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자들은 왜 못 웃길까?

어제 모처럼 후배와 연극을 봤다.
엄청 기대를 하고 보면 실망할지 모르지만, 별 생각 없이 보면 나름 웃기고 볼만하다.
사람이 보고 들은 말이 어떻게 거짓말이 되고, 거기에 드러난 인간의 돈에 대한 욕망을 풍자적으로 잘 보여준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총 6명의 배우가 나오는데, 두 명이 여자다. 남자 배우는 골고루 웃기고(그중 띨빵한 역을 맡은 배우가 하나 있던데 가장 많이 웃겼다) 나름의 무대 장악력이 있는데 여자 배우 둘은 그저 고만고만한 연기를 보여줘 아쉬움이 컸다.
똑같은 대사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인데 아직 경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캐릭터를 만들 때 남자는 크게 한탕해도 좋지만, 여자는 바르고 옳기만 해서 남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한다는 것을 암암리에 의도했던 것일까?
구도도 남편의 생일 날 10년만에 임신 소식을 알리는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그 난리 생쑈를 벌인다는 것인데, 엔딩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다. 아무튼 그런 구도라면 여자는 무대에서 못 웃긴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얼마 전에 본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이 작품은 정말 모든 면에서 탁월한 작품이다. 같이 간 지인은 자신이 본 작품 중 탑5안에 든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성을 위한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구성이나 여배우들의 무대 장악력이 뛰어나다. 그점은 본 받을만 하다.
2. 역시, 매너가 문제다
후배와 연극을 보고 늦은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지하철까지 걸었다(하긴, 거긴 걷지 않으면 지하철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실 이 친구는 여름이 오기 전 발을 다쳐서 깁스를 하고, 다 나은 지가 얼마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나은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달리 해 줄 말이 없어, 그나마 한 여름에 안 다친 게 어디냐고 별 도움도 안 되는 말을 위로랍시고 했었더랬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그 비보를 전하는 사람마다 나 같이 말하더란다. 역시 사람 마음 똑같다 싶다.
그런데 요즘 남자들 정말 매너가 꽝이다. 그 후배가 얼마 전에 겪은 얘기를 해 주는데, 평소 알고 지내는 남사친을 만났단다. 길에서 만나기 뭐해 장소를 잡아 준 것 까지는 좋은데, 조금 늦겠다는 말에 일방적으로 음식을 먼저 시켜 먹고 있더란다. 왜 그랬냐고 했더니 혼자 뻘쭘하게 있는 게 뭐해 먼저 시켰단다. 아무리 자신이 매력없는 여사친이라고 하지만 그리 많이 늦은 것도 아닌데 잠시도 못 기다려 주는지? 그건 고사하고 뭘 먹을 건지 조차 묻지도 않고 일방적 시켰단다. 순간 밥맛이 확 떨어지더라는.
뭐 또 그것까지는 용서하고 넘어 간다고 치자. 당시는 깁스를 푼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다 나은 것은 아니니 절뚝거리며 겨우 도착했건만 기껏 한다는 소리가, "너 뭐야? 병신이네." 하더란다. 말하자면 그는 깁스를 풀었다기에 완전히 나은 친구의 모습을 기대했었나 보지. 그런데 의외다 싶으니 순간 튀어나온 말이 그 말이었겠다!
그걸 터프한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부리는가 본데, 여자에게 그것도 다친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 싶다. 아무리 여사친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지 않는가? 성적 매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남사친, 여사친은 없다.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 예의와 거리는 지켜져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말실수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사과하면 된다. 그런데 내 후배의 남사친은 아직도 사과를 하지 않는가 보다. 지금도 생각나면 한번씩 욕해주는 걸 보면. 하긴, 뼛속까지 터프하면 사과하긴 쉽지 않지.
난 이제 남자들에게 기본 예의지켜달라고도 하지 않겠다. 어디가서 욕 먹을 짓만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입에 맞는 말을 할 수 없다면 입이라도 다물어라. 반은 할 테니까. 남자가 입을 다물어 준다면, 내가 늘 얘기하는 거지만 페미니즘의 반의 반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여사친(남사친)에게 조차 잘 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랑하는 연인한테는 잘할까?
3. 이걸 믿어야할까, 말아야 할까?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그 유명하다던 <별마당 도서관>이라는 곳을 잠시 구경했다.
나는 늘 방구석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도서관 같은덴 잘 안 다닌다. 과연 우리나라에 이만한 도서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정말 입이 떠억 벌어질 정도로 크고 넓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코엑스는 서울의 핫플레이스인만큼 그안에 이런 도서관이 들어가 있다면 구경삼아서라도 안 들리고는 못 베길 것 같다.
늦은 시간인데도 앉을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책 읽는 자사도 어른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진지했다. 다소 어수선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진지하게 자기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는 뭐 낫겠는가?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책 안 읽는다는 말 지어낸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