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마음의 칼을 벼리게 하는 화가, 고야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올더스 헉슬리는 “고야는 슬픔을 알고, 슬픔의 끝까지 알았던 인간의 거의 완벽한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타고난 독설가로 문명(文名)을 날린 올더스 헉슬리가 저렇게 말하는 화가 고야는 어떤 인물일까? 나는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라는 주제로 구성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내심 미술 분야의 시작을 고야로부터 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고야에 대해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있다. 내가 처음 고야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교과서에 실린 "나체의 마하(마야)"를 통해서였을 테지만, 그에 대해 내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은 89년 무렵의 일이었다. 고야를 좋아하기 전까지 내가 좋아했던 화가는 으젠느 들라크로와였다.

1989년 무렵 나는 천안의 공단에서 살았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온통 절망과 분노로 칠갑을 한 듯 어둠 속에 있었다. 주말에 답답한 마음이라도 가시게 해볼 요량으로 찾은 천안역 인근의 서점에서 우연히 작은 화집들을 발견했는데, 처음 고른 것은 당연히 들라크로와의 화집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손바닥 한쪽만한 판형에 인쇄 수준도 형편없었지만, 문화적인 갈증에 시달렸으나 벌이는 시원찮았던 나에겐 감로수같은 책이었다. 천안에 사는 동안 나는 주말이면 시립도서관을 찾아 여러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가는 골목 담벼락엔 비밀스럽게 "강철통신" 몇 호가 나왔다는 벽보가 붙어 있곤 할 무렵이었다. 돈이 생기는 대로 한 두권씩 화집을 사모았는데 그중 한 권이 "프란치스코 데 고야"의 것이었다.

그의 그림을 본 나의 첫 소감은 아마도 어둡고, 칙칙함이었을 게다. 지금도 나는 그의 회화보다는 판화들을 더 좋아하지만, 판화를 즐겨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간간이 마음의 칼을 꺼내 벼르고 싶을 때만 그의 판화들을 볼 뿐이다.) 그 무렵만 하더라도 고야는 내게 교양의 일부였지, 내 마음속의 화가라는 지위까지 얻지는 못했다. 나는 여전히 들라크로와와 고흐를 더 좋아했다. 그 무렵 판화가 이철수가 옮기고, 과학과사상에 출판된 사카자키 오쯔로오의 "반체제예술"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은 1990년에 나온 것으로 현재는 절판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케테 콜비츠를 화가로서 나의 어머니로, 프란치스코 데 고야를 아버지 격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나이 19살 무렵엔 그렇게 해서라도 어딘가 누군가에게는 크게 기대고 싶었다.

국내에 알려진 정도로 보았을 때, 처음엔 고야가 먼저 알려졌겠으나 의미있는 연구랄까, 책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케테 콜비츠가 먼저였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고야는 잘 알고 있고, 잘 알려져 있다는 의식 때문에 도리어 잘 알기 어렵고,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였다. 다른 의미에선 오히려 곡해받은 화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케테 콜비츠에 대해서는 지난 1980년대 이미 정하은의 "케테 콜비츠와 노신"과 같은 책들로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던 반면, 고야에 대한 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요근자의 일이다. 케테 콜비츠의 경우엔 1980년대 민중미술진영의 선호가 분명히 작용했다고 보아야 할 텐데, 1,2차 세계대전 무렵의 콜비츠에 비해 고야는 나폴레옹 제정 시대의 사람이니 마르크스 원전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먼저 수입되었던 당대의 풍토를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이 책의 저자인 박홍규 선생이 고야에 뒤이어 콜비츠를 다룬 책을 펴낸 것을 굳이 고려에 넣지 않더라도 이 두 사람의 화가는 시대를 초월해 서로 호응하는 측면이 있다.

앞서 나는 20세기의 문화예술을 다루는 사이트를 운영한다고 했는데, 거기에 왜 나폴레옹 시대의 사람인 고야를 넣으려고 했을까. 물론 개인적인 호감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 나 개인적인 미술사란 측면에서 고야는 18세기의 화가가 아니라 20세기의 화가이기때문이다. 다소 주관적인 관점이긴 하지만 실제로 고야에겐 제자가 없었다. 냉정하게 말해 낭만주의 화가들은 고야의 계승자들이 아니었으며, 그들 자신도 고야를 계승한다는 의식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든 고야는 그 시기에 나타나기 어려운 화가가 돌출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나의 관점에 따르면 폴 세잔 역시 그런 측에 들지만, 세잔의 고립은 오래지 않아 계승자들이 출현함으로써 해결되지만, 고야만큼은 거의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찾을 수 있다. 그만큼 고야는 최소한 우리에겐 이해받지 못한 화가였다.

