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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겠다고 발심(發心)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참으로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책을 내 눈에 맞추는 것은 곧 내 마음과 맞추는 것이다.
마치 종교없는 자가 어느날 제발로 교회를 찾아가듯,
발심을 통해 책을 드는 것은 그 이면의 갈망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어디 요즘엔 무슨 책이 유행인가?><이 책 재미있나?> 정도의 수준이어도 상관없다.
유행하는 노래나 옷도 많은데 하필 유행하는 책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죽 재미있는 게 없으면 책이라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할까.
이는 예전의 마음과 달라지고 싶다는 희망의 표시이며 변화의 자명종이다.
이제는 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페이지(page)란 말의 어원이 포도나무 한 이랑을 뜻하고
읽다(read)라는 말도 수확하다(reap)와 어원을 같이한단다.
즉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는 행위는
포도나무에서 탐스런 포도송이를 거둬들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찬찬하고 엽렵하게 읽으면
더 많은 열매를 온전하게 얻을 것이요,
대충대충 뒤적뒤적 읽으면
열매가 다치고 짜부러져 제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래서 어떤 말의 어원을 짚어보면 뜻밖의 큰 교훈을 얻을 때가 있다.

저마다 이유는 각각이겠지만 그중 마음이 푸근한 것은
크는 아이들을 위해 평생 멀리한 책을 끌어당기려는 부모들의 결심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나 좋게 보이지 않을 때
나무라기 앞서 잠깐 부모인 자신을 돌아보자.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법이 없다면
부모는 그들 앞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지,
아이들이 책을 도무지 가까이할 생각을 안하면
부모는 그들 앞에서 즐겁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지,
아이들이 온통 지저분하게 늘어놓고 도대체 산만하기 짝이 없다면
부모는 언제나 정갈하고 규칙적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는지
잠시 생각해볼 일이다.
만약 부모가 생각하건데 그런 점에서 능히 자신있다면
아이는 좋은 것과 참된 것이 무엇인지는 알되
그것을 실천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한 것이니
작은 마음부터 먹게 하고, 힘 안드는 것부터 시작하게 하면 된다.
<Little by Little, That's how!>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하면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책을 읽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다.
포도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골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맛을 보고 반해서
책 읽기를 좋아라 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인데,
부모가 맛을 모르고서야 <나는 바담 풍 할테니 너는 바람 풍 하라>는 형국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아이의 책읽기는 감사하게도 부모의 책 읽기와 동반할 수 밖에 없으니
그 이치를 먼저 깨닫고 책을 보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 건 참으로 희망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아이들 독서교육에 투신하는 분들은
바라건데 가끔은 부모님들이 읽을 책 한두권쯤 아이들 가방에 넌즈시 넣어주는 지혜를 가지시길.
책읽는 부모에게서 축복을 받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여가며 더욱 성숙해짐으로써
부모에게 기쁨과 감사를 되돌려줄 것이 분명하니,
효도를 받고자 하는 부모는 망서릴 것 없이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데 총력을 기울일만 하다.
나는 그런 가정에 감히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아이와 부모가 같이 읽고, 같이 생각하며, 더불어 얘기할 수 있는 책을 고르시고,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거든 <고전>을 읽도록 하십시오.
아주 세속적인 이익 하나 더 귀뜸하자면
고전 읽기를 제대로 하면 아이들이 세계 어느 명문 대학에도 척척 붙을 수 있다는 사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요.
혹시 아이들 방에 꽂힌 책중에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씌여진 고전 한두권 있으면
슬쩍 빼서 읽어보십시오. 가급적이면 자신이 안읽은 책이면 좋습니다.
그동안 <애들 책이야 어디 유치해서 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던 분들은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어허, 이거 제법 재미있는데.>라며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떼실 겁니다.
그게 바로 고전의 묘미입니다.
우리는 고전읽기를 제대로 못하고 큰 세대라
고전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하품부터 나온다.
아무 책이나 읽긴 좀 그러니까 그중 만만한게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걸 사게 된다.
정말 좋은 책이면 다행이지만, 출판사의 상술로 많이 팔리게 된 책을 읽다보면 확 짜증이 난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정말 읽을 책 없군. 이렇게 돌아서면 일년은 책 근처에도 안가게 된다.
그래도 십년 동안 베스트 셀러라면 믿을 만 하지.
백년 동안 베스트 셀러라면 더욱 확실하고...
수백년 아니 누천년의 베스트셀러라면 <그건 안 읽으면 큰 일나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다른 아이들은 다 읽히고 자기 아이만 못 읽게 한다면
그 부모들은 아마 목숨걸고 달려들 게 분명하다.
그런 책이 바로 고전아닌가.
그런데 그 책을 왜 그리도 재미없게 생각했는지, 왜 제대로 읽게 만들지 않았는지,
급기야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지 그게 더 의아할 뿐이다.
부모들은 공연히 어려운 책 잡지 말고
아이들 책부터 하나둘씩 읽어가면 된다.
역시 <Little by Little, That's how!>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하면 된다.
고전부터 읽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이에게 해줄 말이 저절로 생긴다.
같은 어린이 책을 읽었지만 어른들은 아이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받아들일 정도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고
그것을 넙죽넙죽 받아먹는 제비새끼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만한 행복이 어디에도 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거기서 그치면 2% 모자라지 않나.
초등학생을 둔 부모라면 비슷한 주제의 고전을 중학생 눈높이에 맞춰 내놓은 것을
사서 읽어보자. 말이 중학생 수준이지 웬만한 어른 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잘 읽으면 초등학생용 책보다 두세배 농도가 짙고 수준도 높은 교훈을 얻게 된다.
그리고 나서 아이와 대화하면 아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중학생 수준의 독서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냥 각자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대화까지 할 것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아이들과의 대화에 서투른 부모의 경우, 아이들 반응도 시원찮고
기대했던 만큼 수확이 없어 회의와 좌절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이미 그 안에 갖고 있지만,
혼자 힘만으로는 어렵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티칭, 코칭, 카운셀링, 멘토링, 컨설팅, 퍼실리테이팅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자신을 성찰할 때 대부분 의식의 범주에 한정되는데
그 밑에는 평소엔 전혀 의식되지 않는 엄청난 무의식의 빙산이 놓여있다.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들은 그 무의식에서 해답을 퍼올려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혼자 웅크리고 생각하는 것보다, 책을 읽으며 책과 대화하는 것이 낫고
혼자 책 읽고 생각하는 것보다, 함께 읽은 사람들과 더불어 대화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아이들을 독서실에 혼자 두는 것보다
부모와 얘기하고, 제대로 가르치는 독서교실에 보내는 것이
훨씬 가치있고 효과적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오늘은 고전읽기의 중요성과 즐거움, 그리고 책읽은 후의 대화가 왜 중요한가를
생각해보았다.
다음에는 책읽기나 공부하기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습관이라는 이름의 엔진>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엔진을 책 읽기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 매뉴얼을 정리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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