혁명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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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도 식후경이고 혁명도 웃고 난 뒤에. 『일단, 웃고 나서 혁명』이 언제 어디서건 유효성을 갖게 된다면 그건 풍자라는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현재 <민상토론>이라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 또한 매한가지. 씁쓸함이 배가되는 건 그 꼭지가 '정치판'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판을 마음껏 풍자할 수 없는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아지즈 네신 본인이 이러한 글로 수감되기도 한 걸 보면 풍자와 웃음의 자유가 갖는 파급과 이중성이 더더욱 부각된다). 수록된 첫 글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는 동네 이장 선거를 다룬다. 오랫동안 이장이었던 외메르를 갈아 치우자는 주민들의 결심이 굳은 가운데,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외메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소송이다 뭐다 하며 어려움 하나씩을 격고 있고 외메르만이 그 해결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 단합이 깨질까 조심조심 외메르와 접선(!)하려는 주민들의 의지와는 달리 결국 그들은 한날한시 외메르 영감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절대 외메르를 뽑지 않겠다는 말은 선거 당일 무색해지고 만다. <혁명이, 아무도 모르게>의 모습은 혁명을 꾀하는 자들이 성공한 후 그 사실을 알릴 길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이야기. 심지어 자신들이 꼭 혁명을 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다른 혁명 단체를 발견한 뒤 그들을 체포하고 나서야 기어이 자신들만의 혁명에 성공한다. 그런가하면 <모든 것은 주지사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전화통만 붙잡은 채 서로 일처리를 미루는 공무원들을 꼬집는다. 사실 '웃음의 자유'는 저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이야기된다. 거기에서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을 싫어한다. 왜?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없애면 신앙도 없다.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하나님도 필요 없으니까 말이다.(네이버캐스트, 진회숙) 웃음이 끊기고 헤게모니를 쥔 자에 대한 풍자마저 사라진 세계가 어떨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우리 사회가 공포로 가득 차고 황폐해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외국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가재도구를 집으로 들이는 이야기 <우리 집에 미국인 손님이 온다>에서처럼 쓸데없는 습성으로 점철된 사람들은 비단 소설 속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며, <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와 같이 끊임없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작자들 또한 텍스트 안에만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담론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풍자라는 것이 웃음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풍자는 풍자 그 자체가 주어가 되어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을 공격해야만 한다. 때로는 계몽의 성격을 띠면서, 이를테면 (이런 표현은 쓰고 싶지 않으나) 하부(계층)에서 상부(계층)를 공격하는, 그래서 특히 기득권과 그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는 대상을 깎아내리고 우습게 만들어 조소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풍자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무언가를 깨부수고 공격함으로써 사회를 밝게 만들기도 한다. A가 B를 공격하고 조롱거리로 만드는데 사회가 밝아진다? 일견 이상하게도 들리지만 적절한 시의성을 지닌 풍자가 잘못된 것(들)을 꼬집는다면 자연스레 수긍이 간다. 왜? 앞에서 언급했듯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에, 기득권(층)을 조롱해 거기에서 웃음과 해학, 나아가 경종을 울려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면 더 이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상부의 무게에서 벗어나려고 할 게 빤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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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 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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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의 플로베르는 어느 편지에 이렇게 썼다. 「오! 내가 늙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영혼의 증거인가! 나의 육신은 쇠약해지고, 나의 사고는 성장한다. 나의 노년에 일종의 개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책세상, 1994) 구니마사와 겐지로는 어느 쪽일까. 특히 구니마사는 '망설이고 힘없는 노년'의 전형으로, 젊은 사람들로부터의 비웃음의 대상이고 자신을 키워준 사고방식과 문화에 이제는 거꾸로 당하고 있으며 늙고 지쳐 가족들에게서 팽(烹) 당한 뒤 멸시받는다. 겐지로는 일반적이지는 않으나 짱짱한 정신상태로 무장한 노인이고. 둘의 차이는 '꼰대스러움'의 정도인데,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다루는 방법에서 구니마사와 겐지로의 사고방식이 드러난다(둘 다 겐지로처럼 파락호 같은 남자들이었다면 일흔을 넘기기 전에 양쪽 모두 저세상으로 갔으리라). 그러나 어느 하나가 요통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해도 단박에 달려와 줄 사람은 죽마고우뿐이고, 결혼을 위해 야반도주를 획책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사람은 죽마고우뿐이며, 때때로 심술궂게 타박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죽마고우 그들뿐이다. 그리고 두 인물이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노인이라는 설정이 소설을 이채롭게 만든다. 