그런 점에선 이 책, 박홍규 선생의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도 비슷한 입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홍규 선생의 이 책은 비전문가가 저술한 고야 평전으로서의 장점과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법학을 전공한 교수가 어째서 고야에 대한 평전을 쓰게 되었을까? 좋은 책, 훌륭한 저자는 "들어가는 말(서문)"에서 독자의 이런 궁금증을 절반쯤은 해결해준다. 그건 이 책의 서문 역시 동일한데, 박홍규 선생 자신이 들어가는 말의 제목을 "왜 고야인가?"로 뽑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고야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거나 책을 내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선수를 빼앗긴 셈이다. 그것은 고야에 대한 나의 관점이 또한 박홍규 선생의 관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이렇게 생각하면 후학으로서 억울해지기 시작한다). 박홍규 선생은 이탈리아의 미술사가 벤투리의 말로 서두를 시작한다.

"고대 시가 호머에서 출발하듯이 현대 회화는 고야에서 시작된다"고 이탈리아의 벤투리는 말한다. 프랑스의 말로도 고야가 현대회화의 막을 올렸다고 비유한다. 고야와 같은 스페인 사람이 한 말이 아니니 믿어도 좋겠다. 그러나 나는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듯이 고야에 의해 "미는 죽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이나 미는 낡은 그것이다. 즉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르네상스를 거쳐 18세기까지 이어진 고전미가 죽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옛 눈으로 보면 고야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본문 7쪽>

이 문장은 이 책 전체의 길잡이 노릇을 해주는 핵심이면서, 이 책이 도달해야 할 경지가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보여분다. 여러가지 면에서 이 책은 뛰어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앞서 지적한 바 있지만 이 책은 비전문가의 미술가 평전이다. 그런데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국내 미술사가들 가운데 특정 작가를 중심으로 한 권의 책을 낸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런 점만 놓고 보더라도 이 책의 장점은 차고 넘친다. 게다가 평전 읽기에 있어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가 당시의 시대 상황과 분위기, 정치경제사회적인 측면을 저자가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편인데,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책은 매우 뛰어난 점이 있다. 이 책은 모두 5장 1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 "스페인"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스페인의 역사를 장장 50여 페이지에 걸쳐 정리해주고 있다. 스페인의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따진다. 그런 뒤에 비로소 본론에 해당하는 스페인 미술과 고야의 출생과 출세 과정을 따지기 시작한다.

나는 박홍규 선생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저술했다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를 통해 고야만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고야를 통해 당신이 주장하고 싶은 바,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말하고자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박홍규 선생이 고야를 이야기하게 된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그 핵심엔 물론 고야 자신의 반체제성과 권력의 미학에 그가 반기를 든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았을 때 스페인은 스페인 시민 전쟁(유일무이한 경험 - 아나키스트들의 전쟁)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은 주석을 제외하고, 본문만 270여쪽에 이른다. 그런데 제1장 스페인이 50여쪽을 차지하고, 제5장 현대 스페인이 또 40쪽 정도를 차지한다. 전체 지면의 3분지 1에 해당하는 지면을 스페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적 입장에 서 있는 박홍규 선생에게 스페인이란 나라는 애써 범상한 어조로 말하지만 특별할 수밖에 없는 곳이리라 유추해본다. 그는 군데군데 이런 저자 자신의 자의식을 숨기지 않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지식인으로서의 그것이다.

