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물리학자가 소설을 논하다

정옥자 교수 “선조를 울보로?… 소설이라도 심하다”
김상락 교수 “복잡계 연결망, 소설 구성에 도움될 것”

▲ 소설‘칼의 노래’가 원작인 드라마‘불멸의 이순신’. 원작 소설이 식민사관의 악영향을 받아 선조를 폄하했다는 비판이 역사학계에서 제기됐다.
국사학자·물리학자 같은 문학 밖의 학자들이 문학에 메스를 들이댔다. 문학의 다면적(多面的)인 모습을 독자와 같이 음미하기 위해서다.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 특집 ‘밖에서 본 한국 문학’은 이 같은 내용을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는 이순신의 병사들이 허겁지겁 감자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한 학자가 “감자는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에 들어 왔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작가는 “감자가 아닌 어떤 작물도 (문학적으로는) 당시 병사들의 상황을 더 절실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며 재판을 찍을 때도 감자를 그대로 놔두었다.

실물 차원의 역사적 고증에 대해 저자의 태도가 이렇다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소설에서 선조는 울보이자 못난이로 그려져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정옥자 교수(서울대 국사학과)가 ‘칼의 노래’를 역사학적으로 분석했다.

이번 특집에 ‘칼의 노래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표한 정 교수는 김훈의 소설에 대해 “식민사관에서 우리를 집중 세뇌시킨 당쟁론이 여과 없이, 아니 더욱 심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국체의 상징으로서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국왕 선조의 개인적 고민도 함께 그렸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물은 정 교수는 ‘선조 제대로 알기’를 강조했다. “무수한 인재들이 배출되어 목릉성세(穆陵盛世)라고 불리는 선조대는 임진왜란이라는 (동북아)세계대전으로 얼룩졌지만, 정부와 국민 모두가 단결하여 왜적을 물리쳐 국가적 위기를 타개했다”는 것.

‘밖에서 본 한국문학’ 특집에는 요즘 수학 물리학 사회학 등에서 성행하는 복잡계 연결망(compolex network) 이론도 참여했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섯 다리만 건너면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복잡계 연결망은 설명한다. 예를 들어 박경리의 대하 소설 ‘토지’에는 총 54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김상락(경기대 물리학과) 교수가 복잡계 연결망을 ‘토지’에 적응해봤는데, “평균적으로 네 단계 정도를 거치게 되면 소설 ‘토지’에 나오는 어떤 인물이 다른 등장인물과 서로 연결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결국 “일곱 개 이상의 연결선을 가진 주요 인물은 모두 58명”으로 집약됐고, ‘멋대로’ 등장하는 인물이 없으며, 작가의 치밀한 구성 의도에 따라 인물들이 촘촘히 연결된다는 것도 재확인됐다.

김 교수는 복잡계 연결망 이론이 앞으로 소설 구상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명작’과 ‘졸작’을 이 같은 연결망 분석으로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보다 정밀하게 살펴보면 좋은 소설의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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