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너는 이 세상에 왔고
나는 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비된 사람으로서
네가 세상에 무사히 올 수 있도록
지켜 줬을 뿐 너의 핏덩이 몸뚱아리는
안아 보거나 만져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운명인 것을
그땐 이 아비도 알지 못했다.
세상을 원망하지 말거라.
너 자신은 더더욱이 원망하지 말거라.
네가 세상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갈 수 있었겠니.
때로 슬픈 운명을 지고 가야하는 사람도 있는 것.
이 세상에 꽃씨 하나 떨궈놓고 가는 것도
이제는 위로로 여길 시간도 돌아오는구나.
이제 다시는 너의 생일을
슬픈 날로 기억하지 말거라.
그날은 너와 내가 유일하게 위로 받을 수 있는 날이고,
너와 나 부녀관계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우린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언젠가 천국에서 만날 것이다.
그땐 다시 헤어지지도 않을 것이며,
슬퍼 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날까지 굳건하게 살아다오.
이제 곧 좋은 세상이 오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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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다.
기념식 말미에 37년 전 이날 태어난 어느 딸이 같은 날 돌아가신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는데 눈물이 났다.
아버지께 천 통의 편지를 띄워 드려도 단 한 통의 편지도 받을 수 없는 그녀의
슬픈 마음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졌다.
미진하나마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