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책들 세계문학 122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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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놓고 뒷짐을 지고 있을 때 비로소 창작을 한다. 그리고 사유한 것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텍스트화한다. 작가로서의 나와 나로서의 작가, 외부와 내부, 의자에 앉아 있는 것과 길을 걷는 것 사이의 공명에서 아름다운 ㅡ 치밀하고 고뇌적인 ㅡ 묘사로 풀어지는 또 한 번의 사유. 왜 사유와 텍스트가 동일한가. 왜 사유하는 것이 정제의 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활자화되는가. 왜 무엇인가 눈目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흐름이라는 물줄기를 만나는가. 소설 속의 주인공 작가는 ㅡ 텍스트 바깥의 실제 작가는(어느 쪽을 실체라 할 수 있을까?) ㅡ 구경꾼이 되었다가 방랑자가 되고 다시 작가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작가는 여전히 <산책하는 자>이다. 그는 여전히 바깥과 안을 구분하지 못하고, 나와 작가를 나누지 못한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언어를 발견했다가 또 순식간에 그 언어의 잃기를 반복하며 ㅡ 「오, 머물러라! 너희들, 신성한 예감들이여!」(p.73) ㅡ 과연 이 작품의 타이틀이 『어느 작가의 오후』인지 『작가의 어느 오후』인지 『어느 오후의 작가』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가끔씩 단편적으로 모든 것에 관해 말하는 것은
계획된 전체의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오 (...)
나는 영원히 글쓰기를 금지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오.
더 이상 자기 텍스트를 가져서는 안 된다!

ㅡ 본문 p.107-108


 

이 말은 여기에 등장하는 작가와 번역가 중, 누가 뱉은 말인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작가의 사유는 상념과 성찰을 동반하며 고독이란 안락함(!)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페터 한트케는 우리로 하여금 『어느 작가의 오후』란 이 <말도 안 되는 시詩> 속에서 정처 없이 맴돌게 한다. 그럼 나도 그처럼 이런 알 수 없는 문장을 쓸 수 있겠지. 「『어느 작가의 오후』를 읽었더니 어디선가 고래의 오줌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렇게. 그리고 약간의 친절함을 베풀어 이런 말을 추가할 수도 있을 거다. 「고래의 오줌을 본 적도 없고 그 냄새가 어떤지도 모르지만 막연히 그런 느낌이 든다. 무슨 냄새인지도 모르고 생김새도 모르는 것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는 반드시 존재한다. 현대에는 분명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라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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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펭귄클래식 20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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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매력은 다양한 해석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ㅡ 거의 절망에 가까운 상태였다. 우리는 때때로 20세기를 후기 니체 시대라 부르기도 하지만, 니체를 둘러싼 니힐리즘nihilism과 위버멘쉬übermensch로 위시되는 철학과 이론은 광시곡狂詩曲의 그것과 같았고, 심연의 장막 밖에서 비트적거리는 무분별한 말들이었다. 날카로운 파토스 위에서 위태위태하며 분출되는 메타포들은 사유의 침식과, 퇴적을 거쳐 다시 융기를 향해 떠오르는 기암괴석이나 다름없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차라투스트라가 지극한 행복의 섬에서 사라지자 군중은 그가 악마에게 잡혀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 중 어떤 이는 <오히려 차라투스트라가 악마를 잡아갔을걸>이라며 웃어넘긴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러고도 남았을 위인이다(악마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입을 다물라. 너 위선적인 개야! 그대와 같은 종류를 그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p.223)>라며 자기부정과 극복을 꾀한다 ㅡ <홀가분한 죽음에 대하여>라는 장은 그래서 괴팍하고도 진실된 웃음이 난다. 때로는 엉켜버리고, 그래서 인간은 다리를 절고 목을 삐끗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텍스트는, 그게 무엇이든 순식간에 부정되기 일쑤다. 그리고 다시 자기극복을 한다(정말 끝도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신이다. 그러나 나는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죽었다.> 이건 간략한 비유에 불과하지만 책을 여는 순간부터 쏟아지는 온갖 암시와 느낌표(!)들은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의 말을 빌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때로 니체를 허무주의자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절대 허무주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함>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도덕(흔히 기독교적인)과 선과 악의 관념들이 아니라 <힘에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에게 묻는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조차 자의적인 <힘에의 의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지시로 인해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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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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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놈이 제 눈앞에서 아내를 빼앗아 가는데도,
그리고 절 배신한 놈이 제 귀싸대기를 때리는데도,
전 남의 일처럼 태연하게 보고만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놈을 죽일 때도 제가 냉정하게 지켜보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닙니까?

