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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 500년 전 루터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남겼는가
박흥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올해는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때맞춰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종교개혁에 관한 책들이 많이 저술되어 나오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다. 기독교야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 개혁주일로 지내고 있으니 저 500주년이란 말만 아니면 새삼 놀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말을 하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사실 교회로선 매년 놀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 개혁 이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덤덤하고 아무런 감흥이 없고, 권태에 찌든 종교인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사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지적은 잘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늘 승자의 역사다. 그래서 교회에는 종교개혁이 승리한 혁명인 줄 안다. 그래야 종교개혁이 의미가 있는 것이 되니까. 하지만 저자는 과연 역사학자답게 성공하지 못한 종교개혁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루터의 개혁의 시발이나 의지는 좋았지만 그의 혁명은 성공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루터에 관해선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이 책 덕분에 새삼 주위를 환기시켜줬던 것도 사실이다.
종교개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책에선 면벌부라고 하는 면죄부를 가톨릭교회가 발행하므로 잘못된 신학과 그로인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게 또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선 종교의 타락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거라고, 그리고 종교라는 부분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당시 가톨릭이 국교인 독일로서는 심각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국왕과 교황과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고.
책은 이렇게 면벌부 문제로 촉발된 루터의 종교개혁이 어떻게 번져 나갔으며 어떤 사상적 논쟁이 있었고, 나라를 변화시켰는가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루터의 공과는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도 나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필연적이다 싶게 뭔가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루터 같은 개혁가가 나오길 기다리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당시 힘 있는 세력가들이 그를 도와주기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또 그만큼 부패가 심각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무엇이든지 개혁이나 새로운 물결은 혼자로선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를 받혀주고 도와주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당시의 종교개혁은 종교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사회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무엇보다 인쇄술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이건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터의 만인대제사장설과 함께 성경이 일반인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려면 배포가 되어야 하는데 인쇄술의 발달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루터는 자신의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려야 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술 또한 인쇄술 및 출판에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종교와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걸 보면 성공한 혁명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의로운 일을 하면 반드시 시기와 방해는 있을 터. 그의 혁명을 저지하려고 당대 가톨릭 사제들과 그의 반대파들은 얼마나 그를 핍박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루터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사제의 신분으로 결혼까지 감행한다. 가톨릭으로선 이단이다 못해 파면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의 개혁이라면 정말 여기까지는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행히도 루터의 결혼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할까? 무엇보다 그는 농민들과 완전히 화합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의 농민이란 대중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공하지 못한 대중운동이라는 것이다. 뭐 자신을 반대하는 가톨릭과 사상적 논쟁을 하고 혁명을 하느라 거기까지는 미처 챙기지 못했고, 게다가 그는 유대인들을 박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것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그도 인간이고, 인간에겐 누구나 편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지나친 자의적 해석이 되려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런 루터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다. 그는 과연 개혁에 성공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과연 그의 개혁은 의로운 것이었나? 그 개혁은 오늘도 유효한 것일까?
하나 확실한 건, 그는 미완의 개혁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한 개혁가는 아니다. 그리고 미완이란 말도 그다지 적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개혁을 시작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 이후로 그를 추종했던 개혁가들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 대표적으로 요한 칼뱅 있었고 역사상 그 말고도 개혁파 신학자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무엇보다 오늘 날의 교회가 루터를 성공한 종교개혁가로만 보는 것은 성공 신학적 측면이 강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교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둔하지 않다. 오늘 날의 목사나 신학자들도 루터가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에 대해 더 연구해 볼 문제겠지만, 교회가 방점을 두는 건 그가 개혁을 했다는 것일 게다. 만일 그가 완벽한 개혁을 이루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린 어쩌면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성공한 루터를 우상으로 섬기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우린 역사나 사람을 보는 시각이 조금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모 아니면 도. 진보 아니면 보수. 악 아니면 선. 성공 아니면 실패. 이런 시각으로만 역사와 사람을 보면 어떤 우를 범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피상적 알고 있는 루터에서 좀 더 다각적인 시도는 좋았지만 깊이 있게 파고들지는 못했고, 종교개혁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은 깊이 있게 다뤄주진 못했다. 그냥 아쉬운 대로 개론서쯤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또 하나 드는 생각은, 21세기에 루터가 다시 세상에 온다면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아마도 더 어렵지 않을까?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하고, 사상이 많고, 진보와 보수가 참예하게 갈라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세상에서 과연 루터의 목소리가 힘을 낼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분명 그는 세기에 한 번 나올 위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위인은 시대에 맞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는 21세기에 맞는 개혁가가 나오지 않을까? 그게 반드시 루터가 아니어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은 성공하는지에 관해서 까지는 몰라도 이 시대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인간 부패의 역사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항상 있어 왔으니까. 누가 이 썩고 곪아터진 걸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의로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박수쳐 주고, 그럴 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소금 마는 뿌리지 마라. 그리고 제발 자신은 뒤짐만 쥐고 있으면서 진보니 보수하는 프레임 가지고 비판하지 마라. 세상이 썩어 있다는 건 그들이 더 잘 알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