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가 있는 사막
해이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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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끔 그런 책이 있지 않는가,  이를테면 읽어야할 책들의 목록이 잔뜩 쌓였음에도 어느 날 문득 매스컴이나 일지 못하는 곳에서 툭 비어져나와 사람으로 하여금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책 말이다. 그래서 꼭 하필 그때 그 책을 읽어내지 않으면 다음 책을 못 읽게 만드는 그런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책. 나에겐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요즘의 신예 작가들의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에 대한 나의 느낌 은 두가지로 나뉜다. 좋거나 나쁘거나. 그 중간은 없었던 것 같다. 좋은 것은, 뭔가 무시 못하는 신예다운 번뜩이는 기지 때문에 좋다고 얘기하는 것이고, 나쁘다면 '그래. 결국 그럴 줄 알았어. 네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나 이렇게 썼니?'하고 마냥 비아냥거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의 신인 작가들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도 모르고 글을 쓰겠는가. 이것엔 독자들이 너무 똑똑해진 것도 한몫할 것이다. 그런 책은 독자들이 절대로 사 보지 않는다.(물론 취향이긴 하겠지만)

그런데 감히 말하건데, 난 이 해이수라는 작가가  너무 마음에 든다. 언젠가 그의 기사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20대 중반부터 매일 새벽에 일어나 고전 철학서와 경전을 읽고 있다고 한다.  호주로 가는 유학 짐 속에 고전 경서를 챙겼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서사를 쓰고 싶어서가 그 이유란다. 이만하면 이 작가 믿을만 하지 않을까. 바로 이점 때문에 나는 서둘러 이 책을 펼쳐들은 것이다.

이 책의 첫번째 수록작 <몽구 형의 한 계절>은 몽구라고 하는 아는 형이 자신도 막상 해 보지도 못했을 섹스를 마치 해 본 것 마냥, 또는 화자의 아버지가 몽구 형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빤한 거짓말을 눙치는 솜씨만큼이나 술술 잘 읽혀진다. 

<돌베게 위의 나날>은 제목이 암시하듯, 성경의 야곱이 돌베게를 베고 잔 것을 따서 성서의 야곱의 신화만큼이나,  땅 설고 물 선 곳에서 고생 끝에 낙을 이루며 잘 살게 되는 신화를 꿈꾼다. 하지만 우리의 이민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다. 이 낮선 호주에서 내가 살기 위해 서로가 불법체류자임을 고발하므로 남을 짓밟는 이민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무리없이 현실감있게 그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라나라도 살만하니 외국 나가서 편히 살거라는 환상을 갖기 쉽겠지만 이민자들 대다수가 아직도 이런 고생과 수모를 당하고 살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설의 사내나 그의 선배처럼 고생 끝에 병을 얻고 불법체류자가 되서 귀국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도 있겠지. 무엇이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를 되묻게 만든다. 

<우리 전통 무용단>은 내가 '몽구 형의 한 계절'과 함께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아닐까 싶다. 시골에서 호주 관광여행을 온 노인들의 입담과 그들을 가이드 하는 '내'가 겪은 고생을 에피소드와 함께 잘 녹여낸 작품으로, 제목은 바로 호주관광을 온 노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화자가 즉흥적으로 지은 이름인데  왜 그런 이름을 짓게 되었는지는 독자가 직접 읽어보면 읽고 나서 과연 그렇구나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될 것 같다. 그리고 민족 정체성이란 그렇게 해외를 나가서 일부러 볼래야 볼 수 없는 어느 순간 포착이 되어서 보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앞서 '돌베게의 나날'과 사뭇 대칭되어 보이기도 한다. 

나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여행을 할 때 이제까지의 나를 벗어두고 쓸데없는 걱정없이 온전히 그 상황에 나를 맡겨 보는 태도를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생각지도 않은 사람 사는 냄새를 느껴 볼 수 있을 것 같다.

<캥거루가 있는 사막>은 새삼 우리나라에 동성동본 금혼법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 이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는 소설이다. 동성동본의 금혼법이 많이 완화가 되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불투명하고 불안한 미래 때문에 호주 여행에서 귀국하기를 꺼려하는 '나'와, 그 여행 중 만난 연상의 일본 여자에게서 동성동본 보다 더한 동생을 사랑하는 아픔을 목도하는 데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의 분위기는 전작과 달리 한없이 우울하고 끈적끈적하다. 그리고 정말 화자가 호주 여행을 하고 있구나 싶게 꼼꼼한 묘사가 돋보인다.

<관수와 우유>는 사춘기 그 시절에 한번쯤 있음직한 패싸움을 리얼한 상황 묘사와 함께 커뮤니케션의 불능상태를 위트있는 문체와 함께 유머러스하게 잘 녹여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수록작 <환원기>는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장미가 흐르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이야기의 초두에 '스승'와 '교사'의 의미를 가른다. 이를테면,  교사로서의 선생은 모든 고양이를 선량한 고양이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사부로서의 스승은 고양이들 중에서 호랑이가 될 만한 놈만을 골라 키운다.(300p)고 정의 하면서 스승의 부재를 말하기 보다는 그런 참 스승을 알아 볼 수 없는 졸렬하고 한심했던 지난 날의 제자가 스승을 생각하며 참회록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작가의 중단편 소설은 신예답지 않은 명징한 문체와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 또한 다양한 색깔을 띄고 있다. 소설을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지는 감정의 함몰된 오류도 작가는 용케 빠지지 않고 잘도 헤쳐 나온다. 단지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작가가 호주 유학파인만큼 소설의 공간이 거의 대부분 호주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조만간 극복 되어지지 않을까 한다. 그러고보니 호주는 지금 겨울이겠군.

하지만 소설을 쓰는데 있어 작가의 체험이나 목도한 사실을 형상화하는 것 못지않게 공부한 것을 작품 속에 투영하려는 지적인 노력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본 받을만한 것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 덕분에 덥고 습한 여름 날을 그나마 수월하게 견디고 있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언제 다시 마주할지 모르지만 또 만나게 되면 기쁘게 다시 마주 대하게 될 것 같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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