그러나 나이 40이면 대가 행세를 하고, 아예 군림하고자 하며, 과거만을 뜯어먹고 사는 조로 권위 현상이 아직도 대세인 한국에서 나는 이 나이에 이르러서야 고야에게 겨우 배우기 시작한다는 점을 자랑으로 삼는다. 사실 고야의 그림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것은 죽기 직전 82세에 그린 "지금도 나는 배운다"라는 작은 소묘이다. 여든에 페르시아어를 새롭게 배우는 괴테처럼 여든에도 새로운 배움을 찾는 고야는 감동적이다. <본문 9쪽>

박홍규 선생은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우리들의 시각을 교정해주고, 고야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애쓴다. 우리가 "고야" 하면 단박에 떠올리는 작품은 열에 여덟 정도는 "나체의 마하"일 것이다. "나체의 마하"는 사실상 고야의 유일한 누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어째서인지 이 유일한 작품이 고야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좌우한다. 그런데 박홍규 선생은 "마하(maya)"의 이름부터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음을 지적해준다. "마야"가 아니라 "마하"이며 마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 '건달녀'의 의미를 지닌다. 즉, 술집에서 일하거나 천한 일을 하는 조금은 낮은 신분의 여자라는 거다. 회화에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을 안다면, 이 차이가 얼마나 큰 인식의 차이를 가져오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홍규 선생은 고야에 대한 이런 왜곡을 바로 잡고 싶었을 것이다.

평전을 역사의 일부로 볼 것인지, 문학의 일부로 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어느 경우든 저자의 관점이 녹아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박홍규 선생은 이 책을 통해 확실히 본인이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느낌을 독자에게  과도하게 전하는 편이다. 박홍규 선생이 종종 고야의 작품을 통해 논증(비평)하기 보다는 앞질러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이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페인이란 화가의 배경을 앞뒤로 포개어놓다 보니 정작 화가 자신이 그 사이로 숨은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예전의 리뷰에서 "티토 평전"에 특별히 높은 점수를 준 까닭은 작가 자신이 티토의 일대기를 풀어가며 사이사이에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당시 티토의 선택을 끼어놓는 방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진한 수프같이 걸쭉해졌기 때문이었는데, 박홍규 선생에게 스페인과 고야는 마치 샌드위치럼 포개진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한데 어울리기 보다는 따로따로 떼어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그보다는 "들어가는 글"에서 밝히고 있는 "왜 고야인가?"에 대해 충실한 대답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박홍규 선생은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고야 이후 "미는 죽었다"고 선언적인 문장을 이용해 말하고 있는데,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에는 이에 대한 설득이 부족해 보인다.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고,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좀더 명징하게 납득하고, 설득되고 싶은 아쉬움을 채워주기엔 부족해 보인다. 박홍규 선생은 이 책 전체에서 고야의 회화보다는 판화에 좀더 비중을 두고 다루고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데, 실제 도판의 사용 빈도수란 측면에서도 고야를 다룬 다른 책들과 비교해도 판화를 많이 다루고 있다. 물론 고야의 작품 비평이 아니라 인물과 사상을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판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예전에 고야의 판화 전시회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무렵 같이 전시되었던 인상파 회화전을 보는 것 보다 훨씬 인상적이었고, 마음에 남는 것이 많은 작품들이었다. 나는 박홍규 선생의 이 책이 고야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왜곡을 바로 잡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자신이 일관된 태도를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독자들 역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자신만의 결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세 역시 중요하다. 특히나 저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박홍규 선생이라면 더욱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벤투리는 어째서 고야를 현대회화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했는지에 대해 선언적인 이야기, 일반론적인 이야기는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저절로 수긍되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그렇게 생각해야 할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외에도 평전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작가연보와 일반적으로 미술책엔 대부분 포함되는 도판목록이 누락되어 있는 점, 색인과 참고 문헌이 누락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시대의 모범이 되는 스승으로 박홍규 선생을 존경하고, 당신의 저서 대부분을 구해서 읽고 있는데, 물론 이 책에 대해서도 내가 열거하고 있는 몇몇 문제들보다는 좋은 점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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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허구 뒤섞고, 인문·소설 아우르고… Faction·지식소설, 불황 속 '대박'

다 빈치 코드, 검은 꽃, 연금술사, 미쳐야 미친다,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등 강세
표정훈 문화평론가
입력 : 2004.12.29 09:19 35'

올 한 해 우리 도서 시장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려야 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 속에 책을 구입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손길이 그 어느 해보다도 줄어든 것이다. 도서 시장이 불황 국면에 빠진다는 것은 독자들이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충실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한 번 서점에 갈 때마다 책을 두세 권 사던 사람이 한 권 사는 것으로 줄이게 된다. 그 결과,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의 간격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일까? 올해 우리 출판계는 매출 규모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최상위권의 몇몇 출판사와 그 아래 출판사들의 매출 규모의 간격이 커져버린 것. 이런 현상은 내년에도 계속되리라는 것이 많은 출판인들의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올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은 두 권으로 나온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베텔스만)였다. 12월 말 집계로 100만부가 넘게 팔린 이 책은 올해의 유일한 단행본 밀리언셀러가 된다. 밀리언셀러급 도서가 나오면 일종의 파생 도서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 빈치 코드'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 빈치 코드의 진실'(시몬 콕스, 예문), '다 빈치 코드 깨기'(어윈 루처, 규장),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다 빈치 코드의 비밀'(마가렛 스타버드, 루비박스), 심지어 보드 게임 '다 빈치 코드'(게임올로지)도 나왔다.

