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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배우
석민우 감독, 이경영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자고로 잘 쓴 시나리오를 연출에서 말아 먹을 수는 있어도, 잘못 쓴 시나리오를 연출에서 살려내는 법은 없다고 했다. 이 영화가 딱 그짝이다.
어쩌자고 천만 배우 국민요정 오달수는 이런 후진 영화에 선뜻 출연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주연이 그리도 하고 싶었나?
후진 주연 보다 빛나는 조연이 났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이 영화는 박찬욱 사단에서 만들었나 보다.
이경영을 깐느 박으로 나오면서 굳이 박찬욱임을 감추지 않는다.
더구나 고진감래 끝에 오달수는 깐느 박의 영화에 단역을 따냈는데 그 영화가 또 <박쥐>에서 딴 장면임을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했다.
이 영화를 굳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건 주인공 오달수가 맡은 장성필 역이 아니라 그의 아들 장원석의 시각이다. 조그만 아이가 연기를 제법한다. 그런데 그 연기가 과연 아버지 피를 이어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보단 아버지의 연기를 반면교사 삼아 가능성을 보였던 건 아닐지?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요즘 다리 저는 연기를 위해 친히 자신의 발을 망치로 치는가? 그걸 열정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진짜 정신 나간 거다. 몸은 배우의 최종병기다. 그걸 미련스럽게 파괴하면서까지 연기하겠다는 건 열정이 아니라 무모함이고 그는 이로써 연기를 더 이상 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준 꼴이다. 그짓까지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그나마 실패했지만. 성공하는 걸로 나왔다면 오히려 욕을 더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까지는 좋다고 치자. 그걸 또 가족을 위한 사랑과 희생하는 것으로 몰아가는 건 확실히 넌센스다. 가족 누구도 장성필이 그렇게 하면서까지 배우로 성공하길 바라지 않는다. 장모가 좀 한심스러워 하는 건 있지만 딱히 구박하는 것도 아니다. 괜히 자기가 주눅들어 깐느 박의 영화에 출연한다고 거짓말하고 그런 난리 브루스를 치는 거지.
더구나 시나리오가 개판인 건, 영화와 전혀 상관이 없는 대사도 막 넣었다. 이를테면, 딸이 일하다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친정엄마가 되가지고 사위 그게 크냐 작냐를 가지고 딸과 농담 따먹기를 한다. 도대체 이게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나?
영화를 보면 남자들을 정말 한심한 존재로 그렸다. 이를테면 중요한 배역을 앞두고 전날 술을 잔뜩 쳐먹고 후배 설강식에게 배역을 빼앗기고 교통사고로 다리를 저는 신세가 되는 대호.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그 후배는 배우로서 성공하자 모든 것을 달관한 양 자네가 잘 해서라고 자조하듯 말하는 거. 그런 설정이라면 대배우는 애초에 강성필이 아니라 설강식이여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은혜 갚듯 강성필에 어렵게 따낸 깐느 박의 배역을 대호에게 주는 건 정말 썩소가 나오게 만드는 부분이다. 세상이 남자들의 것이라면 그래서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라면 정말 웃기는 세상이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이 좋아서 나름 기대를 했는데 영 실망이다.
그런데 난 이 실패한 영화에 뭐 할 말이 그리 많아 이렇게 길게 평을 쓰는지 모르겠다. 이유가 있다면 하나. 우리 영화 이제 좀 한계가 그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제대로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지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 시나리오에서 영 받혀주는 힘이 약하다. 지금이라도 대오각성 해 줬으면 좋겠다.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