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펜 ‘인디 라이터’의 탄생

非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제조기
대학교수·전문가 대중과 멀어질때
‘在野의 지식인’들 출판시장 장악

민속학자 주강현(51)씨는 인세(印稅)로만 1년 평균 1억원을 번다. 45만부가 팔린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를 비롯해 그가 쓴 20여권의 책은 서점가에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올해에도 벌써 ‘돌살’ ‘두레’ ‘관해기(觀海記)’ 등 5권의 책을 냈다.

역사평론가 이덕일(45)씨는 지난해 인세 수입 2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이 기록을 깰 전망이다. 지난 3월 출간한 ‘조선최대갑부 역관’ 한 권만으로 한 달에 16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조선왕 독살사건’ ‘조선선비 살해사건’ 등 올해 잇달아 내놓은 책들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순항 중이다.

오직 ‘글’로만 승부하는 ‘인디 라이터’들이 출판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인디 라이터’는 고정급을 받는 대학교수나 전임연구원이 아니면서 인문·사회·과학 분야 등에서 단지 글만 써서 생활하는 독립저술가들이다. 원래 ‘인디(indie)’는 대형기획사나 프로덕션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반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하지만 이제 출판 분야에서도 ‘인디’ 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150만부 판매를 기록한 역사 분야의 박영규(40)씨, ‘다시 쓰는 택리지’의 저자 신정일(52)씨, ‘강호(江湖) 동양학’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조용헌(45)씨, 미술 분야의 이주헌(45)·노성두(47)씨, 경제분야에서는 ‘1인 기업’으로 자칭하는 공병호(46)씨, ‘미래교양사전’을 낸 과학저술가 이인식(61)씨 등이 대표적인 ‘인디’들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인디 라이터’가 출현한 가장 큰 이유는 글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출판시장 규모가 커진 때문이다. 또 인터넷 시대가 ‘인디’의 출현을 촉진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인식씨는 “정보사회 진입으로 누구나 전문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된 반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첨단정보를 쉽게 해설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지식인 사회의 위기에서 그 배경을 찾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만의 암호식 글쓰기, ‘끼리끼리식 교수채용’ 등으로 대학의 전문 지식인들이 대중과 멀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주강현씨는 “대학의 관료주의적 보수성이 ‘인디’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인디 라이터’들은 공통적으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융합(fusion)을 추구한다. ‘인디’ 대부분이 학자 아니면 저널리스트 출신인 것도 그 때문이다. 주강현·이덕일·노성두·조용헌씨 등은 아카데미즘에서 ‘인디’로 방향을 전환한 경우다. 독일에서 미술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노성두씨는 “1994년 귀국 후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신문사 기자와 칼럼 활동 등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인디’로 전향한 경우도 있다. 이인식·박영규·이주헌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아예 처음부터 ‘인디’에 뛰어드는 작가들도 늘고 있다. 지난 5월 첫 책 ‘제국의 후예들’을 쓴 정범준(36)씨, ‘특별한 동물 별 이야기’를 낸 동물칼럼니스트 김소희(31)씨, ‘엽기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한 이성주(31)씨 등 30대 젊은 필자들도 자신의 분야를 개척하며 ‘인디’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인디 라이터’로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덕일씨는 “인디 라이터의 삶은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굴러가는 자전거와 같다”며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채 모터를 달고 쉽게 가려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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