2003년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 소설은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1000만부 넘게 팔렸다. 이야기는 루브르박물관 관장 자크 소니에르의 살해 사건에서 시작된다. 복부에 총을 맞은 소니에르는 죽기 전 자신의 주위에 원을 그리고 벌거벗은 채 팔과 다리를 활짝 펴, 시신이 다 빈치의 스케치 작품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 모습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더구나 시신 옆에는 뜻을 알 수 없는 글이 적혀 있다.

소니에르의 손녀이자 프랑스 사법경찰 암호해독요원 소피느뵈는 이를 할아버지가 자신에게만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남긴 암호라고 판단한다. 살해범으로 몰린 하버드대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과 소피느뵈는 암호를 풀며 진실에 접근해간다. 이들은 소니에르가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등이 수장을 맡았던 시온 수도회의 수장이었고, 시온 수도회는 900여년 동안 막달라 마리아의 시신을 일컫는 '성배'와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가 나와 있는 비밀문서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혼인하여 그 사이에서 아이까지 태어났다는 내용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인물이 바로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 이에 따른다면, 오늘날 우리가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예수 이미지는 기독교회가 1000년에 걸쳐 조작한 허구가 된다. 당연히 미국 기독교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사실과 허구의 교차와 중첩

위의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다 빈치 코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역사적인 사실인가 싶으면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고, 상상력의 산물인가 싶으면 역사적인 사실처럼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이 아니며, 진실은 그 너머 어딘가에 감춰져 있고, 그 감춰진 진실을 역사적인 실마리를 통해 밝혀나간다'는 게 기본 설정이다. 또 하나의 큰 특징은, 도서평론가 이권우의 표현을 빌려서, 지식 소설이라는 데 있다. 독자들은 추리 과정을 따라가면서 서양의 종교, 역사, 미술, 철학사상 등에 걸친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올해 번역, 출간된 '단테 클럽'(황금가지), '자본론 범죄'(생각의 나무), '임프리마투르'(문학동네), '진주 귀고리 소녀'(강)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사실과 허구의 교차와 중첩이라는 특징은 본래 역사 소설의 특징이기도 한 바, 올해 우리 문단 안팎에서 크게 주목받은 대표적인 소설, 김영하의 '검은 꽃'(문학동네)도 좋은 예가 된다. 대한제국의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에 돌입했던 즈음인 1905년 4월, 영국 기선 일포드 호가 조선인 1033명을 싣고 제물포항을 출발해 멕시코로 향한다. 그들은 대륙식민회사의 농간으로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채무노예로 팔려간 것이다. 의무 기간 4년에 걸쳐 그들은 여러 농장에 분산 수용되어 착취당한다.

계약기간 만료 후에도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멕시코 전역을 떠돈다. 멕시코에 불어닥친 혁명과 내전에 휩쓸렸고, 과테말라 혁명군은 그들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참전을 요청한다. 42명의 조선인들은 과테말라 북부 밀림지대에 도착,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신대한'을 국호로 새로운 국가를 세우지만, 정부군의 소탕 작전에 대부분 전사한다.

작가 김영하는 멕시코와 과테말라 현지에 석 달 동안 체류하면서 이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농장을 찾아 다녔고, 과테말라의 밀림에도 들어갔으며, 스페인어를 듣고, 남미 음식을 먹으며, 과테말라에서 차별 받는 마야인들과 만나기도 했다. 그밖에도 대한 제국 시대에 관한 자료를 광범위하게 모으기도 했다. 광범위한 취재와 조사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인 셈이다.

