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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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측한 악마에게 들씌워져 어딘가에서 지시를 받듯 그런 상태가 된 시대.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지, 신은 정말 죽은 것인지(이전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면), 왜 항상 왕원쉬안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인지, 과연 왕원쉬안과 수성과 어머니는 과연 선善한지, 악惡한지, 해는 어째서 밤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지(곤두박질치는지), 그리고 왕원쉬안은 왜 수성과 헤어졌으며 왜 회사에서 해고되었는지, 또한 끝에 수성(왕원쉬안)은 이미 없는데 왕원쉬안(수성)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낯선 인간들, 낯선 거리, 낯선 감각, 낯선 승전보 ㅡ 심지어 냄새까지도 낯설다. 그러나 결국 인물들은 시시각각 첨벙대는 속물이다. 그들은 그런 속물인 채로, 지금,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ㅡ 아니, 이상한 방에 갇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차가운 밤』의 이미지는 서늘하다, 지독하다, 허물어지다…… 와 같은 단어들과 꼭 맞다. 인물들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며, 서로를 구원하지 못 한다(그런 의미에서 해방 전후 한국문학의 그것과 닮아 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그들의 승리지, 우리의 승리가 아니며(p.316)> 그 속에서 왕원쉬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로 갈까?>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진다. 왕원쉬안, 수성, 어머니, 이렇게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끌어가는 이야기는, 그들을 세상의 오염과 자신들의 오염을 분별할 능력이 없는 이들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외양상으로는 일단 허무함의 길을 걷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갖가지 변주들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들의 방>은 봉건적이며 존재감도 희미하다. 그곳은 빈곤하며 끝없는 위협이 들이닥치는 곳이다. 수성을 제외한 어머니와 왕원쉬안은 끝내 거처인 방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구시대의 산물이며 주체성이 결여된 인물들이란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다. 특히 왕원쉬안의 차가운 생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었고, 그는 이 소설이 지속되는 동안 그곳을 떠날 것인지를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는다. 오직 수성만이 세속적 서사를 지닌 인물로 부각된다. 방은 왕원쉬안과 수성의 물리적이며 심리적인 거리를 고착시키며, 그래서 <방 안>과 <방 바깥>은 전혀 다른 세계이며 결코 만날 수 없다. 결국 그 방에서 왕원쉬안은 죽음을 맞이하고, 어머니는 아들이 죽어서야 방을 떠나며, 수성은 다시 그 곳으로 돌아온다. 세 인물이 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차가운 밤』의 서사 안에서 그런 운명을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여기엔 다른 공간이 더 등장하는데 술집, 카페, 회사, 은행이다. 어쩌면 방을 제외한 다른 공간들은 시대가 조작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방이 주관적 세계라면 그 외의 공간은 더욱 주관적으로 보인다. 왕원쉬안은 방을 벗어나서야 인간의 동작을 회복하지만 그의 생과 죽음은 방에서만 이루어진다. 만약 왕원쉬안이 죽지 않았다면 『차가운 밤』은 어떤 작품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은 쓸모없는 것이지만 나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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