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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 여자아이 - 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레너드 삭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1월
평점 :
오랜만에 교육서를 읽었다. 저자의 교육심리학적인 접근이 흥미롭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쫙쫙 쳐 가면서 읽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새삼스럽다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 되있고 그저 막연하고 뭉뚱그려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책 한번 읽어주면 아, 맞아. 그렇지! 하며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랄까?
90년대를 지나는 동안 한때 주일학교 교사로 고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있었는데 그 이후 아이들을 더 이상 상대해 본적이 없는 나에게 새삼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난 90년 대 독서계를 풍미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나온 이후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가에 관심이 많았다. 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결혼과 연애의 관점에서 남녀가 어떻게 다른가를 고찰했다면, 같은 주제이되 이 책은 그것을 교육적 관점에서 다뤘다는 것에 관심이 갔다. 이 책의 전제는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교육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간단치 않았던 사춘기 시절의 학교생활을 떠올렸고, 그다지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아웃 사이더로 규정하고 다녔던 내 지난 날이 새삼 쑥스러워 졌다. 그때 학교가 나를 조금만 보듬어 줬더라면, 지나치리만치 주눅들어 나 자신을 과소평과하며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학교는 이러이러한 구조와 울타리를 쳐놓고 이것에서 조금만 빗겨서 있거나 떨어져 있으면 열등생이라고 규정짓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학생에겐 얼마만한 스트레스가 될 것인지에 관해서는 학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뇌의 구조가 다르고, 사고체계가 다르고, 행동반경이 다른데 어떻게 그것을 똑같은 잣대로 학생들을 보고 다룰 것인가? 같은 학생이라도 남자 선생이 바라보는 것이 다르고, 여자 선생님이 바라보는 것이 다른데 학생을 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문제는 학교에서 남선생의 비율보다 여선생의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도 교육이 개선해야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책은 남자는 남자답게 가르치고, 여자는 여자답게 가르치라는 것인데 이러면 페미니스트들의 반감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반페미니즘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교육을 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지난 2,30년전만해도 남학교와 여학교의 구분은 확실했다. 하지만 오늘날 남녀공학을 실시하는 학교가 그렇치 않은 학교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 그것의 취지는 남녀가 함께 경쟁하며 조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자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 장점이 없진 않겠지만, 저자가 여러 많은 학자와 조사해 본 결과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의 수가 점점 어려져 가고 있고, 너무나 쉽게 어린 나이에 성경험을 하고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자녀 양육태도도 저자는 문제 삼는다.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제제하지 못하고 권위가 없어진 관계로 아이들은 점점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갈수록 버릇이 없어짐은 물론, 비만의 속도와 우울증약을 먹는 아이가 갈수록 늘어 났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나의 변변치 않은 주일학교 교사생활이 떠올랐다. 선생이 워낙에 출중(?)해서인지, 아님 시원치 않아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났던 아이들은 대체로 좋은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깨 하다보면 뜻이 안 맞는 경우도 아주 가끔은 발생 하는데 그때 한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은 너무 권위적이세요."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학생은 그것이 아주 안 좋은 뜻으로 사용했겠지만, 나는 이 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쓰는 언어는 아주 많이 신사적이고 부드러워졌다. 그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 달달하고 부드러운 것 때문에 얼마나 아이들을 잘못된 관념을 갖게 만들었는가를 나는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엄해서도 안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이 선생님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부모들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그 잘못된 망상을 갖게 했다면 그것은 아이들 자신의 문제라기 보단 그런 착각을 심어준 그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교사이고, 부모는 부모이다. 오늘 날 잘못된 '평등'이란 개념하에 우리의 지난 가치들이 얼마나 많이 무너지고 있는지 객관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
책은 연구서로나 대중서로서 결코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이 다분하다. 우린 지난 세기동안 구세대적 교육가치를 폄하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날 그것이 과연 나쁘기만 했는가에 대한 반성과 자성의 움직임이 또한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실패만을 거듭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이 미국 사람에 의해 씌여진만큼 미국의 교육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인데, 오늘 날 글로벌리즘을 감안할 때 이 책이 꼭 미국의 현실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도 무서운 속도로 그것을 따라잡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의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나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렇게 남녀의 성차를 인정하고 그것에 맞는 교육을 해야한다면, 21세기 여성화된 리더십이란 것도 재고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남성적 리더십과 여성적 리더십은 함께 공존해야 할 것이지 어떤 리더십이 어떤 리더십 보다 더 우위를 점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 편향적이고 지나친 이분법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한 요즘들어 독신의 인구가 많아지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기는 안 갖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 또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을 아는 사람이 이 사회를 점령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자기분열을 초래할 것이다. 더불어 같이 희생하며 사는 것은 결코 혼자 방안에서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이 있다. 아이를 많이 나아 본 사람은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한다. 끊임없이 돌봐야하고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할 수만 있으면 성차를 인정한 연애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성차를 알고 교육을 하는 훌륭한 교사와 부모가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그저 무장적 대학만 보내 놓으면 자기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교사와 부모에게 이 책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고의 전환의 기폭제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