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상식이다 - 아는 만큼 맛있는 뜻밖의 음식 문화사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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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일본어로 다쿠앙(たくあん)이다. 겨우내 먹을 것이 없던 저 옛날 다쿠앙이란 스님이 짠지의 일종으로 만든 것으로, 당시 절 근처를 지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스님의 이름을 그대로 따 '다쿠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사찰이라는 장소도 장소이거니와 계절, 또 음식을 오랜 시간 보관해야 하는 애로로 인해 만들어졌을 터다. 책에는 비슷한 맥락으로 낫토(納豆)와 청국장이 등장한다. 낫토의 유래에 관한 설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단무지와 매한가지로 절과 관련이 있다. 옛날 일본에서는 절에서 사용되는 각종 물품을 만들어 관리하는 납소(納所)가 있었다는데, 이 납소에서 콩 발효 식품을 관리했기 때문에 납두(納豆)라는 이름이 생겨 바로 여기서 낫토가 유래되었다는 거다(p.254)ㅡ또 다른 하나는 사무라이의 전쟁과 관련이 있다(말에게 먹일 콩을 삶다가 적의 공격을 받자 콩을 버리기가 아까워 섶에 콩을 담고서 그대로 도망했는데, 나중에 열어보니 지푸라기에 들러붙은 곰팡이 때문에 콩이 발효됐단다). 『음식이 상식이다』의 책날개에는 '먹는 얘기는 언제나 즐거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것뿐 아니라 그 음식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는 더 흥미롭고 즐거이 느껴진다. 얼마 전 한국의 라면 소비량이 세계 1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이 76개라는 것. 라면? 당연히 이 책에서도 다룬다. 지금 우리가 먹는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는 50년대 후반 일본의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최초 개발자는 안도가 분명하나 라면 자체의 기원에 대해서만큼은 다종다양한 해석이 있다ㅡ심지어 '라멘'이라는 말의 어원까지도) 밀가루로 식품을 개발하던 중 포장마차에서 어묵에 밀가루를 발라 튀기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당시엔 면 자체에 양념을 한 것이었는데 지금과 같이 분말 수프가 따로 나오게 된 건 그로부터 3년 후라고(한국에서는 1963년 삼양식품에서 처음 생산했다는데,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학교에 바투 붙은 삼양라면 공장 굴뚝에서 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글을 읽다 곰곰 생각해보니, 라면을 처음 접하기 시작해서부터 지금껏 얼마나 많은 양을 먹어 왔는지는 도저히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어젯밤에도 요깃거리로 컵라면 하나를 뚝딱 해치웠으니!).




무심코 베어 먹는 사과 한 쪽. 겉보기에는 단순한 사과지만, 역사와 연결해보면 철학적, 정치적, 과학적, 미학적으로 다양한 뜻이 숨어 있다. 뉴턴의 사과 (...) 이브의 사과 (...) 세잔이 그린 사과 정물 (...) 머리 위에 올려놓고 화살로 쏜 윌리엄 텔 (...)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 음식을 먹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속에는 그보다 더 다채로운 이야기와 역사가 숨어 있다.