ㅡ본문 p.132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의 <감정이입설>에 비유하자면, 주인공 에르도사인의 감정은 범죄에 매료되고 돈에 매료된다. 모든 것은 허무와 거짓말로 귀결되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은 환상이다. 에르도사인은 마치 존경과 멸시를 함께 받는 종교인과도 같다 ㅡ 리얼리즘 혹은 판타지 ㅡ <내 바깥에, 내 육체의 경계를 벗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p.120)).> 범죄와 비극을 바라는 그는 점성술사의 <목 매단 인형>으로 대치되며 혼란 속에서 그 혼란을 스스로에게 가중시킨다 ㅡ 에르도사인이 발명가로 설명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즉, 허구에서 현실을 보고, 현실에서 허구를 본다. 악다구니로 살아가며 돈에 목숨을 걸고, <돈을 짝사랑>하는 거다(짝사랑이라는 게 중요하다). 오직 1㎠ 안에서, 딱 그 1㎠의 존재로서만. 에르도사인(우리)에겐 (유토피아와 같은)허구가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유토피아와 같은)현실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그는 (머리를 싸매고) 범죄(비극)를 꿈꾸는가. 자신의 모순된 허구를 모순된 현실에 덧붙여 꿰매려는 그(들)의 정신세계는 얼핏 불합리하게 보인다 ㅡ 위에서 말한 <리얼리즘 혹은 판타지.> 모순으로써 모순을 극복한다, 즉 거짓말로써 거짓말을 극복한다는 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시종일관 우울함을 가장한 『7인의 미치광이』는 그래서 더욱 우울하면서도 우습다. 결국 등장인물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허구를 만든게 아니라, <허구를 창조함으로써 현실을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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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 아름답게 만들기 - 화장보다 아름다운, 성형보다 놀라운 뷰티혁명 내몸 시리즈 4
마이클 로이젠.메멧 오즈 지음, 유태우 옮김 / 김영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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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커피를 마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잔다는 말이 정말 맞기나 한 건가?(나는 잠이 모자라 죽을 지경이다) 또 나는 새벽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자는데, 자리에 눕기만 하면 바로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땐 항상 피곤에 절어 있다. 아무래도 이 책 6장 <에너지 재충전하기>에서 말하는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이 증상은 의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며 이러한 에너지 수준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없단다 ㅡ 말도 안 돼. 당신들은 피 한 방울로도 온갖 질병들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는 훌륭한 인간이잖아. 어떤 의사들은 이것이 병이 아니라 신경성 또는 노이로제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내몸 아름답게 만들기』에 따르면, 나는 에너지는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남는 에너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읽다 보니 이런 사람인 나에게 해주는 충고가 있다. <더 많이 움직이고 녹차를 마실 것>, 이거다. 더 많이 움직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 선순환을 시작하는 것, 그래서 혈관을 확장시켜 더 많은 영양소가 공급된다는 거다 ㅡ 나는 쉽게 군대에서의 병장 생활을 떠올렸다. 할 일이 없어(!) 운동을 하고 몸을 움직였던 그 때를. 그리고 녹차? 녹차엔 비타민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내는 폴리페놀(이름이 어렵지만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은)이란 성분 ㅡ 바로 쓴맛을 내는 이 성분이 40퍼센트에 가깝게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나에게 효과가 있을 방법들을 주시한다(또한 나로 하여금 큰 관심을 끌게 한 주제는 치아에 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보험 적용이 안 되며, 만약 혜택을 받고 싶다면 해당 보험에 별도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지전능하며 파워풀한 치아 역시 갖고 싶다!).

