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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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erza(힘내세요).> 칠레 산호세 광산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푯말에 쓰여진 문구다. 이 후미지고 위험하여 사고로 죽은 영혼을 위한 제단들까지 세워져 있는 산호세 광산이 무너졌다. 불도저로 땅을 고르고, 시추기를 설치하고, 드릴로 땅을 뚫었다. 산호세 광산에 갇힌 33명의 광부들은 70일째 되는 날 비로소 희망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던 구조 현장의 모습에서는 그들을 찾으려 가동된 시추기 드릴 소리가 메아리쳤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신에게 보내는 그들의 모스 부호가 움트고 있었다. 광산에 갇히고 나서 1일째 ㅡ 그들은 대피소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고 믿었꼬, 2일째 ㅡ 그들이 마신 더러운 물에서는 기름 냄새가 났으며, 3일째 ㅡ 그들은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카드로 만든 집>과 다름없지 않았을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광산이었으니까. 다만 밑으로 내려 보낸 카메라에 담긴 광부들의 ㅡ 겁먹은 얼굴들, 피로에 절은 몸, 고통의 느낌 또는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ㅡ 모습을 삭제하고 내보낸 <방송 전략>에는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말이다. 희망은 절대 그러모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런 음습한 곳에서, 헬멧과 헤드램프는 꺼지지 않고 빛을 불어 넣었다. 글쎄, 따뜻한 음식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물렁물렁한 침대에서 자는 나로서는 그들의 산호세 광산을 제대로는 이해할 수 없다. 비극 속에서 비극을 잊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나와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들은 너무나도 사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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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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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측한 악마에게 들씌워져 어딘가에서 지시를 받듯 그런 상태가 된 시대.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지, 신은 정말 죽은 것인지(이전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면), 왜 항상 왕원쉬안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인지, 과연 왕원쉬안과 수성과 어머니는 과연 선善한지, 악惡한지, 해는 어째서 밤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지(곤두박질치는지), 그리고 왕원쉬안은 왜 수성과 헤어졌으며 왜 회사에서 해고되었는지, 또한 끝에 수성(왕원쉬안)은 이미 없는데 왕원쉬안(수성)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낯선 인간들, 낯선 거리, 낯선 감각, 낯선 승전보 ㅡ 심지어 냄새까지도 낯설다. 그러나 결국 인물들은 시시각각 첨벙대는 속물이다. 그들은 그런 속물인 채로, 지금,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ㅡ 아니, 이상한 방에 갇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차가운 밤』의 이미지는 서늘하다, 지독하다, 허물어지다…… 와 같은 단어들과 꼭 맞다. 인물들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며, 서로를 구원하지 못 한다(그런 의미에서 해방 전후 한국문학의 그것과 닮아 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그들의 승리지, 우리의 승리가 아니며(p.316)> 그 속에서 왕원쉬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로 갈까?>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진다. 왕원쉬안, 수성, 어머니, 이렇게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끌어가는 이야기는, 그들을 세상의 오염과 자신들의 오염을 분별할 능력이 없는 이들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외양상으로는 일단 허무함의 길을 걷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갖가지 변주들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들의 방>은 봉건적이며 존재감도 희미하다. 그곳은 빈곤하며 끝없는 위협이 들이닥치는 곳이다. 수성을 제외한 어머니와 왕원쉬안은 끝내 거처인 방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구시대의 산물이며 주체성이 결여된 인물들이란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다. 특히 왕원쉬안의 차가운 생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었고, 그는 이 소설이 지속되는 동안 그곳을 떠날 것인지를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는다. 오직 수성만이 세속적 서사를 지닌 인물로 부각된다. 방은 왕원쉬안과 수성의 물리적이며 심리적인 거리를 고착시키며, 그래서 <방 안>과 <방 바깥>은 전혀 다른 세계이며 결코 만날 수 없다. 결국 그 방에서 왕원쉬안은 죽음을 맞이하고, 어머니는 아들이 죽어서야 방을 떠나며, 수성은 다시 그 곳으로 돌아온다. 세 인물이 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차가운 밤』의 서사 안에서 그런 운명을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여기엔 다른 공간이 더 등장하는데 술집, 카페, 회사, 은행이다. 어쩌면 방을 제외한 다른 공간들은 시대가 조작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방이 주관적 세계라면 그 외의 공간은 더욱 주관적으로 보인다. 왕원쉬안은 방을 벗어나서야 인간의 동작을 회복하지만 그의 생과 죽음은 방에서만 이루어진다. 만약 왕원쉬안이 죽지 않았다면 『차가운 밤』은 어떤 작품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은 쓸모없는 것이지만 나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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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여자들 - 최고의 자리에서도 최고를 꿈꿔라
김종원 지음 / 에이미팩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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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떠올라서 뜨끔하긴 했지만 그런(!) 내용이 아니더군. 사회 초년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가 삼성이건 어쨌건, 그건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고 ㅡ 삼성을 홍보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 삼성에 관한 얘기도 전혀 할 생각이 없다 ㅡ 책은 순수하게 우먼 파워를 주제로 삼은 내용으로 자기 계발의 일환이며 후계(란 단어를 쓰긴 싫지만)구도를 비집고 튀어나온 <여자들>의 이야기다 ㅡ 부모를 잘 만나고,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엘리트 코스를 밟고, 어느 날 갑자기 직함 하나를 들고 뚝 떨어진 여자들의 그것이 아니라(타이틀에 삼성이 떡, 하고 있으니 호기심에라도 책에 눈이 갈 수는 있다).