ㅡ 본문





그런데 어디 라면만 그럴까. 개인적으로 특히 면 요리를 좋아해서 어딜 가든지 즐겨 먹는데, 한때 일본에 장기간 체류했을 적에 덴푸라우동을 수차례 먹었던 적이 있다. 이 덴푸라(天婦羅)ㅡ튀김, 역시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온다. 그가 처음으로 생선(도미) 튀김을 먹어보곤 맛에 매력을 느껴 기름진 음식을 과식해 복통을 일으켰다는 덴푸라(일시적으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결국 석 달 후 사망했다). 당시 튀김 요리에 쓰는 값비싼 참기름 탓에 극소수의 상류층만 즐겼다고 하는데, 16세기 일본에 들어온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전파했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더군다나 덴푸라라는 말의 어원 또한 라틴어로, 튀김과 전혀 무관한 '사계절'이라는 의미라고 한다.(p.388) 가톨릭에는 사계절이 시작될 때 고기 대신 생선을 먹는 사계재일(四季齋日)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바로 그 사계재일, '콰투오르 템포라(Quatuor Tempora)'에서 '템포라'가 '덴푸라'로……. 거 참, 늘 옆에 두고 먹는 소소한 음식 하나하나에도 별의별 역사와 이야기가 존재하는 걸 보면,ㅡ이 『음식이 상식이다』 개정판 첫머리에 적힌 것처럼 책은 소위 '맛집 정보'를 다루지는 않는다ㅡ무엇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분위기에서 먹었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역사와 문화가 섞인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실들, 음식 잡학 사전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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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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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탱이 토악질을 하건 말건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거다. 그들 스스로가 참을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말이다. 나도 한때 조울증 비스름한 뭔가를 겪어본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아니면 순전히 내 착각에 의한 것이었을 수도). 내가 조울증을 앓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당시 들었기 까닭인데, 정말로 나 자신이 양극성 기분 장애를 앓고 있었다면 그런 자각은 불가능했을 것만 같다. 여하튼 세계가 날로 달라지는 만큼 새로운 질병이나 장애도 매일매일 생겨난다. 육체적이든 비육체적이든 간에(불과 30년 전만 해도 불안이라는 병명은 존재하지 않았단다). 불안을 다루는 이 책에는 아주 간단하고 실생활에 밀접한 사례가 있다. 두려움이 설사를 일으킨다(두려운 감정이 배 속의 열을 높이므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어마어마한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나도 모르게 배탈이 난 것마냥 아파올 때가 있는데 아마도 그런 상황을 설명한 듯하다. 뭔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리라. 책은 물론 이보다 훨씬 심각해 보이는 사례들로 채워져 있는데, 어쩐지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문장 사이에 '불안과 함께'라는 말이 삽입되지 않으면 안 될는지도 모르겠다. 건강, 돈, 일, 죽음, 부상, 성격 등등 셀 수도 없이 불안과 공포증을 유발하는 걱정들이 우리로 하여금 전전긍긍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 일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는 하나 어디 그게 쉬 극복되랴(인간은 상상력 때문에 비겁해진다더니!). 애초 불안은 우리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발생할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구태여 불안감을 자초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일이라면 굳이 그 일에 이런저런 상상을 덧붙여 공포스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내 생각에 따라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일이 바뀔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심지어 아직 오지도 않은 두려움 때문에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뭐든지 적당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특히 아직 닥쳐오지 않은 일로 인한) 불안에 대한 것만큼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실제로 책을 다 읽고도 불안증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쏭달쏭하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상당히 유효할 것이다. 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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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니킬 서발 지음, 김승진 옮김 / 이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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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다룬 스터즈 터클의 인터뷰집 『일』ㅡ얄궂은 부제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이다ㅡ에서 어느 회계사는 말한다. 「'내 일은 과연 중요한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 저는 오염에 맞서 싸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사회에 중요한가는…… 아니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에 바탕을 두고 있는 지금 같은 경제에서는 필요하겠죠 (...) 말씀드릴 게 별로 없습니다.」 아아, 큐비클 밀림을 헤치며 사무적인 일에 몰두하는 사무원들이여. 라이트 밀스(그는 화이트칼라 계급을 '쾌활한 로봇'이라 불렀고, 업튼 싱클레어가 화이트칼라란 말을 만들어냈을 땐 하찮은 서류 작업이나 필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가난하고 더러운 공장 노동자와 달리 지배 계층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한 것이었다; p.109)와 서발이 모두 인정하는 화이트칼라 일터의 사회적 특성이란 대체 뭔가. 그들에 의하면 사무실은 과장된 악수와 공허한 친교의 공간이자 정신을 무디게 하는 지루한 작업과 개인의 고립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런가하면 싱클레어 루이스에게 오늘날의 영웅은 늑대가 울부짖는 숲이 아닌 타일 깔린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돌아다니며, 사무실의 책상 사이 통로는 전쟁터의 참호나 노르망디 전선에서만큼이나 끊임없이 은밀한 로맨스의 화살들이 날아다니는 공간이다.(p.104) 더욱이 서발이 묘사했듯 이렇게나 지위에 대해 의식하는 직업도, 이렇게나 지위에 대한 걱정으로 동기 부여가 되는 직업도, 그러면서 또 이렇게나 지위 상승에 대해 확신하는 직업도 없었다는 것ㅡ노동자들의 배제된 숙련과 그들의 작업을 관리자의 밑에 두어 노동 과정을 통제한다는 테일러주의의 핵심과 맞물린 모양새를 보라. 사무원들은 언제나 변화 파악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존재인가? 철골에 의해 건물이 만들어지고, 엘리베이터 덕에 고층빌딩을 편히 오르내릴 수 있게 되고, 타자기가 사무실에 들어왔으며, 마침내 전화기가 만들어짐으로써 칸막이 사무실과 사무원들이 늘어난 것인가? 비즈니스가 분업화됨에 따라 육체노동과 비육체노동이 분리되고 그들 사이의 소득 격차가 생겨난 것인가? 바틀비 시대의 사무실이 잘게 썰어져 테일러주의가 촉진된 것인가?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사무직 노동은 대다수 미국인이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부합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사무원은 땅에서 일하지도 않았고, 기찻길을 놓지도 않았으며,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지도 않았고, 연못 근처에 은거해 내면을 수양하며 콩을 키우면서 살지도 않았다. 농사나 공장 일과 달리 사무직 일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재생산을 할 뿐인 듯했다.