 

그런데 9장 <일과 돈 문제 해결하기>에 다다르자 나는 갑작스레, 이 책이 자기계발에 관한 거였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돈 문제는 각 개인이 경험하는 주요 스트레스 중 거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p.321)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은 제목처럼 <아름다움>에 관한 책이었다. 여기서 말하려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관한 것이기 때문 ㅡ <백만 달러짜리 미소>와 같은 문장으로 아름다움과 돈을 엮어 넣을 수도 있다! 게다가 돈에 관한 스트레스라면 자신의 연봉이나 충동구매를 예로 들 수도 있다(하지만 정작 내게 조금이라도 더 중요한 건 잠에 대한 투쟁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과거 『내몸 사용설명서』란 책은 근본적으로 우리 몸을 생물학적으로 다뤘다. 『내몸 아름답게 만들기』는? 좀 더 넓고 재미있으며 정신적인 것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 책 프롤로그에서 <외적인 아름다움을 내적인 아름다움과 연결시키지 말라. 그 둘은 으깬 감자와 메이플 시럽만큼이나 각기 다르다>고 말한 것을 보면 쉬이 긍정할 수 있다.

 

하다못해 이 책은 몸의 작은 부분인 손톱까지도 언급함으로써 더욱 친숙한 의학서에 다가가고 있다(페이지마다 실린 <토막상식>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움이란 단어에 대한 선입관 ㅡ 선입관이란 말 자체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고정관념의 뜻에 더 가깝다 ㅡ 은 참 무서운 관념의 산물이다.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그런데 사실 외적인 미는 내 몸의 건강을 표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말이다. 나는 책 겉표지에 인쇄된 <뷰티>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핑크빛 디자인마저도) 이젠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그 단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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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 - 당신은 무엇을, 왜 먹고 있는가?
크리스토퍼 그린슬레이트 & 케리 레너드 지음, 김난령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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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왜 하루에 1달러로 먹고 살려는 시도를 하는 건가. 무한도전으로 시작해서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젠장. 달러를 한화로 계산하든 말든 난 1달러로는 하루를 (먹고) 살 수 없다. 식욕은 본능이니까. 그것도 원초적이고 말초적인. 나는 <1달러로 먹고 살기>를 실천하는 도중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버거킹에 가 무료로 주는 시럽 두 봉지를 얻고서 <마이 프레셔스!>를 외치는 골룸이 되고 싶지는 않다(p.54). 이 책의 저자 중 남편인 크리스토퍼처럼 한 달 동안 했던 <악마의 프로젝트> ㅡ 나는 이렇게 부르려 한다 ㅡ 를 끝내고 난 후유증(!)으로, 처가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식사 때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에 놀라 <물, 물이면 족해>라며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싫다(p.125). 1달러 프로젝트는 분명 영양 상태와 체력 그리고 에너지에 관해서도 충분치 않은 계획이다. 저자는 이 계획을 실천하기 전 식료품을 구입하는 비용에 대해 생각했고,  나아가 그 생각은 저소득층 가정들에게까지 미쳤다. 그리고 대학 시절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거기서 저소득층을 위한 식량보조 프로그램인 <푸드스탬프food stamps>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적 한계를 느낀 거다. 그리고 이런 탁상공론에 염증을 느끼고 여러가지 탐구를 하게 된다. 물론 그 실천은 위에서 말한 <악마의 프로젝트>로 귀결되지만. 그리고 우리(나)는 여기 『하루 1달러로 먹고 살기』에서 중요하고도 단순명쾌한 결과를 얻는다. 쉽게 먹는 것은(이를테면 인스턴트 식품) 말 그대로 간단한 일이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건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는 걸 ㅡ 진부한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더해 <건강하게 먹으려 노력하면 식비는 자연스레 절약된다>고 한다(p.266). 물론 현대의 편리성과 이기성에 맞서 최소한의 노력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결국 이 책은 뻔한 소리만 늘어놓게 될 운명에 처하지만 빠뜨리지 않아야 할 한 가지는, 저자가 실제로 이 1달러 프로젝트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의 탁상공론보다는 보다 현실감 있고 지혜로운 <먹고 살기>를 피력한다. 『하루 1달러로 먹고 살기』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저자의 실험이 아니라 그것에서 파생된 실제 현실과의 고민이다. 과거 TV 프로그램 <만 원의 행복>이란 타이틀에 왜 <행복>이 함께 있는가는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해준다 ㅡ 실제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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