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불감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얼굴을 빼쏜 악은 어떤 악마인가. 그것은 자먀찐, 불가코프, 오웰 등의 악마처럼 주소와 본부와 집행부를 가진 악마가 아니며 신도들을 소집해 기도문을 낭독할 신전을 가진 악마도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DIY, 즉 '우리가 손수 만든' 악마이다.(p.51) 특히 단편적(단속적) 텍스트, 이미지, 영상들로 넘치는 오늘날,ㅡ바우만이 인용한 표현을 써 보자. 「만약 에밀 졸라가 오늘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서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의견을 말해야 한다면 그에게는 '나는 고발한다'라고 고함칠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ㅡ(익명성의 침식과 더불어)데카르트의 경구는 '나는 관찰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나는 더 많이 존재한다'로 대체, 발전된다. 더욱이 DIY 세계는 누구도 통제에 집착하지 않고 통제를 원치도 않으며 통제할 수도 없는 상태ㅡ우리에겐 도살장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기술은 정치를 앞질렀다. 당신은 정보통신 기술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아니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 당신은 온라인으로 있을 수 있다. 고로 당신은 온라인으로 있어야만 한다. 만약 당신이 오프라인으로 있으면, 당신은 현실에 참여하기를 멈추는 것이다.」(p.95)ㅡ최고 입찰자에게 서비스를 파는, 소통 매체의 몰수가 게임을 움직이는 통제로의 길을 제시한다. 시장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채 무자비한 시청률 전쟁에 빠져있는 대중 매체는 여론의 형성과 유포, 수용 및 보유를 분리하는 공간 안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매체들을 통해 하루도 빠짐없이 우스꽝스런 정치 광대들을 보고 있다. 오늘날의 악, 공포, 불안ㅡ바우만은 이런 공포와 근대(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여전히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현대'와 같은 단어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는, 최신 수술 장비를 가지고 아무리 능숙하게 분리 수술이 이루어진다 해도 두 형제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샴쌍둥이처럼 보인다고 말하는데, 인간의 불확실성과 취약성이 모든 정치권력의 기초라는 말은 사실인 것만 같다. 오늘 권위를 창출하는 것은 여론조사, 설문지, 전화 설문조사, 집요하게 따지는 시청률 등으로, 우리의 사생활은 희소성을 띤 상품 중 하나가 되어 자기폭로를 통해ㅡ다소나마 불안감을 희석시키며ㅡ기쁨을 만끽하기도 한다. 「악은 독재자가 아니라 익명의 가면을 쓰고 있다.」 시장이라는 이름의 익명, 국가라는 이름의 매체라는 이름의, 정치라는 이름의 익명(「자신은 알려지지도 보이지도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을 알려고 하는 것은 인간적 공감을 파괴한다.」 하기야 '익명(匿名)'도 하나의 이름이기는 하다). 얼핏 구속력이 없어 보이는 그것들은 우리의 피부에 사뿐히 앉아 스멀스멀 공포(악)를 몰고 온다. 자먀찐은 전체주의의 등장을 예언했고, 불가코프는 사탄이 반(反) 인간적 근대의 탈을 쓰고 이 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예견했으며, 오웰은 조만간 전체주의가 문학과 철학의 위대한 고전들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우리의 언어와 감수성 지대를 파괴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금 우리 문화에서 평등과 인권에 대한 관심 및 그것을 위한 투쟁은 무관심, 자기 자신과 타인들의 소비, 얼굴과 눈을 외면하기, 안전한 고립 등을 감추는 가면으로 사용된다ㅡ현재 문화와 통제의 본질은 욕망을 자극하고 최대한 흥분시킨 다음에 극단적인 형태의 재갈을 물리는 것이고, 이것은 악마가 당근과 채찍을 바꿔가면서 근대사회를 다루는 방법이다.(p.342) 책 서문에서 보이듯 이제는 '공동체'나 '친교 집단'이라는 관념과 단어는 '네트워크'로 변모했다.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은유는 (너무나도 유동적인 세계에서)우리가 맞닥뜨리는 유일한 재난인 걸까? 그러므로 에티엔 드 라 보에시가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자발적 복종'이 아니라 'DIY 복종'이라 말하고 싶을 거라는 불편한 씁쓸함은 우리의 허약함을 적나라하게 설명해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