ㅡ p.26




테일러에서 엔지니어 남편을 둔 심리학자 릴리언 길브레스를 거쳐 인사 관리,ㅡ과학적 경영의 가장 오래가는 성취가 되었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ㅡ즉 '인적 자원 관리'라는 이름으로 사무실 업무(정확하게는 관리자의 업무)는 진행된다. 군대식으로 사열한 책상, (테일러와 거의 함께 나오는 이름)레핑웰이 제안한 공장 조립라인 방식의 사무실 배치. 아름답고 우아란 세렌디피티적 만남이 가능하기는 한가? 심지어 기업의 통제가 직장의 범위를 넘어 가정에까지, 그러니까 직원이 에너지를 온전히 회사 일에 쏟을 수 있도록 아내들이 호의적이고 건설적인 태도를 갖도록 계획해야 한다는 한 임원의 말이 이토록 악랄하게만 들리는 마당에 말이다. (그리고 사무원의 '아내들'이기도 하지만 '화이트칼라 걸' 혹은 '타이핑 걸'이라 불리며 사무실을 꿰차기 시작한 여성들ㅡ상사의 장식품으로 '마감재' 역할을 했다고 할 정도로 낮은 직위는 여성들 몫이었고ㅡ타자수, 속기사, 서류 정리원, 교환수, 비서ㅡ특히 속기사나 타자수의 일이 지루하다는 점에서 여성의 일로 여겨졌다면 비서의 일은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일로 여겨졌다; p.107) 꽉 막힌 공간에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바틀비와 임금 인상을 위해 쉼 없이 거대한 건물을 배회했던 대기업 사원(조르주 페렉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 (여기에 액션 오피스(물론 그 전에 슈넬레 형제의 뷔로란트샤프트도 있었더랬다!)로 유명한 프롭스트의 다소 길고 유용한 문장을 옮겨본다. 「분명히 동굴 인간은 좋은 동굴을 발견해서 몹시 기뻤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동굴 입구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등 뒤를 보호하면서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좋은 생존 법칙이다. 사무실 생활에서도 이는 매우 좋은 생존 법칙이다.」) 그리고 빌어먹을 큐비클. 한 사람씩 들어갈 수 있도록 칸막이가 된 작은 사무 공간. 사무직 노동자가 헝겊 씌운 허술한 칸막이 안에서 반쯤은 밖에서 보이는 채로 앉아서 잘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공간. '창문 없는', '삭막한', '사육장', '불펜', '아수라장' 같은 단어와 함께 쓰이는 큐비클ㅡ큐비클 농장.(p.323) 큐비클은 사람들을 빽빽이ㅡ'빽빽이'라는 부사마저도 얼마나 빽빽하게 느껴지는지!ㅡ모여 있게 해서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분열시켜서 함께 일하고 있다는 느낌도 주지 못했다.(p.331) 화이트칼라나 샐러리맨, 직장인 문화와 같은 다소 모호하고 기품 있어 뵈는 단어의 특징은 우리로 하여금 큐비클에 한번쯤은 앉아보고 싶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밀스의 말처럼 화이트칼라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인 게 맞나? 그들은 거대 기업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자신이 독립적이고 기업가 정신이 넘친다고 믿는 자발적인 종속자들인가? 노동자 정신, 공장에서와 같은 반복 작업, 덫에 걸린 조직인, 우울하게만 보이는 사무실의 그림들ㅡ애초 사무실은 지루함의 상징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냄새가 나는 공간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럼 루소의 경구를 본떠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해보자.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큐비클에 갇혀 있구나.」(p.12,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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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심리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페이스북 심리학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수재나 E. 플로레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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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 미디어는 허상에 불과하다. 얼마 전 SNS에 올라온 모델 에세나 오닐의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기, 특히 온라인에서의 허황된 숫자 놀음에 대해―(‘싫어요’ 버튼은 없는) ‘좋아요’의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그것으로 자신을 정의하게 됐다고―토로하며, 덧붙여 과도한 화장, 비키니 사진, 긴 금발이 아닌 개성과 사랑, 동물 학대, 환경오염, 성 평등, 인종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영원한 명작으로 남을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변호사 로버트의 아내 칼라의 대사; 「누가 모니터의 모니터를 모니터링하는 거야?」―부터 프랭크 에이헌의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나와 동료들은 알래스카, 파리, 독일, 벨리즈에 숨은 사람이라면 언제고 찾아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끝내주는 새 인생을 시작한 잠적한 이의 사진을 친구와 친척들이 굳이 페이스북에 올렸기 때문이었다―까지. 에세나 오닐과 앞서 언급한 영화와 책은 모두 흔적 또는 거짓된 흔적 따위에 대해 말한다. 『페이스북 심리학』도 매한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많은 대중이 자신의 작품을 해석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예술가라는 말은 더 이상 오늘엔 통용되지 않는 것만 같다―내가 어떤 자동차를 타는지, 어떤 시계를 차는지, 어떤 음식을 어디에서 먹는지, 어떤 섹스 형태를 즐기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영화를 봤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다소 위험성이 따르더라도) 줄기차게 남들로 하여금 알 수 있도록 내 삶을 실시간 업데이트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