얼마 전 TV에서 2007년에 방영된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았다. <묵은 때>를 벗기고 초심을 찾자는 내용. 거기서는 출연자들의 데뷔 모습을 보며 서로가 얼굴을 붉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정형돈이 고맙게도 이런 멘트를 날린다. 「그런 열정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는가…….」 조너선 번즈의 『레드오션 전략』에 보면 「<고장 나지 않았다면 고치지 마라.> 그야말로 최악의 경영 마인드다. 앞서가는 기업은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해 필사적이기 때문에 훌륭하다.」란 대목이 나온다. 『삼성가 여자들』의 부제도 <최고의 자리에서도 최고를 꿈꿔라>다. 문제는 그걸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거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여기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보다는 자꾸만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고 목적의식이 뭔지를 다시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분명 세습 경영은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에 둘러싸이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주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깨를 누르고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를 자각하려는 노력 ㅡ 삼성가 여자들이란 딱지를 떼려는 ㅡ 을 말하고 있다. 거기에 포커스는 외피가 아닌 내면에 맞추고서. 인디언 사이엔족의 격언에 이런 게 있다. <눈으로 판단하지 말고 마음으로 판단하라.> 하기 쉬운 말이면서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삼성가 여자들』은 이것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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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책쟁이 2016-05-0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들러주세요~ㅋ
책읽기와 글을 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입니다^^
http://cafe.naver.com/collegeofkim/12644

(혹시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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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뒤집어쓰고 세상을 엿보는 상자인간. 이들이 세상을 열외시킨 건지 세상이 이들을 열외시킨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불특정의 피사체를 엿보거나 자신이 피사체가 되거나 ㅡ 옮긴이가 말하듯 <D의 경우>라는 장에서의 보여지기만 하고 볼 수 없는 폭력성(게다가 피사체는 발기되기까지 한다)은 현대의 그것을 소묘한 것이다. 상자인간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제 몸에 맞는 상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끝없이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얻어지는 지식과 지혜를 얻는 방법이다. 그래서 <상자>라는 것은 ㅡ 각각의 에피소드를 한데 모은 결과로서 ㅡ 결국, 영화 《파란 대문》에서처럼, ①억압을 의미하는 <새장 여인숙>의 이미지와 ②자유와 해방을 뜻하는 <파란 대문>의 이중성의 산물과 같다고 본다. 상자인간은 언뜻 약자로 보이지만 그것은 소위 '어떻게 하다 보니' 약자로 그려지는 거다 ㅡ 나는 약자로는 보지 않지만. 상자를 이용해 안과 밖을 차단하고(또 연결하기도 한다), 단절과 공존의 공간을 만들며 세상으로부터의 뱉어짐을 스스로 추구하는 것은, 외려 거꾸로 상자 속에서 세상을 밖으로 뱉어 밀어내는, 그러한 원망願望에서 기인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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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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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애호가>라고 봐야 할는지, <아편으로 흥한 자 아편으로 망하다>라고 해야 할는지. 나는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세상으로부터의 망각으로 빠졌다기보단 철저하게 즐기고, 괴로워하고, 고백하며, 정교한 스타일의 문체를 지닌 대단히 낭만적인 산문으로 본다. 작가는 아편이 주는 쾌락, 고통, 환상, 두려움, 정신적 쾌활함과 적극적이고 냉철한 사고思考를 논한다 ㅡ <아편>으로 말이다! 당시 맥주나 위스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었고 법적 규제가 없어서인지,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다고 여길 수 있는 이의 고백. 그는 아편으로 인해 와해된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눈부신 장면과 신선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 책은 고백하는 형식의 논문이라고도, 장르적 불안정성을 포함하고 있는 초장르적 산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ㅡ 유목민적 언어의 사용이라 하면 지나친 비약일 수도? 휑뎅그렁한 콧잔등, 초점 없는 동공의 떨림, 퀭한 눈초리, 당장이라도 현실이 될 수 있을 법한 불안한 꿈들. 이것들이 한데 뭉쳐져 정확하게 삶의 반영이 된다. 물론 단속적이지 않은 문학적 영민함 ㅡ 단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ㅡ 과, 유머와 호기심이 축약된 작가의 문체도 한몫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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