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상자를 뒤집어쓰고 세상을 엿보는 상자인간. 이들이 세상을 열외시킨 건지 세상이 이들을 열외시킨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불특정의 피사체를 엿보거나 자신이 피사체가 되거나 ㅡ 옮긴이가 말하듯 <D의 경우>라는 장에서의 보여지기만 하고 볼 수 없는 폭력성(게다가 피사체는 발기되기까지 한다)은 현대의 그것을 소묘한 것이다. 상자인간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제 몸에 맞는 상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끝없이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얻어지는 지식과 지혜를 얻는 방법이다. 그래서 <상자>라는 것은 ㅡ 각각의 에피소드를 한데 모은 결과로서 ㅡ 결국, 영화 《파란 대문》에서처럼, ①억압을 의미하는 <새장 여인숙>의 이미지와 ②자유와 해방을 뜻하는 <파란 대문>의 이중성의 산물과 같다고 본다. 상자인간은 언뜻 약자로 보이지만 그것은 소위 '어떻게 하다 보니' 약자로 그려지는 거다 ㅡ 나는 약자로는 보지 않지만. 상자를 이용해 안과 밖을 차단하고(또 연결하기도 한다), 단절과 공존의 공간을 만들며 세상으로부터의 뱉어짐을 스스로 추구하는 것은, 외려 거꾸로 상자 속에서 세상을 밖으로 뱉어 밀어내는, 그러한 원망願望에서 기인할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