그러니 당신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다.


―p.241




책은 짐짓 모른 체하기도 하면서 페이스북의 일장일단을 말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좋아요’의 개수가 얼마나 유의미하거나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수재나 플로레스는 책에 이런 말을 적었다. 「페이스북 포스팅은 단순히 자신의 하루를 보여주고 업데이트하는 것일 수 있다 (...) 하지만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면만을 올리고 나쁜 면은 숨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p.43) 우리가 현실에서도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일 테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내 흠결을 감추는 작업이 더 용이하게 이루어진다. (심지어 나는 내 삶을 편집까지 할 수 있다!) 현실에서조차 피곤하고 초조하게 살고 있는데 노트북을 열어서까지 내가 나 자신을 닦달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그러므로 이런저런 측면에서 에세나 오닐의 고백은 SNS의 폐해를 까발린 용기 있는 행동이라거나 혹은 노골적인(그리고 기발한) 노이즈 마케팅이란 반응을 얻을 수 있다―실제로 후자의 말을 한 사람도 있었다). 나를 표현하든지, 편집하든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 것인지 사는 대로 생각할 것인지. (그리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이 읽은 책의 감상을 들춰보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이라는 기계를 통해서. 동시에 거리를 걸으며 망가진 보도블록이 내는 삐걱대는 소리나 사람들의 웅성대는 음성 같은 것을 듣고 싶은데 나 스스로가 귀를 막고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걸 깨닫기라도 하면 일순 놀라기도 한다). 저녁식사 때 친구들과 휴대전화를 바구니 안에 넣어놓은 채 먹자고 제안해야 하는 오늘이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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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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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문구 클럽의 창설자가 전하는 문구사(史). 문구 클럽이란 것도, 문구사라는 용어도 낯설다. 제임스 워드(바로 그 요상한 클럽을 만든 작자)는 이 책 마지막 장ㅡ그 많던 볼펜은 다 어디로 갔을까ㅡ을 시작하면서 문구의 역사는 곧 인간 문명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적었다. 돌이켜보건대 휴대전화와 컴퓨터 자판을 다다다다닥 소리가 나게 두들기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 십 년이 조금 넘었을까. 실로 당시 대학 입시를 끝내고 손에 쥔 첫 휴대전화는 딸깍딸깍하는 동작음을 내며 내게 글자를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쓸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웬걸, 컴퓨터와 매한가지로 고장이라도 나는 날에는 머리털을 쥐어 뽑으며 몇 날 며칠을 전전긍긍하게 된 삶 또한 동시에 시작된 날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더불어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과 데이비드 리스의 『연필 깎기의 정석』을 지나 이제 제임스 워드의 『문구의 모험』인데, 심지어 그는 영국의 시트콤 <블랙애더>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가져온다. 「부인, 당신 없는 삶은 부러진 연필과도 같습니다. 무의미해요.」(p.148) 이거야 원. 오아시스 없는 사막, 앙꼬(팥소) 없는 찐빵, 김빠진 콜라에까지 비유되는 연필님의 높으신 위상이라니…… 라기보다, 타이틀부터 '문구의 모험'이니 거기에서 연필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쏜가. 연필 없는 문구는 줄 없는 거문고요, 구슬 없는 용이렷다.