'다 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도, 다 빈치가 자신의 작품에 여러 비밀을 숨겨놨다는 미술사 강의를 들었던 대학 시절의 관심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유럽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기도 했으며, 집필을 위해 수천 종에 달하는 자료 조사와 검토에만 1년을 보냈다. 치밀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와 천착에 근거하지 않는 '골방의 상상력'만으로는 더 이상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편 1993년에 다른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고, 새로운 출판사에서 다시 낸 2001년에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가 작년 말부터 불이 붙기 시작해 지금까지 40만부 가까이 팔린 소설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문학동네)인데, 이 작품은 일반적인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성인들을 위한 우화에 가깝다.


▲ 불황 속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베스트셀러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판매대의 모습.
우화 형식 담은 처세서도 강세

책 좋아하는 양치기 산티아고는 계속 같은 꿈을 꾼다. 양과 함께 놀던 아이가 자신의 손을 잡아끌어 이집트 피라미드로 데려가는 꿈이다. 어느 날 책을 읽고 있는 그에게 한 노인이 나타나 가지고 있는 양의 10분의 1을 내놓으면 피라미드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는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한다. 산티아고는 노인에게 값을 치르고 금으로 된 흉패 한가운데 박혀 있던 흰색과 검은색 보석 '우림과 툼밈'을 받아든다. 그리고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 결국 삶의 참 의미를 발견한다.

문학적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대신에 일종의 자기계발서 성격이 강하다. 이른바 뉴에이지풍인가 하면, 성장 소설 혹은 교양 소설로도 보이고, 소설이 아니라 그냥 우화로도 보인다. 바꿔 말하면 쓰임새가 넓고 다양한 소설, 일종의 범용성(汎用性)에서 강점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와 달리 소설이 아닌 처세실용서로 분류되지만 소설 혹은 우화의 형식을 갖춘 베스트셀러로 스펜서 존슨의 ‘선물’(랜덤하우스중앙)이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이미 우화 형식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펜서 존슨은 ‘선물’에서도, 한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년이 마침내 깨달은 것은 이렇다.

행복과 성공을 원한다면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고,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으라는 것.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원한다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고 그것에서 소중한 교훈을 익혀 지금부터 다르게 행동하라는 것.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멋진 미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지금 당장 계획을 실천으로 옮기라는 것. 수많은 처세실용서의 핵심 내용을 압축적으로 정리해 놓은 셈이다.

인문서+실용서 '새 장르'도 눈길

이제 인문 분야로 눈길을 돌려보자. 올 한 해 인문 분야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책은 정민 교수(한양대)의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이다.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을 중심 테마로 삼아,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한 가지 주제에 미쳐서 끝장을 보고야 마는 일종의 매니아 문화에서 찾고 있는 책이다. 남들이 이상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 혹은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성실과 노력으로 일관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표구에 미쳐 하루 종일 옛 그림 수선에 매달린 방효량, 좋은 돌만 보면 벼루를 깎은 정철조, 수석에 미쳐 돌을 주우러 돌아다닌 이유신, 담배를 너무 좋아해 담배에 관한 기록을 주제별로 모은 문헌 '연경(煙經)'을 펴낸 이옥, 비둘기 사육에 열중해 '발합경'을 남긴 유득공, 앵무새 이야기를 집대성한 이서구도 있다. 조선의 선비라고 하면 유교 경서에만 몰두하는 도덕군자부터 떠올리던 통념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큰 인기를 모은 까닭으로,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 각자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이 책은 단순히 옛날 사람들 가운데 이런 특이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이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일종의 '인문 실용서'로 볼 수도 있다. 출판에서 인문 분야와 실용 분야의 결합은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진 추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특히 우리 옛 인물과 고전에 관해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밝혀준다는 미덕까지 더해져 있다.

이런 특징은 조선의 과거 시험에서 마지막 관문으로 임금이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책문(策問) 가운데 중요한 것을 가려 뽑아 번역한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김태완 엮음, 소나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내용의 동시성(同時性), 즉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 대입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단순히 책문 내용을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엮은이가 오늘날의 현실과 관련지어 책문을 해설하는 부분이 이 책의 백미다.

