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예수는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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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가 21세기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수는 랍비였다. 랍비 예수는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이었다."
생뚱맞을 수 있겠다. 예수의 신성을 모독한다며 펄쩍 뛰거나, 이게 뭔 소리냐며 귀를 쫑긋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먼저 랍비들의 전통을 이해해보자.
랍비들은 이야기로 상상력을 일깨웠다. 예수도 이를테면 `케이스 스터디'같은 방법으로 사람들 스스로 생각하도록 했다.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그런 대답은 주지 않았다. ‘이럴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상상력. 랍비 전통의 통찰과 윤리적 상상력이 결합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예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는 일로 짧은 생애를 보냈다. 심지어 그가 도발적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이라든지 고문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도 그의 삶에 대한 설화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설화, 이야기에서 나오는 상상력은 우리가 `윤리적 딜레마'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해답을 찾고, 또 실천하는 용기를 갖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는 독특한 기독교 해석과 `세속도시'라는 명저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신학 교수다. 책은 198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그가 강의한 `예수와 윤리적 삶'을 정리한 총괄편이다. 믿지 않는 이에게 예수 연구가 뭐 그리 재미있었겠나 싶지만, 책을 보니 생각이 바뀐다.
예수를 `친구'처럼 여긴다는 저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꼬집는다. 일단 성경, 복음서는 본질적으로 이야기란다. 예컨대 히브리 성경은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다 했지만 고대 여리고에는 성벽이 아예 없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도 심하게 오해되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성모 마리아를 `영원한 처녀'라 하는 것은 결혼에서 성적 친밀감을 평가절하하는 일이라나. 예수에게 적어도 야고보라는 형제 하나는 있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이야기가 성경에 담겨있다고 해서 그 영적 효용성을 불신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한다.
성경은 지루하다는 오해도 버리자. 예수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말의 경우, 남편이 죽은뒤 창녀로 변장해 시아버지와 동침, 쌍둥이를 낳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준다. 저자는 "`거룩한 책'에 이런 스캔들도 있는데, 누가 따로 돈주고 로맨스 잡지를 사느냐"며 "이런 이야기야말로 허심탄회하게 윤리적 문제를 토론할 길을 터준다"고 말한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성경의 오독. 예컨대 적그리스도가 등장, 최후의 심판과 휴거가 있을 거라는 종말론 시나리오는 성경 구절들을 문맥과 상관없이 짜집기한 결과다. 특히 누가 적그리스도라는 악역을 맡을 것이냐가 문제. 냉전 시기에는 히브리어 `로쉬'를 `러시아'로 번역하는 ‘창의성’이 발휘됐다. 물론 요즘 새롭게 떠오른 `적그리스도'는 이슬람이다. 저자는 "종말론 신봉자들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설교하지 않은채 인간의 윤리적 선택을 무력화시킨다"며 "이런 황당하고 정신나간 신학에 매료되는 사람이 많은 것은 고통과 맞붙어 싸우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편리한 도피구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배타적이지 않은 저자의 유연함은 가장 인상적인 미덕이다. 마하트마 간디야말로 예수의 핵심적 통찰을 파악하고 사회운동으로 이끈 인물이라고 평하는 그는 다양한 신앙에서 공통적 윤리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불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사이에는 중첩되는 가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진정한 `지구 윤리'의 초석 마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기야, 예수만큼 유연한 인물이 있던가. (예수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렇게 유연하고 개방적인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그리 배타적이 될 수 있었을가 의아하다. 아무리 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된지 2000년이라지만.)
로마의 백부장에 대해 “내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노라(마태복음 8:10)고 하거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등. 예수는 다른 전통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린다고 해서 윤리적 혼동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믿은 것 같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는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다양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아주 중요한 통찰이다. 예수는 교차 문화의 만남을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본다. 로마의 백부장이든, 욕심많은 세금징수원이든.
생명복제까지 이야기하는 시대,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 같았던 종교가 다시 뜨고 있다. 기아와 테러 등이 눈부신 과학발전과 더불어 오히려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아간 탓이다. 하지만 종교의 부흥은 여러 종교 문명 사이의 갈등도 부추긴다. 과연 1세기 랍비가 21세기의 우리를 이끌어줄 것인가.
`랍비 예수'의 가르침에도 새삼 관심을 갖게 되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강의를 `교양과목'으로 들었다는 하버드대생들이 무척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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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키지 않는 책이었다. 종교, 신학 이런데 관심도 없고, 머리도 아플게 뻔하지 않겠나. 그런데 책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처음엔 좀 지루해서 계속 졸았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 많은 책이다. 암튼 삐질삐질 리뷰 정리하는데 옆자리 L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외친다.
"아니, 하비 콕스 책이잖아? 엉? 정선배 하비 콕스 몰라요? (이 대목에서 정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아니 정말 인문과학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모를 수 없는데. 아하, 정말 좀 무식하다는 얘기잖아.(목소리 좀 낮추지 L옵바..ㅠ.ㅜ)"
박학다식한데다 신학과 출신인 L은 하비 콕스가 엄청엄청 유명한 신학자이며, 흑인으로서 최초로 하버드 신학대에 자리잡은 사람이며, 그의 명저 '세속도시'는 정말 필독서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 소개에 저 한마디를 집어넣었다. -,.-) 그가 썼으면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글 잘 쓰는 신학자라는게다.
암튼, 잘나간다는 신학자가 이렇게 유연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엄숙주의나 권위 따위도 없고, 유일신을 섬겨야 하니, 배타성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변명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고, 불교인들은 사회정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심 일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유대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은 하나님의 법이 삶의 모든 분야에 미쳐야만 한다는 통찰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그는 종교간 화합에 대해 낙관적이다. 그의 말대로 모든 종교가 힘을 합쳐 `지구 윤리'라도 만든다면 근사하지 않겠나. 나와 다른 종교인을 악마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