문구의 역사는 곧 인간 문명의 역사라도 말해도 그리 심한 과장이 아니다. 부싯돌 조각을 나무 자루에 꽂아 원시적인 창을 만들 때 썼던 역청부터 프리트 스틱의 풀 사이에는 (인더스 계곡에서 출토된 자를 써서) 일직선이 그어질 수 있다. 최초의 동굴 벽화에 쓰인 염료와 볼펜에 쓰이는 잉크 사이에도 직선이 그어진다. 이집트 파피루스에서 A4용지 사이에도, 갈대 펜과 연필 사이에도. 생각하기 위해,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뭔가를 적어두어야 하고 생각을 체계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구가 필요하다.

ㅡp.347




하지만 책에서는 연필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고, 공책, 지우개, 엽서, 테이프, 메모지, 스테이플러 기타 등등 하여간 온갖 것들을 죄다 털어놓으려 시도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400쪽이 채 되지 않는 분량이 아쉽기는 하나, 이마저도 없었다면 몰스킨이란 이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끝에 지우개가 달린 너무나도 유명한 바로 그 연필의 몸통이 왜 노란색이 되었는지, 도대체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여전히 아리송한 스테이플러의 가뿐가뿐한 동작(그리고 철봉같이 생긴 스테이플러용 침이 어떻게 하나씩 분리되어 내 손가락을 찌르는지)에 대해 누가 말해줄 수 있겠는가.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도 잘 쓸 수 있는 펜을 위해 150만 달러를 들여 우주 펜을 개발하거나 vs 같은 문제에 봉착해 그냥 연필을 쓰거나. 이 우스갯소리로 시작되는 '우주 펜'에 관해 읽고 나면 이번엔 우편 봉투와 봉함엽서(봉투 없이 편지지를 그대로 접어 봉하는 방식) 이야기가 쏟아지고, 연필을 쓰는 것 못지않게 깎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고해지면 지우개와 수정액처럼 그 연필의 자취를 흔적 없이 지워버리는 방법이 펼쳐진다. 자, 이쯤 되니 살짝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고작 3백 몇 쪽에 불과한 분량으로 어찌 문구의 모험, 문구의 역사를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하고 좨치듯 몰아붙였던 것이 조금씩 후회되기 시작한다. 비록 내가 책에 등장하는 문구의 수많은 상표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손 치더라도(실제로 모른다), 줄곧 '똑딱이' 모나미 볼펜과 세라믹심을 갈아 끼우는 볼펜, 2B인지 4B인지도 모를 몽당연필 정도만을 사용하고 있는 무지렁이 일반인이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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