예컨대 명종 이후 훈구 세력의 붕괴와 함께 국정을 주도하게 된 사림 세력은 잔존하는 훈구 세력을 포용하지 못했다. 관료로서의 훈련을 쌓지 못한 사림 세력은 정국 운영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결국 조선의 관료 사회는 동서 붕당으로 갈라져 누적된 모순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 책은 옛 것, 옛 문헌을 통해 오늘날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여러 서점에서 인문 분야로 분류되어 큰 인기를 모은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강민경 외 지음, 휴머니스트)는 보다 더 직접적으로 실용성을 포괄한다. 한자의 배경이 되는 문화와 역사에 관한 인문 교양서인가 싶으면, 그런 문화와 역사를 배경 삼아 한자를 배울 수 있는 실용서 성격도 강하다. 예컨대 고대 중국의 역사가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어휘를 선택했다. 엇비슷한 세력이 싸울 때는 공(攻)자를 쓰고, 강한 세력이 약한 세력을 칠 때는 벌(伐)자를 썼다. 상대의 잘못을 응징할 때는 토(討)자를 쓴다. 이런 원리를 알게 되면 우리가 자주 쓰는 '공격'이나 '토벌' 같은 말의 의미를 더욱 가려서 정확하게 쓸 수 있다.

이상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도서 시장에서도 더 이상 순수한 것만으로는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문 지식과 추리, 인문 지식과 문학적 상상력과 실용성 등을 두루 결합한 책들이 각광받는 추세인 것이다. 또한 문학이든 인문이든 철저한 자료 조사와 취재에 바탕을 둔 책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허구와 사실, 상상력과 구체적인 자료, 어떤 의미에서는 이질적인 것들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능력이 저자에게나 출판기획자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가상현실이 범람하는 시대의 징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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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4-12-3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두 또 추천하고 퍼갑니다 ㅎㅎㅎ 한꺼번에 넘 많이 올리시네 ㅋㅋㅋㅋ

stella.K 2004-12-3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흐흐.

水巖 2004-12-3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오늘 수고 많이 하시는군요. 칭찬도 많이 하고 싶군요.

stella.K 2004-12-30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수암님.^^
 

그림을 클릭하시면 문화재청 자료로... ☞

1호 남대문


6호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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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 불좌상

31호 경주 첨성대


36호 상원사동종


41호 용두사지 철당간


46호 부석사조사당벽화


2호 원각사지 십층 석탑


7호 봉선 홍경사 사적 갈비


12호 화엄사각황전앞석등


17호 부석사 무량수전앞 석등


22호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27호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


32호 해인사 대장경판


37호 경주 구황리 삼층석탑


42호 목조 삼존 불감


47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8호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 보광탑비


13 호무위사극락전


18 호 부석사무량수전


23호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28호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 입상

33호 창녕 신라진흥왕 척경비


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


43호 고려고종제서


48호 월정사팔각구층석탑

4호 고달사지 부도


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14 호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19호 부석사조사당


24호 석굴암 석굴


29호 성덕대왕 신종

34호 창녕 술정리동 삼층석탑


39호 월성 나원리 오층석탑


44호 보림사 삼층석탑및 석등


49호 수덕사대웅전

5호 법주사 쌍사자 석등


10호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15 호 봉정사 극락전


20호 불국사 다보탑


25호 신라 태종 무열왕 릉비


30호 분황사 석탑

35호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


40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45호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50호 도갑사해탈문

한글도메인: 국 보
51호 강릉객사문


56호 송광사국사전


61호 청자비룡형주자


66호 청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


71호 동국정운<권1,6>


76호 이충무공 난중일기 부서간첩임진장초


81호 감산사석조미륵보살입상


86호경천사십층석탑


91호 도제 기마 인물상


96호 청자귀형수병

52호 해인사 장경판전


57호 쌍봉사 철감선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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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


58호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부 석조대좌


63호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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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


88호 금관총과대및요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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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법주사 석연지


69호 개국원종공신록권


74호 청자압형수적


79호 경주구황리금제여래좌상


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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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청자소문과형병


99호 갈항사삼층석탑

55호 법주사팔상전


60 호 청자사자유개향로


65호 청자기린유개향로


70호 훈민정음


75호 표충사청동함은향완


80호 경주구황리금제여래입상


85호 금동신묘명삼존불


90호 금제태환이식


95호 청자칠보투각향로


100호 남계원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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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2-3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스텔라님 고마와요..>.<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딱 좋은 자료네요.. 퍼갈께요~~

키노 2004-12-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자료.. 또 추천하고 퍼갑니다 ㅎㅎㅎ

水巖 2004-12-30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 갑니다. 정말 좋은 자료입니다.

stella.K 2004-12-3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 태어나 순 토종으로 산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국보도 재대로 모르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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