퇴직한 은행원과 전통 비녀를 만드는 직인의 이야기, 구니마사와 겐지로라는 양반들은 한량처럼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그들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평균적 인간이다.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입장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체득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개념이 약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매일같이 새로운 물건이 쏟아지는 지금 어딘지 모르게 경험과 지식 혹은 지혜는 날이 갈수록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으로 추락한다.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열등한 존재이고 모든 일에 서투름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이 지휘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가끔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살아갈 의욕을 얻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연배의 사람들과의 병실 생활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조직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그치지 않는 것이, 병실 밖 세상은 줄기차게 그들을 향해서 젊은 사람들의 부양을 받아야 하는 인간이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사 & 겐』은 소위 '요절복통', '좌충우돌'과 같은 말처럼 건강한 웃음을 자아내는 소설이다(한편으론 그들이 살아온 이력을 끼워 넣음으로써 애잔하게 보이기도 한다).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털을 시뻘겋게 물들이는 노인네라니, 이런 작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모쪼록 구니마사 씨, 겐지로 씨, 오래오래 사세요(주제넘게 명령조로 말하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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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김동욱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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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몇 페이지를 읽자마자 전문적 지식 없이도 쉬 읽을 수 있도록 쓰인 글이라는 걸 알 수가 있다. 특히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법을 읽을 땐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도 했다(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일본에서 살 적 멍청하게도 오른손을 다쳐 꿰맨 적이 있었는데, 소독과 붕대 교체를 위해 병원엘 가는 길이었다. 택시로 이동했던 첫날과 달리 지리를 몰라 헤매다가 점잖아 뵈는 노신사에게 대뜸 길을 물었고, 그는 흔쾌히 가는 길이라며 나와 함께 자박자박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밑도 끝도 없이 온돌 얘기를 꺼냈다. 초로의 신사는 일전에 다녀 온 한국 여행길을 떠올리면서 참 부럽다는 말을 내처 이었고 모퉁이 몇 개를 돌아 우리는 병원 앞에서 헤어졌다(일본에는 고타쓰라는 재미있는 물건이 있질 않느냐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저 옛날 일어난 반란에 대비를 하지 못한 한반도 이주 세력의 패배와 습기 많은 기후를 떠올려보건대 일본에 구들이란 딱히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불을 넣지 않는 여름철 구들 내부에 습기가 차 벌레가 끓거나 벽이 쉽게 무너지는 결함이 있단다. 여름이면 자연스레 습기가 많아지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잠시나마 겪었던 일본 날씨란 단순한 습기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끈적끈적하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 아니면 샤워는 꿈도 못 꾸었다. 귀가해 씻는다 해도 그때부터 침대로 기어들어갈 때까지 다시 땀범벅으로 몸이 젖어버리기 때문. 재미있는 것은 온돌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땔감의 공급이 당시 서민 계층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졌느냐 하는 거다. 온돌이 상류층에서 서민 계층까지 두루 보편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은 한국 건축이 갖는 문화적 특질의 중요한 요소인데, 보통 상류 계층과 하류 계층은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는 까닭이다(p.233). (책에선 연료의 공급에 관한 수수께끼는 완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다만 상류층과 서민의 살림집 규모나 격차는 차치하고라도 기본적 실내 바닥 구조에서 공통된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상류와 하류 계층의 문화적 동질성이 계층 간 이질성을 지닌 타 문화권의 건축과 구분 지을 수 있는 특질이라는 것이다. 또한 온돌이란 장치가 난방이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나 연료 소모에 있어 산림 고갈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한 나라 안에서도 건축의 구조가 다 다른데 산 넘고 물을 건너면 또 얼마나 다른 양상을 보일까. 지붕에 사용하는 구조물만 보더라도 반원형에서 원형으로 정착되어간 기와, 용마루 양 끝을 장식하는 장식물 치미(鴟尾, 바다에 살며 비를 다스리는 '치'라는 동물의 꼬리를 형상화했단다), 널빤지 위에 흙 대신 회를 얇게 깐 뒤 빈약하게 보이는 외관을 위해 화려한 채색 기와를 덮는 지붕 변화(중국), 또 잦은 비로 지붕의 기울기를 상대적으로 높이거나 암키와와 수키와를 하나로 만들어 무게를 줄인 간이식 기와의 등장(일본)까지, 한중일 삼국의 건축은 그야말로 서로의 기술과 양식의 소통과 함께 저마다의 특질을 살려 같고 또 다르게 걸어왔음에 다름 아니다(간간이 나타나는 쇄국정책으로 각국 문화의 단절이 초래된 점을 떠올려보라). 산이 많거나 적고, 기온이 높거나 낮고, 지질학적으로 안정되거나 불안정한 측면 등이 아니더라도 한데 모인 세 나라의 건축 차이는 (때로는) 미시적이고 소소한 방식의 놀라움을 가져온다. 이제는 주변 환경과 다른 사물들과의 조화까지 고려해 올라가는 건축물의 양태로 보건대 몇십 년 뒤, 몇백 년 뒤의 한중일 건축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지니게 될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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