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간을 먹고 싶어. 뭐 이러면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인간이 되려다만 구미호의 이야긴가 보다 했을 것이다. 근데 하필 하고 많은 장기 중에 췌장이라니. 췌장과 관련된 질병을 앓다 사망한 사람과 그 유가족이 알면 좀 뜨악하지 않을까?

 

일본 관객은 어떨지 모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개봉 당시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작은 소동이 빚어졌나 보다. 나도 제목이 하도 독특하여 요 근래 보았다. 사실 이 영화는 원작을 바탕으로 했고, 언제나 그렇듯 표지 디자인은 어느 정도 그 책이 가지는 이미지를 반영하느니만큼 벚꽃 만발했던 것으로 보아 생각처럼 무서운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소녀의 감성을 저격하는 영화라 제목이 과연 어울리기나 한 건지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러고 보니 이런 소녀 감성 저격 영화는 또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영화는 그 나름대로 보는 맛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과도기를 겪는 걸까? 최근 개봉된 영화들이 시원치가 않다. 이 영화도 고만고만하다. 하긴 예전부터 일본은 애니메이션 강국이고 영화는 우리나라만 못하다는 평이 있긴 했다.

                

                             

 고만고만한 영화는 또 참 애매하게 중간에 끊기도 뭐하다. 특별히 감동스러운 것은 아닌데 그래도 뭔가 씹어볼만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제 겨우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쿠라는 시한부 인생을 산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쩌면 그리도 밝고 맑은 심성을 가졌는지. 얼마 후 죽는다기 보단 잠시 선녀가 인간 세계에 왔다가 곧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게 흔히 있을 법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아픈 것도 정확하게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 어떤 관객은 섣부르게 췌장암 아니냐고 했다가 눈총을 받았나 본데 정말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췌장쪽 병을 앓는 것으로 나온다. 이러면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고 부르짖는 전문가들로부터 비난의 물결이 쇄도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영화로 나온 걸 보면 이건 그냥 맥거핀이라고 할 수 밖엔 없을 것이다. 사쿠라의 간지도 그렇다. 도무지 병자 같지가 않다. 영화 말미에 가면 사쿠라의 정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데 밝고 맑고 환한 캐릭터는 실상 그녀의 성격임에 분명하지만 그런 그녀도 죽음 앞에선 두렵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간은 없다.

 

영화가 소녀 감성을 제대로 저격했다고 한 것은, 소녀들의 로망중 하나는, 어느 아프지 않는 이름 모를 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데 운명의 남자와 비극적인 사랑을 하다 그의 품에서 죽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대가 우락부락한 짐승남일 수는 없다. 잘 생겼지만 뭔가 여리고 모성본능을 자아내는 남자여야 뭔가 합이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으로 낙점된 키타무라 타쿠미란 배우는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연기는 그만그만한데 그 이미지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소년 시절 필이 약간 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둘이 펼치는 영화 내용은 역시 고만고만해서 굳이 줄거리는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너무 건전한데다 신파적이기도 해 내용을 얘기하는 순간 바로 스포일러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의 췌장을 먹으면 그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산다는 속설을 의미하는 거였다. 영화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그들의 모든 행동과 심증은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췌장을 먹어 달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지 않은가?

 

사쿠라가 마지막 죽는 것도 극적이라기 보단 작위적이긴 하다. 일본도 몇 년 전부터 묻지 마 살인이 유행인가 보다. 그런데 사쿠라는 비록 짧지만 제 명에도 죽을 수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묻지 마 살인에 그나마 짧은 생을 단축했다. 그러니까 영화는 사쿠라가 자신이 사랑했던 나래이터겸 남자주인공 시가에게 남긴 공병문고란 그녀의 일기겸 편지를 사후에 읽게 하기 위한 의미로도 보이는데 그것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말과 글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칼이고 방패인 것이다. 사쿠라는 소년을 사랑함에도 그것을 차마 입 밖으로 얘기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알아 달라는 듯 일기장에 짧은 기간 동안 그를 알았던 것에 대한 감사가 들어있다. 말로 할 수 없으니 글로 남긴 것이다.

 

사실 사쿠라가 공병문고에 시가에게 했던 말이 오글거리긴 하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너로 인해서 나의 마지막이 즐거웠다는 뭐 그런 메시지를 남겼는데 하긴 영화나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멋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게 흘러가는 중에 뭐 하나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거나 대사가 귓가에 맴돌거나 가슴에 박히면 것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그 작품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즉 나는 사쿠라의 이런 신파에 걸려든 것이다.

 

내가 있어서 누군가의 삶이 덜 힘들고 조금 덜 외롭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하는 인생은 아닐까? 5년 전 나의 오빠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문득 들은 생각은 사람은 정말 죽기 위해 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백세까지 살게 되기를 바라진 않았다. 못해도 60만 넘겨 살아도 덜 안타깝고 덜 슬펐을 것 같았다. 어떻게 마이클 잭슨이 죽은 나이와 같이 죽을 수 있을까? 난 이상하게도 오빠의 죽음을 두고 그 어느 것에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지만 그나마 이게 위로라면 위로였다.

 

오빠가 죽고 나서 난 건강에 더 민감해졌다. 그건 꼭 오빠와 같은 나이 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오빠는 확실히 불효자임엔 틀림없다. 어쩌자고 엄마를 두고 자기가 먼저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오는 길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건 순서가 없다지 않은가. 그러니 오빠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사는 날 동안 이렇다 할 병도 없이 건강했으니. 아무튼 난 적어도 엄마 보단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자신이 먼저 가는 슬픔을 겪게 하는 건 오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말은 안 하지만 우리 가족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는 동안 사람은 다른 사람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최대한 걱정과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건강하고 바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가졌던 죽기위해 사는 것인가란 질문이 아니라 살아주기 위해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사쿠라의 소년에 대한 감사가 성립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게 그것을 의식하며 살 필요는 없다. 소년은 사쿠라에게 자신이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냥 있어줬을 뿐이다. 상대가 의식할 정도가 된다면 그건 고마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변태가 되는 것이겠지.

 

영화가 신파 같고 어찌 보면 도덕 교과서를 보는 것도 같다. 보면서 일본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도 영화를 다 만드는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영화 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가 학교 졸업하고 또 어디 가서 도덕 교과서를 보겠는가?

 

영화가 지나치게 보물 찾기식이어서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긴 하다. 그런 것만 잘 넘길 수 있다면 그럭저럭 볼만은 하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것에 충실한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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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8-03-2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는 패스했구요 최근에 본 일본 영화는 나미야백화점의 기적이였습니다. 역시 도덕교과서적이고 신파적이긴 한데 의미는 있었어요. 죽음과 관련해서 삶과 관련해서.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쌍생아겠죠. 오빠분 이야기는 님 책에서도 읽고 찡했는데 그게 다 공부라는 김사인 시 ‘공부’가 뜬금없이 생각납니다. 전 아직 그런 공부 못해봤네요. 언제인가 하게 되겠죠.

stella.K 2018-03-25 19:11   좋아요 1 | URL
아, 김사인의 그런 시가 있었군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할 것 같네요.

최근 일본 영화에 대한 느낌은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이 영화도 그렇고, 언젠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란 영화도 봤는데 별로더라구요.
나미야 백화점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자잘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영화로 만드는 걸 보면 그런 영화 정신은 필요해 보이기도 한 것 같구요.
고맙슴다. 읽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