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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평점 :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 일단 개막식을 볼까나. 1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에, 전혀 트집 잡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하면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좌석과 좌석 사이가 비좁아서일까? 그래서 되도록 화장실에 가지 않도록 볼일도 미리 보고 맥주도 참는다고 했다. 나 역시도 여러 해 전 스이도바시의 도쿄돔에서 자이언츠와 호크스의 경기를 볼 때 그랬다. 좌석 옆 통로마다 맥주를 파는 분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바람에 계속해서 맥주를 들이키긴 했지만 그때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경기 후반에 들어서는 아예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었다. 하루키는 곳곳에 화장실이 많다는 이유로 맥주 마시기 좋은 브리즈번의 경기장도 소개해주고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별로 구미가 당기질 않는다.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벌게지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도쿄돔에서는 왜 그렇게 술을 마셨던 것일까. 아마도 담배를 피우기가 어려워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든 뭐든,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 관전하는 경우가 없었다. 다시 개막식 부분으로. 하루키는 개막식 이벤트를 보며 '스티븐 스필버그가 디즈니랜드의 의뢰를 받아 연출한 바그너의 악극 같았다'고 평한다. 돈을 많이 들여 장대하고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시간이 너무 길고 기본적으로 지루했다고. 그만한 시간과 노력과 지혜가 이런 식으로 낭비됐구나, 하고 여겼던 거다. 그거야 뭐,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으나 일견 공감은 간다. 2시간이나 경기장에 선 채로 있어 다소 지쳐 보이는 선수들을 목격한다면 말이다. 그런가하면 일본과 미국의 야구를 보러 간 경기장 그렇게나 귀엽다면서 호들갑을 떤다. 이런. 매일이라도 가고 싶은 구장이라니. 당신은 담배를 끊었으니 별 상관없겠지만 말이지, 나 같은 사람들에겐……. 하여간 경기장에 관한 이야기는 또 있다. 바로 육상 트랙. 어수선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당연하다. 올림픽이나 선수권대회 같은 걸 슬쩍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필드에서는 이런 경기가, 트랙에서는 저런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집에서 편히 누워 보는 텔레비전 중계가 아니니 이를 깔끔하게 전달해 줄 중계나 해설 따위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올림픽 상업주의, 광고를 접하는 것만큼은 다를는지도 모른다. 현장에 있으면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광고판을 목도하게 될 테니. 특히 경쟁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코카콜라를 보면 실소가 나온다. 코카콜라가 경기장의 소프트 음료를 도맡고 있어 시드니 거리 전체에서 펩시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거다. 코카콜라에 잠식된 올림픽이라는 건가. 그걸 비웃으려는 듯이 일부 관람객들이 몰래 펩시를 경기장으로 반입했다는데, 이에 화가 난 코카콜라가 펩시를 들고 입장하려는 사람을 저지하라며 올림픽 위원회에 항의까지 했단다. 이것과 관련해 상술이란 맥락에서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생각난다. 책에도 나오듯 택시를 탄 하루키가 라디오 토크쇼에서 들은 내용이다. 「축구에서 스물셋 이하 제한은 대체 뭡니까 (...) 왜 축구에만 그런 조건이 있는 건지.」 「제일 열 받는 건 심사위원이 있는 스포츠더라고요 (...) 판정 기준도 불명확하고, 아무도 납득하지 않잖아요.」 옳소, 옳소. 그의 말대로 축구는 U20, U17, 올림픽대표, 국가대표 등으로 나뉜다. 권투만 하더라도 어떤가. 라이트플라이, 플라이, 밴텀, 페더, 주니어페더, 라이트, 웰터, 주니어라이트, 주니어웰터, 미들, 슈퍼미들, 헤비…… 젠장, 그만합시다. 이렇게 매일같이 올림픽 경기장에 다니는 무라카미 씨. 마지막으로 그가 가방에 넣고 다니는 필수품 목록을 적어놓은 부분을 보자. 선글라스와 안경, 자외선 차단 크림, 녹음기, 생수, 랩톱, 휴대전화, 철도시각표와 공식 가이드북, 미디어패스, 필기도구 등등. 나는 여기에 가스가 가득 찬 라이터와 담배도 추가하리라. 개폐가 확실한 휴대용 재떨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